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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죽음을 기억하라

그의 바람은 꽃비 되어 저항으로 다시 피어나리니

[기획] 죽음을 기억하라 (20-끝) 육우당

[편집인주] 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오름>은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 인권의 현실을 점검한다.


2003년 어느 청소년 동성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에요”라며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몰지각한 편견과 씹스러운 사회가 한 사람을 아니, 수많은 성적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반 성경적인지...”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고 육우당 3주기 추모행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고 육우당 3주기 추모행사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편견과 차별 그리고 반인권적 기독교계의 살인

술, 담배, 수면제, 파운데이션, 녹차, 묵주를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 말하며 자신을 ‘육우당’(六友堂)이라 불러주길 바랬던 청소년. 청소년보호법상 ‘동성애자 차별조항’의 삭제를 권고했던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누구보다 반겼던 동성애자 청소년 육우당.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국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라는 성명에 누구보다 분노하며 일간지에 기고를 한 가톨릭 신자 동성애자 청소년 육우당.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보수적이고 반인권적인 기독교계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가 하늘나라로 올라간 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 동성애자의 삶과 인권문제가 인권운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육우당의 삶은 언제나 청소년 인권문제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딘 변화일지 몰라도 육우당의 이야기는 동성애자, 성소수자들의 삶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다. 그리고 그가 바랐던 것처럼 모든 동성애자, 성소수자들은 차별과 억압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아직도 계속되는 낙인

2007년 10월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의 의견을 받는다고 했을 때, 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죽음을 방치하고도 모른 척 했던 뻔뻔한 한기총을 위시한 보수, 반인권적 기독교계는 차별금지법을 ‘동성애차별금지법’이라 호도하며 호들갑을 떨며 차별사유 중 ‘성적지향’의 삭제를 주장했다. 고통 받는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성경의 언어는 그들에게 화석화되어 버렸고, 도리어 그들은 화석화된 ‘소돔과 소모라’ 운운하며 성소수자들을 공격했다. 차별금지법안은 누더기가 되어 성적지향, 병력, 학력, 범죄전력, 출신국가, 가족형태, 언어가 삭제된 채 정부안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2007년 12월 19일, 우리는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한 대선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보았다. 비단 성소수자만을 겨냥해 자신의 미천한 인권감수성을 드러내며 발톱을 보였던가? 결코 아니었다. 장애인을 비하하고 여성을 비하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던 뻔뻔한 자신감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자신의 행보를 이어갔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자신의 지휘봉 언저리에 놓겠다고 한다.

차별에 맞서겠다! 낙인을 끊기 위해 행동하자!

육우당이 세상을 떠났던 2003년, 동성애자인권연대를 비롯해 성소수자단체들은 ‘동성애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라는 사회적 담론을 깨기 위해, 그리고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자 차별조항의 삭제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대학로에서 욕설도 들어가며 캠페인을 펼쳤고 명동 한복판에서 집회도 개최했다. 그리고 연대의 이름으로 동성애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준 진보적인 단체들과 소중한 기독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2007년 차별금지법안 성적지향 삭제와 성소수자 혐오 및 차별에 반대하는 거대한 운동이 성소수자진영에서 일어났다. 거리에 나서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고 캠페인, 집회, 건널목 시위, 1인 시위 등 다양한 활동이 벌어졌다. 성소수자 뿐만이 아닌 인권, 여성, 장애, 기독교 등 다양한 진영이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해 모였고 ‘반차별 공동행동’이 만들어지며 형식적인 연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연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올거에요’라고 육우당이 말했던, 실현되지 않았지만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워 나갔다.

2008년 4월 24일은 거리에서 육우당을 만난다

2MB(이명박)가 쏟아낸 것들은 끔찍하다. 한미FTA에 찬성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할 것이며 대규모 토목공사로 돈을 쏟아내 단기간 경제 성장에 급급할 것이다. 기업규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대기업들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고, 심지어 “가장 모범적인 CEO는 예수”라고 말하며 보수기독교 세력들에게 자신이 또 한 번의 기적을 내릴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용주의적인 경제 성장 정책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들을 축소 혹은 제거하려 시도할 수도 있다. 펄럭이는 보수화의 깃발 아래 휘청거릴 존재는 사회적 소수자들이다. 2MB를 비롯해 그의 추종자들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배제와 차별 그리고 낙인을 찍으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점점 넓혀나갈 것이다. 이러한 시기, 이들에 맞서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육우당이 세상을 떠난 지 다섯 해가 되는 올해 4월, 거리에서 육우당을 만날 것이다. 추모가 아닌 저항을 이야기하며 육우당을 만나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희망과 평등’ 그리고 ‘낙원’을 이야기할 것이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라며 우리에게 용기를 주었던 그에게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싸울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저항의 힘을 많은 이들과 나눌 것이다.

낙원가
- 육우당

어서오라 어서오라 / 평화로운 세상이여 / 어두컴컴 암흑세계 / 잡아먹고 어서오라 // 은하수가 흐르듯이 / 꽃잎타고 흘러오라 / 평등평화 아름다운 / 세상이여 어서오라 // 동성애자 보호받고 / 장애인도 존중받고 / 흑인또한 사람대접 / 받는세상 낙원이여 // 그런날이 온다면은 / 모든이가 밤낮없이 / 덩실덩실 춤을추며 / 기뻐할 것이다
덧붙임

◎ 장병권 님은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