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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의 인권이야기] 한강의 비밀

개발로 사라지는 강-감수성


한강으로 가는 길

서울에서 태어나 한 20여년을 살면서 한강에는 몇 번이나 가보았을까. 맥주 마시러 몇 번, 자전거 타느라 몇 번, 애인이랑 뽀뽀한다고 몇 번, 유람선 탄다고 한 번. 아, 지하철과 버스 타고는 수백 번쯤 지나다녔을라나? 내가 태어나던 해 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고 그 다음해부터 “혹사해왔던 한강에 우리들의 정성을 되돌려주는” 한강종합개발이 시행되었다. 강폭은 넓게 수심은 깊게, 강둑에는 고속도로 강물에는 유람선을!

강은 원래 그런 모습인 줄 알았다. 쌩쌩 달리는 차들 밑으로 지하도를 탐험해야 도달할 수 있는 강. 강물에 맞닿아 있는 콘크리트 계단에 앉아 맥주나 홀짝홀짝 마시는 강. ‘괴물’이 태어나고 뛰어다니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는 강. 강변에 노천 수영장을 만드는 기막힌 생각은 누가 해냈을까? 강은 더럽고 깊어서 ‘원래’ 들어갈 수 없는데, 고수부지 수영장 덕분에 강에도 물장구치러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개발되는 것은 강-감수성

그러나 맙소사! 최근에 알게 된 비밀 한 가지. 한강이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곳곳이 모래사장이었다네. 그래서 여름이면 물 반 사람 반의 강수욕 장관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나만 몰랐나? 비밀처럼, 금기인 듯, 강은 숨겨져 왔다. 강변의 그 모래들은 다 아파트가 되고, 어른들은 강 대신 콘크리트 수로를 물려주었던 것이다. (그 시절 한강, 사진으로 엿보기)

어쩌면 죽은 강을 살리는 모든 사업에서 개발되는 것은 강이 아니라, 우리가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강에 대한 감수성이다. 새로운 감수성에 맞게 모든 것이 다시 개발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4대강을 한강처럼”이라는 구호가 부끄럽지도 않게 외쳐지고, “자전거도로와 고수부지 공원을”이라는 구호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강─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런 ‘강─감수성─없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강이 제공하던 생태계 서비스

망각되고 사라진 것은 강 그 자체만이 아니다. 강이 우리에게 제공하던 생태계 서비스(아주 인간적인 개념이긴 하지만)도 함께 사라진다. 마실 물을 제공하는 정화작용, 먹거리가 되어주는 강 속 생명들, 농사를 위해 유기물과 비옥한 흙을 공급해주던 범람원과 습지, 그리고 물론 강수욕을 즐길 수 있게 해주던 모래사장까지. 이것들이 사라진 만큼 인간은 생태계 서비스를 재현해야 하는데, 애초부터 가능하지도 않지만 흉내를 내는 데만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고 있다. 한강 유지비용은 1km당 11억 원 , 청계천 유지비용 매일 2천만 원씩!

생태계 서비스를 재현한다는 것은, 개울이 필요한 시민들을 위해 매일 12톤의 물을 전기로 퍼 올려 인공수로 청계천을 만드는 따위의 일이다. 모래사장을 뒤덮은 콘크리트 위에 다시 강변 수영장을 만들어야 하고, 자연정화가 되지 않는 물은 약품처리를 통해 상수도에 공급해야 한다. 깊어진 수심에 산란할 수풀과 여울을 잃어버린 물고기들에게 인공산란장을 마련해줘야 하고, 매년 홍수에 범람하는 고수부지는 홍수 전의 인공적인 모습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청소를 필요로 한다. 가끔, 20만 마리씩 은어도 방류!

현명한 선택은 ‘오래된 미래’

생태계 서비스를 파괴한 다음 다시 흉내 내고자 하는 어리석은 악순환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 자연 상태를 복원해 생태계가 제 기능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한강의 경우 보의 철거와 콘크리트 호안의 해체가 정화작용을 비롯한 생태계 서비스를 복원하는 첫 걸음이다. 콘크리에 갇힌 강을 숨 쉬게 하면, 습지ㆍ여울ㆍ모래톱 등의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그에 따라 물도 차츰 맑아질 것이다.

때마침 서울시장 선거에서 잠실보와 신곡보의 철거가 이슈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나경원 후보는 보를 철거하면 취수장을 옮겨야 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데, 보 때문에 물이 나빠져서 취수장은 지난 달에 남양주로 옮겨갔으니 걱정 마시고 보를 철거하면 좋겠다.
덧붙임

승욱 님은 두물머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