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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1] 신자유주의 경찰국가 탄압의 정예, 대테러부대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철거민 5명이 경찰특공대의 살인적인 진압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대테러부대 시위 진압 투입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어째서 생존권적 투쟁에 대테러부대가 투입되기에 이르렀는가?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선 경찰특공대의 성격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이 규명될 필요가 있다.

경찰특공대의 창설 - 자의적이고 비밀주의적인 시작

1982년, 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신군부 정권의 무력 보위 필요성’과 아시안게임, 올림픽 유치에 따른 ‘국제 테러 대비 필요’라는 명분이 결합하여 대통령훈령 제47호 ‘국가 대테러활동지침’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라 군대와 경찰 내에 각각 707 특수임무대대와 경찰특공대 KNP868부대가 설치되었다. 초기 경찰특공대의 구성원도 특수부대 출신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대통령훈령 제47호는 그 자체가 대외비로서, 경찰특공대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그 지위와 임무에 대한 법적 근거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렇게 치안본부 하에 자의적으로 설치되어 운영되던 경찰특공대는 김영삼 정권인 1994년이 되어서야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등 직제’ 및 그 시행규칙의 개정으로 서울특별시지방경찰청 직할대로 소속이 바뀌며 경찰법이 규정하는 조직 체계 내로 편입되게 된다.

경찰특공대는 초기에는 군대의 통합방위지침과 기존 경찰조직 등 공안기구 간의 관할 문제 때문에 ‘국제테러’ 대응으로 그 역할이 한정되었으나, 점차 국내 시위 진압 작전에 투입되기 시작하였다.

대테러부대의 국내 시위 진압 투입

김영삼 정권 말기, 1996년 한총련의 연세대 시위에서 경찰은 기존 기동대 병력만으로는 완전한 진압에 어려움을 겪자,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진압하였다. 이는 국제테러 대응 역할로 한정되어있던 경찰특공대를 국내 시위 진압에 동원한 위법한 작전이었다.

이후 1997년 1월 1일에 ‘국가 대테러활동지침’이 비밀 개정되며 “국제테러 뿐만 아니라 불순분자에 의한 국내테러와 폭발물ㆍ총기류 등을 이용한 테러모방형 국내 강력범죄에 대해서도 대테러 차원에서 대처할 수 있도록 규제대상을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물리력을 갖춘 저항세력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경찰특공대의 유용함을 확인한 공안기구가 정권교체기를 틈타 경찰특공대의 역할 확대를 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000년 김대중 정권 당시엔 호텔롯데 노조 파업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 노조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96년 화염병 등으로 격렬한 저항을 했던 연세대 시위와는 달리, 호텔롯데 노조 파업은 격렬한 물리적 저항이 없는 단순한 농성 파업이었을 뿐임에도 경찰특공대가 투입하였다. 이 사건은, 앞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시위나 파업에 경찰특공대가 일상적으로 투입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IMF 구제금융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정책이 노동자의 권리를 본격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대테러부대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용산철거민들의 농성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된 경찰특공대의 모습(출처: 빈곤사회연대)

▲ 용산철거민들의 농성을 진압하기 위해 동원된 경찰특공대의 모습(출처: 빈곤사회연대)


대테러이데올로기의 부상과 대테러부대의 공식화

이러한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함께 ‘대테러 이데올로기’의 부상도 자리 잡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적으로 공안 패러다임이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대테러이데올로기로 대체되어가는 흐름이 생겨나면서, 국내의 공안 패러다임도 이를 따르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 등 냉전 시대 억압제도가 일정 부분 힘을 잃자, 테러방지법 제정이 시도되고 있다.

2001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미국의 9.11 사건 직후인 11월에 ‘테러방지법’을 입법 시도하였다. 시민 사회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이후에도, 몇 차례 테러방지법 제정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2005년에 국정원은 전략을 바꿔서 그동안 대외비였던 ‘국가 대테러활동지침’을 테러방지법안 내용으로 전부 개정하는 방식으로, 대테러 이데올로기의 법령적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또한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 ‘국가 대테러활동지침’도 공개로 전환하였다.

이렇게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경찰에 설치되는 대테러특공대는 테러사건에 대한 무력진압작전, 테러사건과 관련한 폭발물의 탐색 및 처리, 요인경호행사 및 국가중요행사의 안전활동에 대한 지원, 그 밖에 테러사건의 예방 및 저지활동의 임무를 가진다. 결국 대테러부대로서 경찰특공대는 한층 더 제도화된 지위를 갖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찰국가 탄압의 정예, 대테러부대

이후 경찰특공대는 2005년 6월 오산 수청동 시위 진압, 2005년 5월 울산건설플랜트 시위 진압, 2006년 5월 미상공회의소 시위 진압, 2006년 6월 하이닉스 농성장 시위 진압, 2008년 10월 기륭전자 고공농성 시위진압 등 각종 농성 시위에 투입되었다. 민중들의 사회적 권리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저항을 진압하는데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있다.

그동안 대테러부대가 일반적인 시위 진압에 투입되는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다가, 작년 촛불 시위를 진압하는데 특공대가 투입되고, 올해는 용산에서 철거민 5명을 사망케하는 살인 진압에 이르자 커다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경찰 내부 지침에 불과한 경찰특공대의 운영 규칙을 내세우며 방어하고, 더 나아가 철거민들을 ‘준 도심테러리스트’의 상징으로 조작을 시도하며 대테러부대 투입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를 볼 때, 현재의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이 격화될수록, 정부 여당은 이를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탄압할 가능성이 높다.

대테러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권

현실에서 대테러부대는 신자유주의적 필요에 따라 사회적 약자를 탄압하기 위한 주된 수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태생부터 자의적이었던 대테러부대가 은근슬쩍 제도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한국사회 내 사회적 합의와 승인은 전혀 없다. 그래서 정치권력은 이러한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과 직접행동을 테러리즘으로 호도하고 있다. 테러활동이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사회에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갖는 민주적 정당성을 부정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허구적인 대테러이데올로기가 대대적으로 선전되어 사회적 승인 없이 대테러전투력이 제도화되는 것을 제지하고 견제하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은 탄압받고 민주주의는 후퇴될 것이다.
덧붙임

유성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