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가 발표한 차별금지법안은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고 차별을 예방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차별 관련 기본법으로서 총 4개장과 43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차별금지 관련법들이 특정분야에 한정되고 구제수단이 미흡했던 데 비해 이번에 마련된 법안은 차별의 정의를 구체화하고 범위를 확대ㆍ보완했으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강도 높은 수단을 마련했다.
차별구제수단의 실효성과 다양성 확보
법안은 우선 차별을 직접차별과 간접차별, 괴롭힘(harassment)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한편, 성별, 장애, 나이, 인종, 학력, 고용형태 등 20개의 차별 금지사유를 제시하고 고용, 교육, 재화ㆍ용역 등의 공급과 이용, 법령과 정책 집행에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를 차별의 영역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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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계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더라도 장애인차별을 다루는 독자적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노동자 개념, 시대 흐름 담아
한편 법안에서는 노동자를 정의하는 부분에서, 근로기준법의 한계를 넘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다양한 조건의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법안 4조 11항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도 특정 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 또는 노무 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자, 동일 사업장에서 특정 사업자가 다른 사업자들을 사실상 지휘.감독하는 경우, 일방 사업자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과 관련이 없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임을 입증하지 아니하는 한 그 사업자의 근로자는 특정 사업자의 근로자로 본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는 최근 특수고용직, 사내하청 등 다양한 간접고용 관계에 놓여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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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3월 국가인권위가 연 차별금지법안 공청회 <출처: 시민의 신문>
재계 맹공격 뒤 숨은 노림수
차별금지법안이 공개되자 재계와 보수언론은 맹공격에 나서고 있다. 산업평화를 저해하고 기본 경제질서를 훼손한다는 항변부터 재산권과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주장은 ‘왜곡된 인권관의 유포’, 나아가 ‘근거 없는 사회불안 조장’으로 요약된다. 이런 악의적 선동은 차별금지법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노림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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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열린 경총 총회 사진 <출처: 한국경영자총협회>
이 부분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헌법의 평등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헌법은 2장 11조 1항에서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평등권을 규정한 헌법 2장 11조 1항에서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 등의 차별금지 사항은 열거된 것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정의 차원에서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는 ‘예시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통설이다. 차별금지법은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의 기준에 근거해 차별금지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헌법을 배반한 기업 활동의 자유는 결코 보장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모른 척하며, 자신들의 재산권과 ‘자율경영’만을 부르짖고 있다. 불평등과 차별로 점철된 사회구조에 기생해 온 기업 활동의 자유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을 앗아갔고 이들을 빈곤과 배제의 나락으로 내몰았는지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들이 거품 물고 수호하려는 그 질서는 차별을 주춧돌 삼아 건설된 성역 아니었던가.
차별로 유지돼 온 기득권체계 흔들어야
이와 같은 재계의 반발과 노골적 편들기에 나선 보수언론의 반응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봐야 한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이상에 치우쳐 밀어붙였다가 실패한 사례를 무수히 봐 왔다”며 정부에 대고 실현가능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문화일보>는 아예 ‘반기업성’을 드러낸 법안이라며 아예 대놓고 반대하고 나섰다. 앞으로 한바탕 힘겨루기 속에 이 법안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차별금지법안의 위상을 낮추고, 실효적인 구제구단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이들의 의도가 성공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