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헤어질 때, 동네에서 놀다가 각자 집으로 갈 때 그리고 전화를 하다가 끊을 때 아무렇지 않게 수도 없이 내뱉었던 말인데, 오늘은 가장 슬픈 말이 돼 버렸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미리가 이사를 가게 됐거든.
내 짝 미리가 이사 가던 날
미리는 2년 전에 우리 옆집으로 이사를 왔어. 사실 그때만 해도 같은 반이 아니었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나는 미리를 학교에서 보더라도 인사조차 하지 못했어. 그러다가 어느 날은 아침에 열쇠를 챙겨서 나오는 걸 깜빡 잊었지 뭐야. 집에 와 보니 문은 잠겨 있고, 결국 누군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면서 문 앞에 앉아 있는데, 저쪽에서 미리가 오지 않겠어? 미리는 집에 들어가려다 말고,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했어.
“안녕? 난 미리라고 해. 그런데 여기서 뭐해? 누구 기다리는 거야?”
“어? 어. 열쇠가 없어서…….”
“그랬구나. 그럼 우리 집에 가서 기다릴래?”
그 이후로 우리 둘은 금세 친해졌어. 학교에 가거나 올 때도 꼭 붙어 다니고, 같이 숙제도 하고 게임도 했어.
그런데 며칠 전 미리가 울면서 전화를 한 거야. 주인집에서 2년 계약이 끝났으니 집값을 올려달라고 했대. 하지만 미리네는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서 주인집에서 원하는 만큼 돈을 줄 수가 없었고, 결국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어. 게다가 우리 동네는 집값이 너무 비싸서 다른 동네로 가기로 했대. 그리고 바로 오늘이 미리가 이사하는 날이야. 미리한테 줄 선물도 사고 편지도 써놓고, 울지 말고 전해주려고 했는데, 미리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 그리고 제대로 말도 못한 채 마지막 인사를 했어. 안녕!
낑낑 아줌마의 집
아, 오늘따라 학교 가는 길에 왜 이렇게 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거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집을 떠메고 가고 있는 아줌마가 나타난 거야. 눈을 아무리 비벼도 내가 잘 못 본 게 아니었어.
“아줌마 왜 무겁게 집을 메고 가세요?”
“아이고 깜짝이야. 집 떨어질 뻔 했네. 이 집이 내 이름으로 되어 있긴 한데 아직 내 집이 아니야.”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렸어. 그래서 그걸 갚으려면 평생을 쉬지 않고 일해야 하거든.”
“어, 이상하다. 집은 사람들이 편하게 쉬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아줌마는 집 때문에 편하게 쉴 수 없다니….”
“자꾸 말 시키지 마. 잘못하면 떨어진단 말이야. 아이고 무거워라. 그럼 바빠서 난 이만 가봐야겠어. 잘 가라 꼬마야”
아줌마는 그 무거운 집을 낑낑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졌어. 그 아줌마한테 집은, 일한 뒤 쉴 수 있는 ‘집’이 아니라 힘들게 메고 가야 하는 ‘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긴 팔 오빠의 집
어떤 집 앞을 지나가다 난 또 다시 깜짝 놀랐어. 이번에는 팔이 정말 긴 어떤 오빠가 집을 감싸고 있지 뭐야. 오늘 정말 이상하네.
“왜 힘들게 집을 감싸고 있어요?”
그 오빠는 한 손으로 간신히 땀을 닦으며 나를 바라봤어.
“난 이 집에 월세로 살고 있는데, 곧 이 동네 집을 다 부수고 새로 집을 지을 거래.”
“그럼 잘 된 거네요. 새 집에서 살 수 있잖아요.”
“그게 말야. 아파트가 들어서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들어갈 수 있게 해 준다고는 하지만 난 들어갈 수가 없단다.”
“왜요? 누가 못 들어가게 해요?”
“이 집보다 집값이 비싸서 내가 들어갈 수가 없거든. 집은 누구에게나 필요한데, 집을 짓는 건축업자들이랑 정부에서는 돈을 벌 생각만 하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집을 고민하지 않아. 자기 배만 불리려는 건축업자와 정부가 내 집을 부수려 들어서 이렇게 집을 안고 있단다.”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문득 돈 때문에 이사를 가야했던 미리가 생각났어.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사는 게 아니라 돈 때문에 계속 이사를 해야 한다면 정말 짜증나고, 불안할 거야. 언제 쫓겨날지 모르니까 말야. 아참 학교에 가야하는데, 시계를 보니 수업 시작 5분 전이었어. 앗 큰일이다. 부리나케 학교를 향해 달렸어. 달리다 보니 그 오빠한테 인사도 못하고 온 게 생각났어. 집에 가는 길에 다시 들러서 인사라도 제대로 해야겠어.
거인 아저씨의 집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놀라서 기절 할 뻔 했지 뭐야. 갑자기 내 앞에 거인 아저씨가 나타났는데, 집을 수십 채 그러쥐고 서 있는 게 아니겠어? 그런데 그 밑을 보니까 아까 만났던 그 오빠랑, 아줌마도 있는 거야.
“아저씨, 사람들 힘들게 왜 그렇게 집을 줄로 묶어 놨어요?”
“이게 다 내 집이란다. 저건 내 생일 때 받은 집이지. 그리고 이건 저 집을 팔아서 번 돈으로 또 산 집이야.”
“아저씨가 살 집만 있으면 되지, 왜 이렇게 집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하하하! 집만큼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없거든. 새로 집을 짓고 팔면서 집값을 계속 올리면 그만큼 나한테 이익이 돌아오거든. 나한테 집은 떼돈을 벌어다주는 물건일 뿐이야.”
“하지만 아저씨 때문에 저렇게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맹랑한 꼬마네. 그건 내가 걱정할 게 아니지. 난 그저 돈만 벌면 되거든.”
욕심 많은 아저씨한테 뭔가 더 얘기를 해 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있다가는 지각을 해 선생님한테 혼날 게 뻔했어. 헐레벌떡 뛰다보니 저만치 학교가 보였어. 그런데 갑자기 학교 문이 닫히는 게 아니겠어? “안 돼!”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나니 모든 게 꿈이었어. 휴우, 다행이다.
나에게 집은?
아침밥을 먹으면서 나한테 집은 뭘까 생각해봤어.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고, 미리랑 숙제도 할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는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살 수 있고, 추위와 매서운 바람,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곳.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 생각해 보니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 집이었어. 하지만 이사를 간 미리네처럼, 그리고 꿈에서 만난 오빠랑 아줌마처럼 누구나 살만한 집에서 살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세상일 거야. 욕심 아저씨처럼 집값을 올리고, 많이 가져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집값은 계속 오르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오르는 집값을 따라잡지 못해 항상 떠돌이로 살아야 한다면 그건 분명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해 봅시다>
자기 돈으로 집을 사고팔아서 돈을 버는 게 문제가 되나요?
정부에서 2005년에 조사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혼자서 1,083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100채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도 37명이나 된대요. 입이 떡 벌어졌나요? 한 쪽에서는 집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집이 없어서 불안하게 생활해야 해요. 또 같은 해 한 연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이렇게 집이나 땅으로 벌어들인 돈이 1,400만 명의 노동자가 일해서 번 1년 치 임금보다 훨씬 많다고 해요. 집은 이미 차고 넘치지만 누구나 편하게 살 만한 집이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우리는 누구나 살만한 집에서 살 권리가 있어요. 그러려면 집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들이 많이 바뀌어야 해요. 집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없게 하거나, 한 사람이 많은 집을 가지려고 할 때에는 그만큼 불이익을 주어야 해요. 또 미리네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집도 필요하겠죠. 누구나 집이 필요하잖아요. 그렇다면 그건 선택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거지요.
정부에서 2005년에 조사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혼자서 1,083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100채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도 37명이나 된대요. 입이 떡 벌어졌나요? 한 쪽에서는 집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집이 없어서 불안하게 생활해야 해요. 또 같은 해 한 연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이렇게 집이나 땅으로 벌어들인 돈이 1,400만 명의 노동자가 일해서 번 1년 치 임금보다 훨씬 많다고 해요. 집은 이미 차고 넘치지만 누구나 편하게 살 만한 집이 없는 이상한 나라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우리는 누구나 살만한 집에서 살 권리가 있어요. 그러려면 집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들이 많이 바뀌어야 해요. 집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없게 하거나, 한 사람이 많은 집을 가지려고 할 때에는 그만큼 불이익을 주어야 해요. 또 미리네처럼 어려운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집도 필요하겠죠. 누구나 집이 필요하잖아요. 그렇다면 그건 선택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거지요.
덧붙임
영원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 (삽화는 같은 활동회원인 고은채 님이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