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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다르게 말하기 ①] 장애 여성의 삶이 녹아 있는 ‘말하기’ 시도

구체적인 차이와 삶의 결이 드러나는 방식 찾기

편집인 주

인권운동에서 차별은 어떤 의미일까?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어떤 운동의 과정을 통해야 하는 걸까? 차별로 인한 피해 드러내기는 ‘차별은 나쁘다’는 인식을 확산할 수 있겠지만, 이는 쉽게 피해자를 ‘피해자화’하는 것으로 가두게 될 수도 있다. 차별을 당했다는 인식보다는, 차별을 당함으로써 피해자가 되었다는 인식이 더 수치스럽게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피해자화하지 않으면서 차별을 드러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인권운동에서 의미 있는 여러 시도들을 통해 차별을 드러내는 다양한 고민들을 들어본다.


초기 장애여성공감 안에서 ‘피해/차별을 다르게 말하기’의 시도는 복잡한 운동적 입장을 기반으로 치밀하게 기획되었다기보다 다양한 회원, 활동가들의 감수성과 일상의 경험들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존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개되었던 것 같다.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의 많은 회원들이 기존 매체들이 장애여성을 묘사하는 것을 보며 ‘우리가 하면 저렇게 하지 않을텐데’라는 불만을 토로한다. 기존 매체들이 장애여성들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그들의 구체적인 차이들과 삶의 결들을 보려하기보다 전형화 된 모습만을 보려고 한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였다.

장애인/장애여성이 묘사되는 방식이나 그들 스스로 사회를 향해 발화하는 방식에 대한 불편함과 괴리감은 운동사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2000년대 들어 장애운동이 활성화되고 각종 장애인 집회와 대중문화제 등이 확산되는 가운데, 대규모 깃발을 높이 쳐들고 힘찬 팔뚝질을 하고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무대 위 문선대공연을 보는 풍경은 매우 익숙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과 생존권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처음 무작정 거리 투쟁으로 나선 공감의 장애여성들은 이러한 풍경에서 느꼈던 괴리감과 두려움 등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했다.

장애여성의 감수성이 녹아있는 발화방식 찾기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에 선 집회참가자들은 이동수단이 없어 평생을 ‘집구석에 쳐 박혀’ 있어야 하거나 시설에서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야 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소리 높여 외친다. 장애인 인권현실에 대한 이런 방식의 발화들은 투쟁 참가자들의 결의를 다지고 결집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일순간에 장애인인권 현실의 심각성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게 된다. 만연하는 피해와 반인권적 현실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알려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공감 안에서는 ‘뭔가 불편하다’거나 ‘무언가 다른 방식이 있지 않을까’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공감은 장애여성의 감수성과 민감성을 중요시하고 장애여성의 삶이 녹아있는 발화방식이나 매체를 찾기 위한 고민을 수도 없이 해왔다. 여기서 휠체어를 탄 모습이나 연약한 모습으로 대표되는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벗어나, 역동적인 장애여성의 모습을 상징화하는 것은 중요한 목표다. 또한 단순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장애여성의 문제를 일방적으로 알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들의 문제가 비장애, 자본주의, 남성/이성애자 중심의 사회 안에서 모든 개인들의 인권문제와 얽혀있음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장애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말하기의 도구/매체들은 사회적으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은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장애여성에게 즐겁고, 장애여성에게 편안한 환경과 방식, 매체를 스스로 찾아내는 데에도 주력했다. 물론 이는 공감이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시도해 나가야 할 계속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공감스러운’ 말하기 시도

다큐멘터리와 연극으로 ‘공감스러운’ 말하기를 시도하였다. 짧은 지면에 이러한 도전들이 가져온 성과와 한계점 등을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더라도 ‘다른 말하기’의 시도들을 더 많이 만나고 함께 시도되기를 바란다.

거북이 시스터즈 포스터

▲ 거북이 시스터즈 포스터


다큐멘터리 <거북이 시스터즈>

공감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다큐멘터리 제작 프로젝트 <거북이시스터즈>는 세 장애여성들이 독립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내고자 기획하게 되었다. 장애여성 독립의 문제를 외부의 시각이 아닌 당사자의 시각으로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한 끝에 영상이라는 매체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영상의 기획 및 시놉시스, 시나리오 작업에는 출연한 공감의 세 활동가가 참여하였고, 연출과 편집은 <여성영상집단 움>(이하 ‘움’)에서 진행했다. 공감과 움은 첫 작업부터 모든 부분에서 함께 논의하고 토론을 거쳐 결정해 나갔다.

<거북이시스터즈>는 세 장애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역동을 카메라에 담은 것으로, 장애여성 독립이 이루어지는데 필요한 많은 부분을 다루고자 했다. 공간 마련에서부터 심리적 독립까지, 세 여성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희망을 세 사람의 내레이션으로 들려준다. 기존 매체에서 표현되는 장애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영상을 만들면 저렇게 하진 않을텐데’라며 비판했던 데서 출발했던 다큐제작 작업이었기 때문에, 공감은 그만큼 출연한 장애여성들의 주체성과 왜곡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제작에 참여한 공감, 움, 세 주인공이 평등한 소통으로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조율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렇듯 <거북이시스터즈>는 내용적으로든, 진행과정에서든 모두가 주체가 되기를 추구한 가운데 만들어졌다.

연극팀 <춤추는 허리>

춤추는 허리의 공연 모습

▲ 춤추는 허리의 공연 모습


앞서 이야기했듯이 장애인운동의 활성화와 함께 문화제 성격의 행사들이 많아진 반면, 그 속에서 낯설음과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던 공감의 장애여성들에게 ‘나’에게 맞는 표현방식은 없을까하는 본격적인 고민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연극팀 <춤추는허리>가 만들어졌다.

2003년 최초의 정기공연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여섯 차례의 정기공연과 다수의 거리공연 등을 펼친 <춤추는 허리>는 구성원들이 가지는 ‘다양성’ 그 자체를 <춤추는 허리>의 고유한 표현방식으로 가져가는데 주력하였다. 예를 들어, 최초 연극팀 구성 이후 언어장애를 가진 장애여성이 새롭게 합류하게 되면서 큰 목소리, 긴 호흡이 필수이며 정확하고 빠르게 대사를 주고받아야 하는 기존 연극의 형식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깰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무언극, 춤공연)을 시도하였다.

또한 연극의 내용에 있어서도 구성원들이 수차례의 워크숍을 거쳐 직접 연극의 줄거리와 대사를 만들어 내고자 하였다. 장애여성의 생애사를 다룬 2회 정기공연 ‘여기에 있긴 있는데 여기있는게 안보여?’(2004년)의 내용은, 춤추는허리 배우들이 스스로 경험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 놀이와 추억에 대한 경험, 가족과 나의 관계, 사춘기와 초경에 대한 경험, 형제․주변사람들의 결혼과 나, 노년과 나의 미래 등을 고스란히 구현해 낸 것이었다.


* 이글은 <충분히 느리고 유쾌하고 까칠한 공감 열해十年, 열애熱愛: 장애여성공감 10년 활동사>(조만간 발간됩니다^^)에서 일부 발췌 및 요약정리 한 것입니다.

덧붙임

지성 님은 장애여성 공감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