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흡연은 개인의 기호임에는 분명하지만, 흡연자에게 한정된 문제만은 아니다. 원치 않은 사람들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불쾌한 연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 담배 피울 곳이 없다’고 하소연 하는 끽연가들이 있는 줄 알지만, 나는 그런 불평에 동의할 수 없다. 담배연기에 역겨워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흡연가에 비해 분명 약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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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혹은 최대 3개월까지 담배를 끊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금연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 젊으니 조금 더 버텨보자, 라는 것이 내가 담배를 물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던 중, 정말로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연히 신문기사를 읽고, 담배는 심각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의 충격이었다.
7-8년 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일로 기억한다. 국내 언론을 통해서 잘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보행 중,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 뒤를 엄마의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어린 아이가 있었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지막 한 모금을 흡입하고 담배를 손으로 털었다. 그 불똥은 어린 아이 눈으로 날아갔고, 그 아이는 실명에 이른다. 이 사건으로 일본 전역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도쿄는 물론이고 ‘보행 중 금연 조례가’ 전 자치체로 번졌다. 아이에게 담배는 치명적인 무기였던 것이다.
며칠 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한 지역 언론이 주최한 단체장 예비후보자 초청 토론회가 있었다. 한 여성 방청객이 후보자들에게 “길거리 흡연에 대한 대책”이 무엇인지 물었다. 후보자들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은근슬쩍 답을 피해갔다. 그 순간, 7-8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이 떠올랐던 것이다.
예전에 비해 흡연가가 설 자리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웬만한 건물은 모두 금연 건물이고 아이들 놀이터나 공원 등 각종 공공장소나 대중식당까지도 대부분 금연구역이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한 나로서는 아쉬운 대목이지만, 금연구역 지정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담배연기를 들이키겠다는 내 의지와는 별개로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가 흡연에 대해 너무 관대하거나, 법치국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금연구역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 음식점임에도 사람들은 버젓이 담배를 태우고, 식당 주인은 제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떨이를 공손하게 가져다주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전히 금연건물 계단이나 비상구 쪽에서 담배족들이 연기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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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해서, 법 규정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지 잘 모르겠다. 돈을 더 벌기 위한 상인의 처지는 이해되지만, 그것으로 지금의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심증이 가는 것이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가 아직 ‘인권’에 대한 의식이 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본의 사례에서처럼, 보행 중 흡연은 무기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옷을 태울 수도 있고, 몸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어린 아이가 겪었다면 마음의 상처는 더욱 클 것이다. 약자의 인권에 대한 배려는 아직 멀다는 느낌이다.
또 하나는 ‘남성문화’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여성 흡연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드러내놓고 담배를 태울 수 있는 계층은 성인 남자다. 나조차, 장정 여럿이 대중식당과 같은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태우더라도 “담배 꺼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린 아이나 여성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자는 방어적 수단으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남성인 나는, 담배문화의 가해자다. 나도 빨리 금연을 준비해야겠다.
덧붙임
김현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연구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