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11월 영화등급위원회(아래 영등위)는 △성정체성이 미숙한 청소년에게 동성애를 수용하거나 소화하기 어려워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을 저해한다는 점 △건전한 사회윤리, 선량한 풍속 및 사회통념 등에 비추어 보아 청소년이 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을 내세워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렸다. 특히 동성애가 청소년에게는 모방성과 선정성을 높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2010년 2월 4일 <친구사이>와 <청년>,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은 행정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였고, 지난 9월 9일 행정법원 제7부(재판장 이광범)은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영화 ‘친구사이?’가 청소년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성적 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교육적인 효과를 제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동성애를 내용으로 한 영화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이 영화에서 다루는 동성애에 대한 내용이 청소년들의 인격형성에 지장을 초래하기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동성애를 유해한 것으로 취급하여 그에 관한 정보의 생산과 유포를 제한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의 인격권, 행복추구권에 속하는 자기결정권 및 알 권리, 표현의 자유, 평등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의 판결은 ‘청소년 보호’를 외치며 동성애를 유해한 것이라며 떠들던 많은 이들의 잘못된 시선을 바로잡고, 현실 사회에서 변화하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의식을 정확히 읽은 것이다. ‘동성애’가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가히 전향적인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재판부의 판결이 진일보한 점이 있지만, 여전히 동성애에 대한 가치판단에 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전히 일상생활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해 긍정적 발언, 혹은 옹호를 하게 되면 ‘동성애자’로 오해받는 상황과 그 너머의 ‘동성애’의 가치 판단을 목격한다. 영화 ‘친구사이?’의 재판부와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군형법 92조 위헌 판단과 관련해서 헌법 재판관들 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경향을 알 수 있다. 이성애자인 자신이 ‘동성애’에 대한 인권과 입장을 말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자신의 성정체성(동성애자가 아님을)을 밝혀야 하고, 자신은 그 쪽(?)과 정말 무관함을 강변한 후에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해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여성이 아님을 강변하지 않는다. 내가 장애인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장애우가 아님을 강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유독 성정체성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동성애자’아님을 강변해야 하는 점이 바로 ‘동성애’와 ‘동성애자’가 처한 현실이다.
이번 판결에서 행정법원은 스스로 ‘동성애’에 대한 가치판단을 직접 하지 않고, 동성애에 관하여는 이를 이성애와 같은 정상적인 성적 지향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며 ‘주장’으로 표현했다. 아직 한국 법원에서 동성애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한 적은 안타깝게도 없다. 그렇지만 영등위는 항소를 예정하고 있기에 2심 재판부가 더욱 진일보한 판단을 하도록 기다려 본다. 그렇지만 영등위가 부끄러운 항소를 진행하는 대신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며, 이번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차별적이고 자의적인 심의기준 적용을 중단하고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는 심의기준을 마련해 준다면 더욱 기분 좋은 일이 아닐까!
덧붙임
박기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