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와 이런 긴밀한 관계를 맺는 까닭은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과거 왕이나 귀족이 통치하던 시대에 그 사회를 이끌어가고 지도하는 것은 왕이나 귀족이 할 일이지, 결코 일반 평민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수동적인 존재로서, 단지 지배층의 명령이나 지시를 따르는 복종 의무만을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일반 평민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불만 등을 다른 이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 자체로 불경스런 것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근대 혁명 이후 절대적 권력은 무너졌으며, 이에 따라 왕의 명령과 같이 누구나 복종해야 하는 절대적 의사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과거 일반 평민이었던 시민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면서,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 불만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정치적 참여도 가능하게 되었으며 (물론 현실에서도 그랬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민주주의 역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정리해 보면, 표현의 자유는 그 사회가 절대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넘어왔음을 알리는 하나의 표식임과 동시에, 일반 평민을 비롯한 누구나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집회의 자유와 민주주의
그렇다면 우리 헌법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느 조항에서,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직접 실천해 보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 인터넷에 들어가 헌법을 찾은 후 이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을 한 번 살펴보자. 그런데 130개 조항을 하나하나 꼼꼼히 봐도,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언급한 것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헌법이 이를 보장하지 않는 것이냐’, ‘우리나라 국민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없는 것이냐’고 미리 흥분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헌법 제21조 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헌법에 표현의 자유를 직접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표현의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조항을 둠으로써 이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개인적 표현의 자유’라 하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집단적 표현의 자유’라 분류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언론의 자유나, 출판의 자유를 누가 누릴 수 있는가? 평범한 누군가가 언론․출판의 자유를 누리기는 어렵다. (물론 자신의 의견을 적은 글을 신문사 의견란에 투고해 볼 수는 있으나, 이것이 실린다는 보장은 없고 싣더라도 결국 해당 신문사에서 결정할 일이다.) 이를 향유하는 것은 언론사를 소유할 정도의 재력이나, 글을 직접 쓸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갖춘 이들, 곧 언론사나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집회․결사의 자유는 다르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한 자리에 모여 무언가를 외치는 것만으로 결사와 집회는 가능하다. 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구색을 갖출 수 있는 집회에,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봤을 때, 언론․출판의 자유는 가진 자, 부자들이 갖는 자유라고 한다면, 집회․결사의 자유는 갖지 못한 자, 빈자(貧者)들의 자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면에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가진 것이 없는 자들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가 된다. 나아가 그들에게도 정치를 비롯한 각종 사회적 논쟁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야간옥외집회금지의 문제들
집회의 자유가 갖고 있는 이러한 가치들을 감안해 본다면,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의 모든 옥외집회나 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집시법 제10조를 고치려 하는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 개정안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조진형 집시법 개정안은 민주주의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의 한 형태이고, 또 표현의 자유는 우리사회의 민주적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따라서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겠다는 것일 뿐이며, 곧 민주적 운영에 제약을 가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너무 단순한 논리비약이라고 반박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행 집시법의 내용을 알게 된다면 그렇게 이야기하긴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현행 규정들로도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시위,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시위라면 사전에 금지할 수 있다.(제5조) 또한 국민의 표현행위를 ‘소음’이라는 딱지를 붙여 제한하기도 하고(제14조) 국회, 법원, 청와대, 요인 관사, 외교공관 인근 등과 같은 도심 곳곳은 이미 집회가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제11조), 주요도로들도 교통 불편을 명분으로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제12조)
두 번째, 야간옥외집회가 다른 시민들의 휴식권이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타당성은 없다. 집회는 단순히 ‘사회에 불만을 갖은 세력들의 준동’이나 ‘사회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불순한 행위’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들이 내는 다양한 의견 중 하나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해 보자. 이렇게 본다면, 집회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다소간의 혼란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비용이라 할 수 있고, 민주적 공동체를 구성하여 살아가는 시민으로써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따라서 야간옥외집회가 다른 시민의 휴식권이나 행복추구권을 침해함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을 뽑는 선거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전혀 다르지 않다.
더구나 현행 집시법 제8조는 주택지역, 학교인근에서의 집회신고가 접수될 경우, 그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이나 장소의 보호를 요청하면 관할 경찰서장이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야간집회로 인한 휴식권 침해 등의 문제는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야간옥외집회를 허하라! 집시법 제10조를 삭제하라!
이와 같이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모든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0조에 대한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 안은 집회의 자유를 극도로 침해할 뿐이다. 그리고 야간옥외집회를 일괄적으로 금지해야 할 어떠한 합당한 이유도 찾기 어렵다. 그러므로 야간에도 자유로이 집회를 열 수 있도록 집시법 제10조를 삭제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더 나아가 헌법에 가장 부합하는 집시법개정안은 ‘경찰관서장의 과잉권한부여법’인 현행 집시법을 전부 폐지한 후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원칙과 최소한 제한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도록 새롭게 만드는 것만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분명 헌법에 규정되어 있음에도,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집회의 자유를 제대로 된 권리로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다.
덧붙임
이호영 님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