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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2] 성소수자 혐오 반대운동을 반차별의 관점에서

좀 더 ‘섹시’하게 운동하자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를 정신장애 목록에서 삭제했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이미 1973년 12월 15일 동성애를 정신장애 목록에서 삭제했다. 어떤 의미로 이는 ‘정신장애’ 또는 ‘정신질환’ 자체를 타자화시켜 이를 비정상적이라고 차별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일단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누구나 ‘동성애’를 공격할 때 썼던 ‘정신질환’이라는 논거 자체를 가볍게 허물어뜨리는 결과라는 것에 있다. ‘동성애’는 누가 봐도 이제는 비정상이 아니라는 명제에 대한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지금의 사정이다. 그래서 유럽 및 북미 지역의 성소수자 단체들은 좀 더 논리적이면서 긍정적인 논거를 가지고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없애기 위한 날을 정했다. 그것이 바로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IDAHO's day -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이다.

호모포비아는 바로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동성애나 동성애자에 대하여 막연한 두려움과 억압, 그리고 혐오감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아무런 지식 없이 동성애는 질병, 전염병, 정신질환 등으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이는 꼭 이성애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 스스로도 동성애에 대한 자기혐오를 갖고 있는 경우에도 적용된다. 나치즘에서 비롯된 유대인혐오증과 동성애혐오증은 가장 심한 혐오증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미국의 매카시즘 때 역시 공산주의혐오증과 함께 동성애혐오증은 늘 함께 따라다녔다. 쉽게 말하면 ‘동성애’라는 말만 들어도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거나 마음속에서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드는 반응이 동성애혐오에 해당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동성애 자체를 처벌의 대상으로 보고 사적으로 폭력을 가하는 혐오범죄도 일어나고, 제도로서 국가차원에서 형벌에 처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7개의 나라는 동성애 행위로 사형에 처할 수 있다. 80여개 나라에서 동성애자는 죄인이고 동성애는 범죄로 다루어진다.

지난 5월 17일 종로에서 성소수자 관련한 설문을 하고 있는 모습

▲ 지난 5월 17일 종로에서 성소수자 관련한 설문을 하고 있는 모습


성소수자 혐오가 국민정서라고?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는 비가시적이라고 느껴지지만, 사실상 그 위력은 대단하다. 제도적인 혹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성소수자 혐오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군형법 제92조 “계간(鷄姦)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여기서 ‘계간’이라는 단어는 닭 계(鷄)에 간음할 간(姦)이라는 한자어를 써서 특정 성행위를 동물에 빗대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동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고 있고, 동성 간 합의에 의한 성행위조차도 추행으로 삼아 형벌로 처벌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7년 11월 참여정부 시절 차별금지법의 입법과정에서 성적지향 항목은 갑자기 사라졌다. 다행이라고 말하기엔 우스운 상황이지만, 17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성적지향 항목이 삭제된 상황에서 보수 기독교계가 드러낸 동성애혐오증은 ‘동성애는 치유되어야 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동성애혐오다. 기독학자들은 성경의 말씀으로 그 증거를 삼고 있지만, 그 논거 자체는 믿음에서 비롯된 종교적인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설득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세속적인 한국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게다가 동성애혐오는 한국 사회에서 ‘인권’을 다루는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소수자인권 이슈는 세계적으로 인권문제의 중심에 서있지만,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직까지도 정체 모를 ‘국민정서’라는 이상 기류 때문에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 내 사업 계획에 성소수자인권 의제는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는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인권 문제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러한 점에 항의하기 위해 국가인권위 관련 담당자와의 면담에서 얻은 답변은 “아직은 국민정서가……”라는 답변뿐이었다. ‘국민정서’, ‘사회적인 합의’를 이야기하며 설득하는 논거는 사실 보수진영이 내놓는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혐오는 확고한 타자의 시선에서 비롯, 차별 일으켜

이렇듯 혐오의 양상은 달라도 그 시작은 잘못된 지식과 막연한 두려움, 편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는 차별이라는 공식적인 용어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로 다가온다. 혐오가 타인에게서 비롯되거나 자기 자신을 타자화하면서 인식되는 것이라면, 차별은 자기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며 스스로를 ‘주체’로서 정체화하면서 인식된다. 혐오를 하는 주체는 나 아닌 다른 사람 또는, 나 자신을 부정하는 내 속의 다른 나이다. 차별은 스스로가 능동적 태도를 갖고 자신과 주변을 관찰할 때 인식된다. 따라서 혐오라는 문제는 ‘나’라는 주체가 이를 차별의 문제로 인식하여 설득하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해결해야 한다.

혐오는 확고한 타자의 시선에서 비롯된 태도이기에 그 양상이 변화무쌍하다. 특히 심한 호모포비아나 트랜스포비아는 강박적이며, 조절하기 힘들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정신질환으로 의심할 수 있을 정도다. 얼마 전 한 지상파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한국인의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과 관련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어느 나라보다 심하다는 얘기였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동성애에 막연한 거부감은 학창시절, 군대사회, 또는 남성중심의 직장문화에서 더욱 공고해진다. 동성애에 대해 ‘변태, 호모’라는 비하적인 용어를 남발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도, 성전환을 단순히 성기 절단만으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감수성이 메마른 탓인가. 한국 사회에서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인식하지만, 혐오는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린다. 그것이 바로 또 다른 차별의 문제를 불러오는 것임에도 말이다.

성소수자 관련 설문에 외국인들도 참여했다.

▲ 성소수자 관련 설문에 외국인들도 참여했다.


혐오자를 혐오하는 것을 넘는 섹시한 방법은

2009년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IDAHO's day -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은 성소수자들의 날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5월 17일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이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를 주최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뿐만 아니라 여러 인권단체, 성소수자단체 활동가들의 연대발언이 있었다. 행사 전 ‘친구사이’는 서울 시민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몇 가지 질문을 토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한 시민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많이 알려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타자의 혐오적인 시선, 편견, 행위에 대한 반응을 차별을 반대하는 언어로 바꾸어 말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막연한 두려움, 무지에서 비롯되는 태도를 논리적으로 설득의 과정을 통해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혐오 반대의 운동이 또 다른 혐오를 낳는 과정은 그리 아름답지도 않고, 성소수자들의 방법도 아니다. 성소수자 특유의 발랄함과 즐거움,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한국 사회에서 위력적인 성소수자혐오를 없애야 할 것이다. 성소수자 운동 진영에서 자주 쓰는 말이지만 ‘뭔가 좀 더 섹시한 방법’으로 변화시켜할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디어가 쉽사리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것이 우리들의 차별을 이야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덧붙임

이종걸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인권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