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기독교계와 자본을 등에 업은 일부 ‘파시스트’들과 이에 부화뇌동한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10월 2일 발표한 차별금지법안에서 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성적 지향, 학력 등 7개 항목을 제외한 채 성별, 장애, 인종 등 13개의 차별 사유만을 남긴 차별금지법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의 제안이유로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헌법 및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동성애차별금지법안저지를위한의회선교연합, 동성애허용반대국민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반대로 차별금지법에서 ‘성적 지향’이 삭제되고, 재계의 압력으로 ‘학력’ 등의 조항이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법무부가 삭제한 에이즈, 한센병, 간염 등의 병력으로 인한 차별이나 한부모가족 등의 가족형태로 인한 차별, 이주노동자·국제결혼 이주여성들에 대한 출신국가를 이유로 한 차별 등도 우리 사회의 매우 심각한 차별 사유로 꼽혀온 것들이다. 우리 사회의 인권 향상과 평등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을 금지하고자 할 때 빠져서는 안될 내용들이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이번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동성애 허용/반대의 왜곡된 논리로 사람들을 선동해 왔다. 일부에서는 아예 법안의 이름도 ‘동성애허용법안’으로 부르고 있을 정도다. 이들이 ‘동성애’를 쟁점으로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를 뒤흔드는 사이 차별금지법안은 아예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차별금지법의 존재 이유를 묻게 되는 지점이다. 차별금지법안에서 삭제된 성적 지향, 가족형태, 출신국가, 학력 등에 대해서는 차별해도 된다는 의미인가. 차별 사유는 편의적으로 구분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차별 사유로 인위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다양한 차별 사유가 중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이다. 차별 사유로 차별을 위계화하고 분할해서는 안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법무부와 보수 기독교 단체, 그리고 차별금지법안을 누더기로 만든 우리 사회 모든 세력들의 천박한 인권 의식은 적나라하게 들통이 나고야 말았다. 차별이 왜 나쁜지에 대한 질문은 평등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질문만큼이나 어리석은 질문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하)는 권리’라고 인식되고 있는 인권은 바로 ‘인간이면 누구나 평등하게 갖고 있(어야 하)는 권리’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어떤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독일에서 나찌는 유태인과 성소수자들을 학살하면서 그들을 인간으로서 같은 존재로 보지 않았다.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원법안의 차별 기준에서 후퇴한 최종안을 확정하면서 삭제된 사유에 의한 차별을 오히려 정당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차별을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질 법안이 역으로 차별을 조장하게 되는 역설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모든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면 오히려 없느니만 못하다.
- 78호
- 논평
- 인권운동사랑방
- 2007-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