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때 ‘글로벌 커뮤니티’의 대표적인 기구인 유엔(UN)은 예상한 바대로 ‘아메리카 커뮤니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이스라엘의 공격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이스라엘의 만행이 최고조에 이른 카나 마을 학살이 터지자 그 끔찍한 광경에 대해 겨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로 학살을 강도 높게 규탄하는 결의안은 채택되지 못했고, 대신 의장 성명 정도가 채택되었다. 성명서에서도 즉각적인 공습 중단이나 휴전을 요구하는 내용은 담고 있지 않았다.
한참 피 터지는 싸움을 지켜보다가 레바논의 인적·물적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나서야 드디어 유엔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저항군이었던 헤즈볼라 간의 휴전을 중재하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01호’의 이름으로 평화유지활동을 위한 군대를 파견하는 의견에 만장일치를 보았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나 결의안 1701호는 이스라엘과 친형제나 다름없는 미국의 입김을 그대로 담은 듯, 가해자 이스라엘에게 유리한 내용 위주였다. 침략을 당한 레바논 남부 지대를 완충지대로 만들고 저항군이었던 헤즈볼라는 무장해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면서 유엔은 전쟁 당사자들이 휴전을 위한 조건 사항들을 잘 지키고 있는지, 각국의 군대를 동원해 감시하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 프랑스는 지난 세기, 이곳에서 마치 실험하듯 이리저리 마음대로 국경을 그어 레바논의 역사를 직접 ‘창조’해낸 나라답게 군대 파견에 적극 뛰어들겠다고 나섰다. 한편 당시 레바논을 위력적으로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군은 당장 철수할 필요도 없이 각국들의 감시 군대가 오면 그 때 기지의 바통을 넘겨주면 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한국 정부 역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01호에 의거해 한국군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중진 유엔회원국이자 유엔 사무총장 배출국으로서 국제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선전했고, 얼마 전에는 7월 중으로 파병을 완료하겠다고 확정 발표했다.
돌아보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도 평화와 재건을 위해서 파병하는 것이라 일러왔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지금의 현지 상황은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있어 그곳에 파견된 다국적군의 역할은 마치 지옥을 재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번 레바논 파병은 유엔의 외교적 차원에서 UNIFIL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것으로서, 이라크전쟁 당시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할지라도, 안보리 결의안 1701호 자체는 강대국들의 입장과 이익만을 반영하고 있어 도저히 형평성이나 공정성에 맞지 않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국제평화를 위한 양심적인 행동으로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일단 이스라엘 측에게 유엔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던 결의안 242호와 338호를 우선적으로 이행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결의안들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셰바팜스, 골란고원,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등지에서 이스라엘군에게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이 결의안의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기만 했더라도, 굳이 오늘날 이스라엘군에게 재차 철수를 요구하거나 헤즈볼라가 무장해제할 것을 권고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작년 여름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서 발생한 희생자 1천여명의 목숨도 비참하게 사라질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이행 여부를 떠나서라도 한국 정부는 자꾸만 군대를 파견해 국제 사회에 ‘이바지’하겠다고 나섰다. 무력 수단인 군대를 동원해 인도주의를 실현하겠다는 모순적인 말만 되풀이하면서. 한국 정부는 패권국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평화유지군이 되려고 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해외 파병 정책으로는 지난 전쟁의 희생자들이 다시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는 희망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덧붙임
지은님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