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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수다] 알아서 조심하라고?

어린이/청소년 성폭력 가해자 신상공개

전자팔찌나 가해자 신상정보 공개 등 성폭력 예방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언론은 바빠지고 누리꾼들은 분주하다. 오는 7월부터 개정된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이 시행되면, 가해자 신상공개의 범위(현 거주지와 직업, 6개월 이내에 찍은 사진 공개)는 확대되는 반면, 열람은 피해자와 가족, 시설의 장으로 제한된다. 2001년 도입 이래 5천명이 넘는 어린이/청소년 성폭력 가해자 신상정보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쟁점수다’로 가져와 보았다. 안타깝게도 ‘수다’라는 기획취지와 달리, 성폭력 사건의 무거움이 수다를 ‘토론’으로 바꾸어 놓았다.

지난 5월 국가청소년위원회가 10차로 청소년 성폭력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국가청소년위원회>

▲ 지난 5월 국가청소년위원회가 10차로 청소년 성폭력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국가청소년위원회>



#1. 서 있는 자리

(지선) 신상공개와 관련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찬성 의견을 발표해왔어요. 범죄자의 인권을 무시하자는 입장은 아니지만, 저희는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는 전제가 있어요. 성폭력이 80%이상 아는 사람에 의해 일어나는데, 누구인지만 알아도…. 용산초등학교 아이의 경우, 이웃집 아저씨에게 피해를 입었는데 그 사람이 전과가 있었는지 몰랐죠.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적어도 피해자와 그 가족, 시설장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진숙)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신상공개 논란이 진행되는지 살펴봐야 해요. 왜 ‘어린이/청소년’ 성범죄에 대해서 별도의 조치를 필요로 하나 질문해야 하고, 국가의 개입이 강화되는 방식으로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저희는 국가의 개입 강화에 많은 우려를 표현해왔고 시민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는 측면에서 반대하고 있어요.
(범용) 저는 갈팡질팡^^. 성폭력 가해자 신상공개의 최종목표는 지역주민에게 그 정보를 열람하도록 하는 거죠.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지역주민이 그 사람을 알아야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쉽게 찬성하기 힘드네요. 범죄자도 사회적 약자의 위치인데…. 그렇다고 신상공개를 반대하자니, 성별로 차별화된 사회에서 어린이/청소년의 효과적인 성범죄 예방이 고민되고…. 적극 찬성하지도 적극 반대하지도 못하겠네요.


#2. 신상공개의 힘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중인 김지선 씨

▲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중인 김지선 씨

(범용) 신상공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나 궁금해서 국가청소년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어요. 현재 공개를 결정한 모든 가해자의 실명과 생년월일, 재판 당시 주소, 직업 등을 공개되는데, ‘이런 정보로 어떻게 예방이 될까?’ 의문이 들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를 아는 사람은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전혀 예방효과가 없다는 것이 제 판단이에요. 이웃주민이 그 사람을 알았으면 용산 초등학교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근거로 신상공개를 강화하자고 하는데, 그런 취지에서 보면 개정된 방식이라고 해도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요?
(지선) 부족한 건 신상공개만이 아니에요. 상담을 하다보면, 너무나 믿었던 사람들에게, 전과도 없고 어찌 보면 사회적으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경험해요. 이럴 경우 성폭력특별법에 있는 성폭력 개념으로는 법정에서 무조건 질 수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공개한다고 해서 성폭력 예방에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인 거죠. 다른 방안이 있어야 해요. 신상공개는 잠재적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피해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은 거니까.


#3. 유독 어린이/청소년의 성!

사회를 맡은 인권운동사랑방 최은아 활동가

▲ 사회를 맡은 인권운동사랑방 최은아 활동가

(은아) 성폭력이 범죄이고, 여성과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인권침해라는 인식은 90년대 이후에 조금씩 생겨났죠. 한국사회가 어린이/청소년의 성폭력에 대해서는 그래도 수용할 만하지만, 여전히 성인여성의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피해자 유발론 등 여성에게 원인을 두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운동진영도 어린이/청소년 성폭력과 같은 수용할만한 의제를 다루고 성인여성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소극적으로 제기하는 한계가 보이기도 하죠. 또 다른 한편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 관점은 성에 있어서 그들을 대상화하고, 성폭력 피해에 있어서도 어린이/청소년 주체의 관점과 이익이 스며들 수 없게 하죠.
(범용) 저는 어린이/청소년 성폭력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령, 예산의 우선적인 배분, 피해자에 대한 우선적 보호 면에서. 그런데 아직 한국사회에서 적극적 조치라는 것은 없고, 피해 주체의 관점보다는 일반적인 인권의 원칙(과일금지의 원칙, 이중처벌의 원칙 등)을 우선하는 것 같아요.
(진숙) 저는 다른 측면에서 얘기하고 싶은데요. 성폭력 예방에 있어서 유독 ‘왜 어린이/청소년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요. 아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최근 가족해체에 대한 재조직화와 무관하지 않아요. ‘발바리’ 사건 같은 경우 모성의 결핍이나 가족해체가 이런 범죄를 부른다는 겁니다. 2000년 이후 성인여성 성폭력 보고가 줄어드는 추세인데, 어린이청소년 성폭력은 20%이상 증가한다는 통계가 나와요. 통계가 실제 벌어지는 성폭력의 10%를 담을 수 있을지도 의문인데…. 결국 성폭력이 실제 많이 증가하는 게 아닐 겁니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중 공개된 수치가 증가했다는 건 사실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사회분위기에서 나타난 겁니다.
(지선) 경찰청에서는 어린이/청소년 성폭력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상담소는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해요. 저희가 어린이/청소년 성폭력에 보다 주목하는 것은 성폭력이 성인 간에 일어난 피해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어린이/청소년의 육체, 심리적 피해는 성인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면에서 사회가 관심 있게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그 부분만 집중하고, 다른 부분은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내버려 두는 데 있어요. 최근 각 부처의 정책들이 어린이/청소년 쪽으로 몰리고 있어요. 성적 소수자, 성인 여성에 대해서는 초점을 두지 않아요.


#4. 피해자 인권 vs. 가해자 인권?

(범용) 지난해 5월 국가인권위가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낸 의견서를 보면, 어린이/청소년의 관점이 빠진 청소년 성보호를 볼 수 있어요. 인권의 원칙을 나열하는 가운데 가해남성, 즉 범죄자의 인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거죠. 어린이/청소년의 성폭력 예방을 위해 어떤 요청이 있는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밝히지 못한 채, 범죄자의 인권 부분에서 기존의 인권원칙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그나마 역사적으로 정리된 것이니까. 실제 다른 의견을 내기 위해서는 성범죄가 다른 범죄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는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성폭력이 어린이/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니 신상공개도 어린이/청소년에게 국한하지 말고 모든 성폭력범죄까지 확장하면 어떨까요?.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이진숙 씨

▲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이진숙 씨

(지선) 신상공개를 성폭력 사건 전반으로 확대한다고 성폭력이 예방되진 않아요. 저는 오히려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권력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봐요. 똑같은 인권이라고는 하지만 그 안에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고려해야 합니다. 가해자의 인권을 무시할 수 없지만, 우리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는 여성과 어린이/청소년 입니다. 그 여성과 어린이/청소년이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재발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누구나 두려움을 갖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거죠. 그럴 때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인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진숙) 그렇게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권을 나누는 이분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해자 인권보다 피해자 인권이 우선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성폭력은 그럼 다른 범죄와는 다른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는 논리를 만들어야죠. 누구의 인권이 우선이냐보다 인권이 실제 보편적임에도 인권을 인권으로 인식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인권으로 여성권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여성권은 인권으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의 고유한 권리로서 신체에 대한 권리, 성적 자기결정권 등이 그 핵심입니다. 이러한 고민이 역사적으로 페미니즘 안에서 논의되어 왔습니다.
(지선) 누구나 인권이 있다는 말 속에 이 사회에서 더 취약한 사람들의 인권이 똑같은 선상에서 논의되면서 핵심을 흐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범용) 신상공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 약자 집단으로 범죄자 인권과 상충이 되기 때문이죠. 이게 정말 상충하는 것이라면 선택의 문제가 됩니다. 신상공개가 과연 재발방지를 위해서 정말 유효하고 효과적이냐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에 서는 것은 확실하지만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죠. 효과가 확실하다면 비록 상충된다 해도 피해자의 입장에 설 텐데,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범죄자의 인권을 무시하면서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에 쉽게 동의되지 않습니다.


#5. 알아서 조심하라고?

(은아) 현재 성폭력 가해자 신상공개는 ‘계도성’이 강해요. 그런데 실제로 계도하는 효과도 없고 국가가 정작 해야 할 일은 안하고, 위에서 국민에게 너희들 알아서 잘~ 피해 다녀라 그런 느낌이 들어요.
(지선) 신상공개와 같은 국가의 강력한(?) 계도로 더 많은 논의의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용산 사건 일어나고 나서 저희가 많이 하는 얘기는 성폭력 가해로 2회 이상 처벌을 받은 사람에게 징역형뿐만 아니라 재발방지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는 거예요. 국가가 예산을 최대한 확보해서 형벌을 받을 사람뿐만 아니라 집행유예나 면제를 받은 사람들까지 인권교육을 수강할 수 있게 하자는 거죠. 그렇게 되면 교육기관을 많이 만들어야 해요.
인권운동사랑방 성폭력반대위원회 위원인 범용 씨

▲ 인권운동사랑방 성폭력반대위원회 위원인 범용 씨

(진숙) 원조교제가 사회문제화 되자, 청소년성보호법을 만들어서 남자들한테 성매매하면 패가망신하니 “조심해라” 얘기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청소년성폭력, 성매매가 줄지 않고 음성화되니까, 이제는 가해자 신상을 공개해 피해자에게 또다시 “조심하라”고 얘기하는 식이에요. 설사 가해자 신상정보가 지역사회 공개되어도 결국 예방되는 메커니즘은 잠재적 피해자들이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거죠. 자경주의에도 미달합니다. 정부가 월 하는지…. 감시와 통제는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는 책임지는 게 없죠. 성폭력 알아서 “하지 말고”, 알아서 “조심해라”를 사회적으로 담론화시키고 제도화시키는 것입니다.
(범용) 가해자 신상공개가 사람들에게 성폭력 예방에 굉장히 중요하고 이것이 실현되었을 때 많은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국가의 다양한 의무를 은폐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들어요. 어린이/청소년의 성폭력 예방에서 방점을 찍어야할 것은 이들의 인권적 관점에서 국가의 의무는 뭐냐 이런 것들 아닐까요?


#6. 성폭력 예방, 무엇으로 어떻게

(지선) 가해자 교정프로그램이나 인권교육은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고, 신상공개보다 훨씬 많은 인력과 고민이 많이 필요한데, 지금 국가가 감히 못하고 있죠. 처벌위주의 강화안은 아니라고 봐요. 우리사회는 범죄자만 뭔가 교육을 받아야 하고, 범죄자 그룹이 따로 있다고 보는데 사실 우리사회 전체가 다 고민해야할 문제입니다. 직장에서 가족에서 학교에서….
(범용) 그렇지만 인력과 예산을 투여해도 교육으로 즉각 효과를 보기는 힘들죠. 부작용이 많아도 신상공개를 도입하는 게 현실을 바꾸는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지선) 지금 정부의 입법 흐름은 가해자에게 초점을 두고 있죠. 민간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저는 그 중심을 피해자 지원 측면에서 생각해봤으면 해요. 피해자 혹은 꼭 피해자라고 명명할 수 없지만 나에게 성과 관련된 애매한 경험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장이 있었으면 합니다. 성폭력에 대해 말하기 대회 같은 것들이 좀더 저변으로 확대되어 누구나 당당히 말할 수 있고 공감 받으며 분노를 펼칠 수 있는 문화적 장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진숙) 신상공개, 전자팔찌가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식인지 의심이 듭니다. 성폭력이 어떤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지 문제 삼지 않는 것이죠. 앞에서 말했듯 인권으로 인식할 수 없는 여성의 권리를 어떻게 제기할 것이냐 측면에서 성폭력 이라는 게 여성의 고유한 권리로서 성폭력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이청소년 성폭력의 경우 특정 주체를 성폭력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를 중심에 두고 논의하면서, 앞에서와 같은 논의로 확대되지 못한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7. 아쉬움을 뒤로 하며…

(진숙) 지역에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민의 의지를 모아서 자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피해에 대한 분노를 모아 자치적으로 추동하는 힘을 규범으로 정리하면 좋겠어요. 내 아이만 보호할 것이 아니라 지역에 있는 아이들을 함께 보호하는 방식으로….
(지선) 성폭력 이슈를 다루는 언론이 워낙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뽑아다 쓰니, 우리에게도 치밀하고 세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또한 신상공개를 비롯해 정부가 발표하는 법안에 대해서만 찬반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청소년 성폭력에 대한 혹은 전반의 성폭력에 대한 운동단체 안에서 법 테두리를 넘어선 고민을 같이 하면 좋겠어요.
(범용) 수다를 통해 신상공개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에 공감이 있었네요. 성폭력 사건 예방과 해결에 있어서 지역사회의 관심과 참여, 공동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그런데, 이런 관점이 확산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신상공개를 찬성하냐 반대하냐 라는 논란에 모두 묻혀버려요. 신상공개가 현실적으로 논의되는 효과를 고려하면서 운동사회의 주된 입장이 정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