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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해고 투쟁은 우리 모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

11월 13일 대법원 앞, 차가운 바람 사이로 해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적힌 종이들이 나부꼈다. 전태일 열사 44주기였던 이 날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낸 해고무효 확인소송 대법원 판결이 있는 날이었다. 어느덧 2000일을 넘겨버린 고통의 시간이 끝나길, 이젠 해고자 딱지를 떼고 새로운 내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찢기 위해 준비했던 종이였다. 그 전주부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대법원 앞에서 매일 2000배를 올렸다. 해고는 살인임을 확인케 하듯 2009년부터 끊이지 않은 죽음을 애도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주길 간절히 기도하며 올린 2000배였다. 기나긴 고통의 시간, 간절함을 넘어 애절하다던 마음을 내팽개치듯 대법원은 너무도 쉽게 회사 손을 들어주었다. 올 초 고등법원에서 회사 측이 회계조작을 하고,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기에 해고가 부당하다고 내린 판결은 모두 뒤집어졌다.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판단의 문제를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9년 직장폐쇄로 해고 싸움을 해왔던 동서공업 노동자들에게도 2013년 6월 대법원은 “기업의 적정인원이 몇 명인지는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하므로 경영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며 회사 편을 들었다. 2007년부터 해고 싸움을 해온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2월 대법원은 같은 사장에게 고용된 콜트 노동자들과 콜텍 노동자들에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해고무효 판결을 받았던 콜트 노동자들에 대해 사측은 판결 이행을 거부하며 다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던 콜텍 노동자들이 패소하고 다시 상고하자 2014년 6월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면서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 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언제 어떤 이유에서든 정리해고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도록 경영권을 무한히 확장해준 것이다.

삶의 위협 그 자체인 해고 

임금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고는 그 자체로 삶의 위협이 된다.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는 부당해고로 제한하고 구제하는 내용이 법에 명시되어 있지만, “짜른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불안정 노동이 나날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해고는 일상다반사가 되어버렸다.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가 제도로서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98년 IMF 위기 당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서였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 해고를 피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때,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해 그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했을 때, 노동조합과의 성실한 협의과정을 거쳤을 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고 조건을 달아놓았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들은 현실에서 의미 있게 작동하지 않는다. 2011년 정리해고자 숫자는 10만3천여 명, 2006년 5만여 명에서 5년 사이 2배나 늘었다. 이는 IMF 시기인 1998년 12만3천여 명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인데, 당시에는 이후 완화되는 추세였다면 지금은 그러한 전망이 요원한 실정이다. 노동자의 생계를, 삶을 좌우하는 해고의 칼날을 ‘경영상 필요’라는 이유를 들어 노조 탄압의 수단으로, 더 많은 이윤을 벌어들이기 위한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자본은 교묘하게 이용하고 휘둘러왔다.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정부는 경찰을 앞세워 철저히 탄압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정의라는 말이 무색해진지 오래인 사법부가 친기업, 친정부의 편에서 그 기반을 적극 만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내려진 이번 판결로 정리해고 요건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국회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와 해고회피 노력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경영권 행사라는 미명 하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자본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 개선은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사람을 고용하고 해고하는 문제를 기계를 구매하고 폐기처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인식하고 작동케 하는 여러 기제들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누군가의 삶은, 그리고 누구나의 존엄은 언제든 내팽개쳐질 수밖에 없다.


해고노동자의 싸움을 넘어 우리 모두의 싸움

해고 싸움을 하면서 “우리는 한 가족”이라던 회사의 말은 거짓이었고, 정부는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았으며,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사법부 또한 정치적 판결을 내놓으며 자신들의 자리보전에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낱낱이 목도해야 했다. 그러나 절망의 시간을 넘어 해고노동자들은 투쟁의 끈을 놓지 않고 더 단단히 붙잡겠다고 한다. 대법원의 해고무효 판결에 재해고를 통보했던 회사와 다시 법정 소송을 하면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매일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도 지난 2000일을 돌아보며 공장을 넘어 정리해고가 남용되고 악용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는 결의를 모았다. 2005년 2월부터 지금까지 10년의 정리해고 싸움을 이젠 반드시 끝내겠다는 각오로 코오롱 최일배 위원장은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기 위해 파업한 것을 이유 삼아 대량해고 해버린 씨앤앰 사측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경영자의 권한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누군가를 ‘죽은 자’로 찍고 일방적으로 개개인의 희생을 강제하는 정리해고 제도는 사회적 살인과도 같다. 공장 담벼락을 넘어서 함께 살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 해고노동자들은 공동투쟁단을 만들어 각 사업장들이 겪는 여러 개의 문제들이 결국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문제라는 것을 알려왔다. 무한증식하려는 자본의 욕망을 경영권으로 왜곡하고 승인하는 일련의 사례들은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확인케 하는 신호탄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해고 싸움은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위한 싸움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를, 우리 모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함께 살자. 함께 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