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주] 모든 죽음은 산 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기지만 어떤 죽음은 산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런 죽음은 죽은 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긴다. 생물학적 죽음을 수반하지는 않더라도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회적 죽음도 있다. 죽음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음을 부르는 한국사회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죽음이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인권오름>은 노무현 정권 시기인 2003년부터 최근까지의 죽음 가운데 점점 잊히고 있지만 산 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죽음을 기록함으로써 한국사회 인권의 현실을 점검한다.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넘는 시위자를 전원 연행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위자들을 현장에서 연행하기 위한 검거전담조도 꾸릴 예정이고, 이미 올 초부터 훈련까지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여기에 전기충격기, 최루액을 사용하는 방안까지 고려한단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법질서 확립’을 강조한 것에 대해 경찰청이 인수위에 내놓은 대책들이다. 벌써 새로운 진압 매뉴얼까지 만들고 있다고 하니 거리 집회의 현장에서 검거전담조를 마주치게 될 날도 이제 머지않은 것일까?
경찰폭력과 죽음
이태 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농민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했던 전용철 농민이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세상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당시 경찰은 전용철 씨가 스스로 넘어져 사망한 것이라며 이 죽음을 왜곡했고, 농민대회 때의 무자비했던 경찰폭력과 한 농민의 죽음이 무관하다며 사건을 둘러대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언론에 공개된 사진 한 장, 전용철 씨가 분명한 농민 한 명이 부상당해 실려 나가는 사진 한 장이 흐려질 수도 있었던 진실의 향방을 갈랐다. 그해 11월 정부의 살농 정책에 분개해 여의도로 향했던 농민들을 향해 벌였던 경찰의 살인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전용철 농민과 뒤이어 사망한 홍덕표 농민의 죽음은 집회의 자유와 경찰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심각한 사회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마침 같은 해 10월 경찰은 독재시대 폭력의 상징이었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폐쇄하고 여기에 인권보호센터를 들여놓으면서 ‘인권경찰’ 운운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뒤 경찰이 두 농민을 무자비하게 때려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찰이 내세운 인권경찰론이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사람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당시 경찰폭력에 항의하던 많은 사회단체들과 시민들의 여론에 힘입어 그해 말 경찰은 잠시 유화적인 모습을 보인다. 경찰폭력에 대한 사회적 여론에 밀려 경찰청장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경찰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전의경실명제 등 몇 가지 대안을 경찰 스스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시계추는 거꾸로 움직였다. 전용철·홍덕표 농민을 살해한 당사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그 다음해가 되어서도 오리무중이었고, 심지어 현장 진압책임자 이종우는 강원경찰청 차장으로 승진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신임 경찰청장으로 취임한 이택순 경찰청장은 지난날 경찰폭력에 대한 반성은커녕 취임사를 통해 더욱 강력한 집회시위 통제의지를 드러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2006년에 들자 경찰은 새로운 조직을 출범시켰다. 형식상으로야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었지만 내용상으로는 경찰의 것이 틀림없는 ‘평화로운 집회시위문화를 위한 민관공동위원회’가 그것이다. 위원회는 집회시위문화를 개선한다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통제할 수 있는 여러 위험한 대책들을 발표했고, 노무현정부에 반대하는 여러 집회시위를 공격하는 이데올로기를 때론 양산하기까지 했다. 2006년 말 한미FTA에 반대하는 노동자·농민의 여론이 확산되면서 대규모 항의집회가 이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광화문 등지의 도심시위에 대해 시민들이 반대한다”라는 그 의도가 분명한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또 전용철·홍덕표 씨 사망 이후 경찰이 스스로 내놓은 대책인 전의경실명제마저도 백지화시키는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집회현장의 경찰폭력도 어김없었다. 2006년 연초부터 경찰은 평택 대추리 주민과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향해 곤봉과 방패를 겨누더니 5월에는 1만여 명의 경찰이 동원돼 대추분교 철거에 저항하는 수백 명의 시민을 유혈진압한다. 경찰은 그 이후로도 1년 내내 대추리 인근에서 불법검문을 자행하면서 대추리 주민들을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지게 만들었다. 대구·포항 등 건설노동자 파업투쟁에 대한 경찰의 탄압이 점점 거세지더니만, 급기야 7월에는 건설노동자 하중근 씨가 경찰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어 며칠간 벌어진 충돌사태에서 경찰은 항의하는 시민들을 폭행하고 임신부를 유산시키는 등 고삐 풀린 ‘공권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해를 이어 한미FTA반대 집회에 대한 경찰의 집회금지통고 남발,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에 대한 경찰의 원천봉쇄, 집회를 막기 위해 시청 앞 광장을 휘감아버린 경찰차량의 이미지… 이런 것들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경찰은 집회현장에서의 빈번한 폭력행사는 물론이거니와 집회시위를 통제함으로써 이제 우리사회의 여론형성을 좌지우지하고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공론을 와해시킬 수도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점점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경찰폭력에 의지할 이명박 정권
노무현 정부는 집회와 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을 활용하면서 특히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생존권 차원의 투쟁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경찰폭력을 동원해왔다. 생각해보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던 초기, 그러니까 2003년에 도심집회금지 등을 골자로 집시법이 개악되었던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이 개악된 집시법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많은 노동자·농민들의 목소리를 제압해왔다. 전용철, 홍덕표 그리고 하중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집회현장에서 죽거나 다쳐왔다
지난 몇 년간 경찰폭력은 민중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투쟁에 집약적으로 가해지고 있다. 건설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농민들이 지난 몇 년간 경찰폭력의 막대한 희생자들이었다. 이 풀뿌리 민중의 생존권 요구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신자유주의 정권은 점점 경찰권력에 의지해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을 관철시킨다. 경찰은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여러 위기와 저항을 관리하는 ‘위기관리자’에 불과하다.
하물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는 마당에 경찰은 이런 위기관리자로서의 위상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인수위 경찰청 업무보고에 집회시위 통제방안이 그토록 중요한 업무사항으로 보고된 것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을까? 집회의 자유가 제한되었던 경향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고 경찰폭력도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법과 질서’ 그리고 ‘경제’의 이름으로 인권에 대한 요구와 투쟁은 한량한 짓으로 치부될 것이다. 전용철, 홍덕표, 하중근. 지금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덧붙임
◎ 손상열 님은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