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오름 > 일반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묻다

노숙인의 노동권, 주거권을 확보할 적임자는?

“저도 처절하게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면서 모든 천한 일을 다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공짜를 바라지 마십시오. 배고프면 차라리 굶으세요. 서울시가 일자리를 만들겠으니 그 길을 여러분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가십시오.”

지난 3월 6일 특별강사로 나선 이명박 서울시장. <사진 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 지난 3월 6일 특별강사로 나선 이명박 서울시장. <사진 출처: 서울시 홈페이지>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난 3월 6일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 2차사업 사전교육에 특별강사로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업은 노숙인들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자립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지난 2월부터 3차에 걸쳐 희망자를 받아 건설현장 등에 배치하고 임금의 절반을 서울시에서 분담하는 사업이다. ‘하이 서울’ 로고가 찍힌 교육복을 입은 한 노숙인이 일어나 ‘일보다는 일터에서의 차별이 더 힘들다’고 문제제기하자 이 시장은 “현장에서 누가 뭐라 해도 굳은 의지를 가지고 참고, 듣기 싫은 소리를 약으로 삼아 빨리 노숙인의 신분을 벗어나야 한다”고 맞받았다. 현장에서의 차별을 없애기보다는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라는 말이다. 이 시장을 이어 서울시정을 맡겠다고 나선 시장후보들은 이 사업을 어떻게 평가할까?

5.31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4일 노숙당사자모임,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아래 노실사), 인권운동사랑방은 서울시장선거 후보들에게 서울시의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와 노숙인들의 안정적인 주거 실현 계획에 대해 공개질의했다. 이에 대해 답변시한인 29일까지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아래 강 후보),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아래 오 후보),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아래 김 후보)가 답변서를 보내왔다.


일당 2만원, 임금체불 해결 방안은?

‘노숙인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는 2월 6일 1차사업 시작 이래 노숙인 600명을 건설, 상수도, 지하철 등 시 직영사업 위주로 149개 사업현장에 배치됐다. 서울시는 이들의 하루 임금을 “건설공사 일용인부 임금(5만원~9만원)을 기준으로 하여 최저 5만원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3월 13일 시작된 2차사업에서는 자치구와 민간기업이 시행하는 공사 현장으로 확대됐다. 대상 직종도 주차관리, 제조업, 요식업, 배달서비스, 아파트 경비, 청소 등으로 다양화됐다.

그러나 지난 5월 8일부터 시작된 3차사업에서 서울시는 1차․2차사업에 못 미치는 1일 2~4만원으로 일자리 유형에 따라 임금을 차등화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게다가 이런 방침은 이상하게 적용되어 임금이 모두 2만원에 그치고 있다. 이는 현행 최저임금인 하루 2만4800원(시급 3100원, 8시간 기준)에도 못미쳐 최저임금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하도급이 일반화된 건설업 쪽에서는 임금이 제때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주거비, 출퇴근 교통비 등 생활에 필요한 각종 경비를 써야만 일자리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노숙인들에게는 당장 일자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강 후보는 “어떠한 경우에도 임금체불은 발생해서는 안된다”며 이미 체불된 임금의 경우 관련업체와 협의를 통해 조속히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당수준은 다양한 조사와 의견수렵을 하고, 본 프로젝트의 취지를 감안하여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비껴가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이에 반해 김 후보는 “당연히 근로계약서를 작성함과 동시에 법상의 노동자 지위를 누려야 한다”고 못 박아 노숙인도 노동자임을 분명히 했다. 또 “서울시의 위탁을 받고 투입되는 만큼, 사용자성은 서울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며 “서울시가 노숙인들의 노동조건과 처우에 대해 감시하고 개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접근하여 불법화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숙인 차별 막을 방책은?

노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차별도 문제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특정 작업복을 강요해 다른 노동자와 구별하고 ‘쉼터인’, ‘쉼터근로자’ 등 특정한 이름으로 불러 사회적 낙인에 노출시키고 있다. 구별이 곧 차별의 눈초리를 부르고 있는 것. 또 개개인의 작업숙련도와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현장에 투입해, 숙련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은 자재정리 등 쉬운 작업만을 맡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강 후보는 “특정한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특정 의복을 입도록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각종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풀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비해 김 후보는 “일자리 현장에서 특정인의 일과는 상관없는 개인적 정보를 노출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적절하지 않다”며 피해사례를 접수해 고쳐나가겠다며 좀더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장마 끝나면 다시 불러줄까…”

1차․2차 사업이 모두 건설공사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공사 종료로 일자리를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숙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시는 시 직원들을 사업현장에 출장시켜 사후 모니터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조언을 받았다는 노숙인은 없다. 1차사업에 참여해 일당 5만원으로 버스정류장 공사를 하고 있는 노숙당사자모임 김동민 씨는 “6월 중순 지나고 장마철이 오면 일단 작업은 끝나고 장마 끝나면 부른다는데 확실치 않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세 단체는 “한시적인 일자리가 많아 노숙인들이 장기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노숙생활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며 “주거의 마련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기한이 명시된 근로계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사업을 서울시가 추진하는 만큼, 시 스스로 사용자로 나서 노숙인들을 공공부문 노동자로 고용할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강 후보는 답변서에서 “사회복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생활유지를 위한 근로계약이 필요”하다며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을…기본방향으로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련 당사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근로계약 문제를 노숙인들의 자립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나갈 것”이라며 구체적인 방법 제시는 나중으로 미뤘다. 김 후보는 “대규모 일자리 프로젝트보다는 다양한 일자리 창출방법이 시행되어야 한다”며 직업교육 프로그램과 자활후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단순 일용직 일자리는 최소화하면서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을 이루어 낼 것”이라고 밝혔다.


적절한 주거를 누릴 권리, 노숙인은?

한편, 지금까지 서울시의 노숙인 주거대책은 쉼터 입소를 권유하는 것 외에 없었다. 하지만 쉼터는 일시적으로 거쳐갈 수 있는 공간일지언정 주거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20~30만원의 상당한 월세를 부담하며 쪽방에 살거나 거리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세 단체는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노숙인을 공공임대주택의 입주대상으로 선정하고 우선순위를 두는 등 입주기회를 보장할 계획이 없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강 후보는 “(임대주택에서) 공가가 생기는 경우에도 입주자선정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일단 입주가 이루어지고 나면 순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등 비효율적 운영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일정 소득수준 이하로 입주자격을 단순화하고 쪽방촌․노숙인 등 사회취약계층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건교부가 시행하고 있는 단신자용 다가구매입임대주택 시범사업이 서울시의 비협조로 목표물량에 다다르지 못하고 있다며 “실태조사를 실시한 후, 양호한 주택부터 노숙인 등 단신자에 대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노숙인들의 적절한 주거를 위해서는 주거욕구와 주거수요, 부담가능한 임대료 예측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단신자들의 정확한 욕구를 파악하기 위한 욕구 조사는 정책 수립의 기본”이라며 실태조사 시행을 약속했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의지를 되묻는다

한편 오 후보는 A4 1장도 안되는 답변서를 보내와 빈축을 받았다. 게다가 오 후보는 여러 문제제기에 대해 “충분히 검토후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사항”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 박주선 후보에게도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변서를 받지 못했다.

노실사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현장에서 임금체불 등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니까 구체적이고 준비된 정책이 없는 것”이라며 “서울시는 ‘일자리 갖기 프로젝트’로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언론 홍보로 이득을 충분히 본 후에 뒷수습을 안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