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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대학생이 말하는 차별 이야기

[기획: 대학생이 말하는 차별이야기] 대학생들이 성소수자에게 ‘쿨’하다는 착각

성소수자 4인多색 반차별 토크쇼 ‘The LGBTQ word’

[편집인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학모임은 <대차별: 대학생의 차별이야기>라는 주제로 릴레이 강연회를 진행하고 있다. 총 네 번에 걸쳐 각각 다른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기획은 그 동안 대학 사회에 존재했지만, 잘 드러나지 않았던 혹은 잘 드러낼 수 없었던 차별 이야기를 대학생들이 솔직하게 직접 꺼내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각 강연회가 끝난 후 강연회를 기획한 대학생이 직접 기사를 작성해 보내주었다. 대학생이 말하는 대학생의 차별이야기, 사회가 함께 귀 기울여야 할 우리 사회의 차별이야기이기도 하다.


‘남친 있어? 남친은 어때?’ 학내에서 으레 받게 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편안하게 읽힌다면 당신은 무딘 사람이다. 잠시 자신의 뼛속깊이 체화돼있는 고정적 성 관념을 돌아보자. 대학생들이 성소수자에게 ‘쿨’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여전히 대학 안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고,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적 상황과 그에 대한 방안을 공유하기 위해, 성소수자 토크쇼 ‘The LGBTQ word(엘지비티큐 워드)’가 5월 24일(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마련되었다. 이 행사는 이화여대 ‘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이하 변날)’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협력해 주최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기즈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홀릭, 유쾌한 섹슈얼리티인권센터의 캔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준우가 패널로 참석했다.

<B>헤테로섹슈얼이 헤테로섹슈얼인 줄 모르고

‘대학생들은 성소수자에 대해 쿨할 것’이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에는 여전히 차별적 관념이 잔재하고 있었다. 그러한 물 밑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보자는 생각으로 23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성정체성을 표현하는 11개 단어 중 뜻을 알고 있는 말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은 게이, 트랜스젠더, 레즈비언과 바이섹슈얼에 대해 높은 인식 정도를 나타냈다. 눈에 띄는 점은 ‘헤테로섹슈얼(이성애자)’의 뜻을 알고 있는 응답자가 34%(80명)에 그쳤다는 것이다. 자신을 ‘이성애자’로 간주하고 있을 응답자가 가장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인지 정도는 이성애자들이 자기 성정체성에 대해 탐색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성애 중심주의’의 범주 안에서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자유롭게 고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보다 넓은 섹슈얼리티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한 우물 안에만 머물러있는 것. 많은 사람들은 ‘이성애 중심주의’라는 우물 안에서 개굴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성정체성에 대한 탐색이 자신과 동떨어진 문제라는 인식에서부터, ‘선긋기’와 같은 폭력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바이섹슈얼 이미지는 ‘박애주의자’

‘각 성정체성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는 상당수 응답자들이 여러 편견적 답변을 내놓았다. 레즈비언에서는 ‘커트머리’, ‘근육’ 등 남성성이 강조된 이미지를 떠올렸으며, 게이에서는 ‘패션 감각’, ‘매너’ 등 기존의 미디어가 양산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트랜스젠더에서는 ‘하리수’, ‘성형’ 등이, 바이섹슈얼에서는 ‘박쥐’, ‘복받았다’, ‘박애주의자’ 등의 이미지가 꼽혔다.

설문 결과를 보면, 대학가에서 성소수자는 실제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유령’에 가깝게 여겨지고 있었다. 다수의 여대생들은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게이 친구가 한 명쯤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친구가 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들을 스크린 속에 가두는 것이 문제다. 게이를 포함한 다양한 성소수자 정체성은 브라운관, 스크린, 활자 안에서 일종의 정형적인 ‘캐릭터’로 여겨지고 있었다.

반면 바이 섹슈얼은 ‘쿨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는 뒤집어 생각해보면 바람을 잘 피울 것 같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캔디 씨에 따르면 바이섹슈얼이 양성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곧 ‘양다리’와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다. 트랜스젠더 또한 수술 여부로 규정하고 판단할 수 없는 정체성이다. 수술을 할 수 없거나 원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문에 포함되지 않았던 질문을 독자께 묻겠다. ‘이성애자’ 하면 뭐가 떠오르시는가? 혹시 이 질문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지는 않으시는가? ‘이성애자’가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로 설명될 수 없듯, ‘성소수자’ 또한 그렇다. 성소수자는 유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가 실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어떻게 이미지화할 수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이번 강연회 패널들은 정형적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서 청중들에게 그런 질문을 실제로 와 닿게 던질 수 있었다. 친근한 게이 기즈베 씨, 준수한 퀘스쳐닝 준우 씨처럼 실제로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고정돼있지 않은 성 정체성이 아웃팅에 대한 무기

성소수자라면 언제나 아웃팅의 위협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준우 씨는 아웃팅에 대한 무기로 ‘고정돼있지 않은 성 정체성’을 들었다. 준우 씨는 현재 남성의 몸으로 여성과 교제 중이지만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스스로 가부장적 남성성을 해체함으로써 자신의 성을 ‘남성’이라고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가부장적 남성성을 부수기 위해 실제로 매니큐어를 칠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퀴어함을 어떤 정체성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아웃팅을 하려면 일단 상대방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낙인찍어야 하는데, 그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고정돼있지 않은 것은 성정체성 낙인에 대한 무기이자 알리바이가 되는 것이다.

수술한 트랜스 여성의 취직 실패 이유는?

패널들은 성소수자라서 받는 차별뿐만 아니라, 인종ㆍ경제적 여건 등 다른 상황이 겹쳐져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리 아들 모 드라마 보고 에이즈 걸리면 책임지라’는 광고는, 분명히 분리되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과 게이가, 대중들 머릿속에서 결합돼서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차별은 HIV 감염인이면서 동시에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 동성애자이면서 HIV 감염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은행에서 35세 이전 비혼 여성에게 은행 전세자금을 대출해주지 않는 문제는, 레즈비언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여자, 남자가 없는 가정에 대한 차별로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복합 차별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차별을 보여주는 것이고 각자의 소수자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차별금지법 제정돼야 성소수자 ‘말’할 공간 생길 것

이성애중심주의는 우리 사회 어디에나 만연해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방을 당연히 이성애자라고 전제하고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당연하게 배제돼있는 사람들을 위한 법이 차별금지법인 것이다. 비가시화 돼있는 소수자를 공적공간으로 이끌어냄으로써 이성애 중심주의를 문제 삼고 서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고민들이 대학 내에서도 널리 번져나가기를 바란다.

이번 강연회에서 대학생 성소수자 패널을 섭외하지 못해 실제적인 대학 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성소수자 문제를 직접적으로 꺼내기에는 아웃팅의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그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란 힘든 일이었다. 아쉽게나마 설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학생들 사이에 통용되는 성소수자에 대한‘쿨한 인정’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공존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배제․ 차별하지 않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데 초석이 될 것이다.

대차별: 대학생의 차별 이야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학모임에서 준비한 릴레이 강연회는 다음 네 번의 주제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강연회는 <가족, 애정과 투쟁 사이>라는 제목으로 정상가족 신화의 모순을 꼬집고 대학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족을 상상하는 시간으로 기획되었습니다(5/18). 두 번째 강연회 <The LGBTQ word(엘지비티큐 워드)>는 다양한 인권활동가들이 대학생들과 함께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퀘스처닝 등 다양한 성소수자 정체성과 차별에 대해 토크쇼를 벌입니다(5/24). 세 번째 강연회는 <학벌의 중심에서 차별을 외치다>라는 제목으로 학벌차별의 전체 구조를 통해 누가 수혜자이고 누가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는지, 대학생들은 학벌차별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5/26). 마지막으로 네 번째 강연회 <한국에 인종주의는 이제 없다?!>는 우리 사회의 인종주의를 깊이 성찰하며 대학 내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 영어중심주의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살펴봅니다(5/31).

덧붙임

꼬밍, 레나, 아른 님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학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대학모임은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동아리, 단체)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