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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산업 논리에 경도된 저작권법의 제자리 찾기

[기획]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11) 저작권법 일부개정안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지식의 확산과 사람들 사이의 소통, 그리고 문화 창작의 활성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해외의 전문 자료들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가 하면, 육아 커뮤니티를 통해 육아 정보를 얻거나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즐거웠던 여행의 기록을 디지털 캠코더로 남겨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미니홈피를 장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저작권’이라는 암초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저작물을 이용하다가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발되거나 손해배상으로 ‘쌩돈’이 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시가 마음에 들어서 시평과 함께 그 시를 내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저작권 위반이다. 국회의원 A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기와 관련된 기사를 스크랩해 올리는 것도 저작권 위반이다. 자신이 구매한 음반에서 MP3 파일을 만든 후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것도 물론 저작권 위반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비록 비영리적 목적이라 할지라도 감히 인터넷 음악 방송을 해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카페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면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저작권이 만료된 다른 음악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으며, 혹시 카메라에 텔레비전 화면이 잡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디지털 도서관이 구축되고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어차피 집에서 원격으로 접속하지 못하고 도서관에 직접 가서 열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과연 저작권이 문화발전을 위한 기반인지 장애물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최근 서비스 중지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한 P2P 사이트 '소리바다'

▲ 최근 서비스 중지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한 P2P 사이트 '소리바다'



저작권법에 공정이용도 있다!

저작권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는 저작물은 저작권자의 ‘소유’이고,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권리만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저작권의 궁극적인 목적은 ‘문화의 향상 발전’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자에게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되, 일정한 경우 그 권리를 제한하여 저작물의 원활한 이용을 도모한다. (저작권법 1조) 따라서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강화한다고 하여 문화의 향상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창작의 원동력은 창작의 결과물에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함으로써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창작에 필요한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부터도 나온다. 무에서 창조되는 지식이란 없으며, 항상 누군가의 창작물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그것을 이용, 변형, 결합하는 과정 속에서 창출되는 것이 지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리의 일방적 강화는 오히려 저작물의 원활한 유통과 이용을 제약해 추가적인 창작마저 제약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저작자의 권리는 일정하게 제한된다. 우선 그 보호기간이 제한된다. 여타 소유권과 달리 저작권은 일정한 기간(현재 국내 저작권법은 저작자 사후 50년간 보호하고 있다) 동안만 보호된다. 또한 보호기간 내에라도 이 권리는 공공적 목적 혹은 지식의 확산을 위해 특정한 경우 ‘제한’된다. 예를 들어, 저작물의 인용, 언론의 보도, 재판, 도서관, 교육 목적의 사용, 그리고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인 복제 등에서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다. 이를 공정이용(fair use)이라고 부르는데, 국내 저작권법은 ‘제6절 저작재산권의 제한’에서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경우를 나열하고 있다.

국내 저작권법 개정, 외국의 압력과 산업 논리에 압도되다

그러나 국내 저작권법에 있어 ‘저작자의 권리 보호와 공정한 이용의 균형’이라는 저작권법의 원칙은 사문화된 공문구에 불과하다. 1957년 제정된 이후 90년대까지는 저작권법이 우리 사회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외국의 압력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수용된 것이었다. 1957년 제정법은 일본의 저작권법을 베낀 것이었고, 1986년 저작권법 전면 개정은 한미지재권양해각서의 체결을 통해 지재권 보호를 강화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수용한 것이었다. 90년대에는 세계무역기구(WTO) 트립스협정(TRIPS,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 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법개정이 이루어졌다.

2000년 이후에는 2000년, 2003년, 2004년, 2006년 등 거의 매해 저작권법 개정이 이루어졌고, 수많은 개정안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주로 ‘디지털 의제’, 즉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개정의 방향은 ‘문화산업의 보호’라는 목적 하에 거의 저작권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으로 점철되었다. 2000년 개정에서는 저작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했다. 2003년 개정에서는 (‘창작의 보호’가 아니라!) ‘투자보호’라는 명분하에 창작성 없는 데이터베이스를 보호 대상에 포함시켰으며, 디지털 도서관의 기능을 더욱 제약하는 내용과 기술적 보호조치 등을 보호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2005년 개정에서는 실연자 및 음반제작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했으며(이 당시 미니홈피나 블로그의 음악파일 삭제 소동이 벌어지는 등 인터넷이 떠들썩했다), 2006년에는 저작권법 전부개정을 하면서 권리 강화를 위한 다양한 조항들이 도입되었는데, 공중송신 및 디지털음성송신권 등 도입, P2P나 웹하드 서비스 업체에 대한 규제 강화, 비친고죄 도입 등이 그것이다.

2007년에는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면서, 저작권법은 다시 한번 전면 개정될 예정이다. 이미 문화관광부는 한미FTA 협상 결과를 이행하기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인데,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 △기술적 보호조치에 대한 보호 강화 △권리자에게 편향된 행정 △사법체계 구축 등 이미 기울대로 기운 ‘권리와 이용의 균형추’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뒤흔들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9월 12일 한미FTA저지 지적재산권대책위는 문화관광부가 저작권법 개정안 공청회를 개최한 국립민속박물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9월 12일 한미FTA저지 지적재산권대책위는 문화관광부가 저작권법 개정안 공청회를 개최한 국립민속박물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천영세 의원안, 권리와 이용의 균형회복을 위한 최초의 입법시도

2005년 12월 5일, 천영세 의원(민주노동당)이 대표발의 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이라는 법 제정 취지와 목적을 우리 저작권법에 복권시키고, 지금까지 심각하게 훼손되어 온 권리와 공정이용 사이의 균형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한국 최초의 개정입법 시도이다. ‘정보공유연대 IPLeft’ 등 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이 함께 입안한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서관을 통한 저작물의 원격열람과 도서관 사이의 관외 전송을 허용하도록 하였다.
도서관은 정보에 대한 공적접근을 실현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이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저작물을 열람하거나 권리자의 허락이 없이도 저작물에 대한 복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한편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도서관들도 디지털 도서관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이 도서관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서 디지털 도서관은 더욱 큰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2000년 1월 저작권법이 개정되어 ‘전송권’이 신설되면서 디지털 도서관은 그 존재의의를 잃어버렸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디지털 도서관에 접속해 열람하는 것이 금지되고, 도서관에 ‘직접 가서’ 도서관 내에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 열람해야만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이후 2003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는데, 도서관 내에서 열람할 때에도 동시열람자 수를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거나 이용허락을 받은 부수’로 제한한 것이다. 디지털 도서관의 장점을 모조리 무력화하기 위한 법이 아닐 수 없다. 천영세 의원안은 디지털 도서관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려는 시도이다.

둘째, 저작재산권의 제한 사유에 열거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저작물의 공정이용이 가능하도록 저작재산권 제한의 포괄(일반) 조항을 두었다.
앞서 보았듯이 국내 저작권법은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경우를 개별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디지털 환경에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공정이용에 해당할 수 있는) 새로운 이용행태를 포괄하기 힘들다. 그래서 기존의 저작권 제한 규정에 포함되지 않지만,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경우(저작재산권자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공정한 관행에 합치하는 한) 공정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국제조약에서 공정이용의 범위를 제약하고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을 신설한다고 하여 급격하게 공정이용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환경에서 저작권을 어떻게 제한하는 것이 적절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이에 대한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한미FTA 협상 결과에 대한 이행법안을 마련하면서 대폭 강화된 저작권 강화와 균형을 맞춘다는 명분으로 개정 법안에 이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는 정말 궁색한 생색내기가 아닐 수 없는데, 이마저 음반사 등 권리자 단체에서는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공정이용을 위해 권리자들이 기술적 보호조치를 해제할 의무를 두었다.
기술적 보호조치란 저작권자가 스스로 자기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저작물에 복제방지장치를 적용하는 등 기술적 수단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저작물에 기술적 보호조치를 적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허용된 공공적 이용마저 제약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즉,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에 대한 접근도 제한된다든가, 공정이용에 해당하는 이용도 제한되게 된다. 따라서 공정이용을 위해 이용할 경우 저작권자에게 기술적 보호조치를 해제할 것을 요구할 필요가 발생하게 된다.

넷째, 저작권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을 저작권 침해를 업으로 한 자에 한정하였다.
과거 오프라인 환경에서는 불법복제의 주된 주체가 길거리에서 불법음반을 판매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는 모든 개인들이 비영리적인 이용 행위 과정에서, 침해의 의도가 없이도 저작권 위반에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실제로 현재 개인 이용자을 대상으로 한 고소, 고발이 쏟아지고 있으며, 형사처벌 위협을 악용하여 부당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관행마저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미한 경우까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은 과도한 형벌이 아니라할 수 없다. 따라서 저작권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은 저작권 침해를 업으로 한 자에 한정하도록 최소화해야할 것이다.

2006년 말에 저작권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말 발의된 천영세 의원안은 아직까지도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에서도 그야말로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조차 저작권법을 ‘한류 활성화’나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한 수단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천영세 의원안 자체도 저작권법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건드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저작권법은 WTO 트립스 등 국제협정에 의해 그 근본적인 틀에 있어서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영세 의원안은 지금까지 훼손되어 왔던 ‘권리와 이용의 균형’을 되찾고, 문화의 발전이라는 저작권법 본래의 목적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시작이다. 저작권법이 문화 자본의 독점적 이익이 아니라, 진정 문화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가 하는 논의는 앞으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임

◎ 오병일 님은 ‘정보공유연대 IPLeft’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