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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공룡트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울림을 주는 그림책 두 권

대부분의 어린이 책들은 어린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쳐주려고 하는 책들이 많아. “서로 돕고 살아야 해!”, “평화롭게 살아야 해!” “욕심부리지 말아야 해!”, “환경을 보호해야 해!”라고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어린이들을 가르치려는 책들을 어린이들이 잘 고르지 않아. 그 이유는 뭘까? “너희들은 잘 모르니까 어른들이 알려주는 대로 살아야 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린이기 때문에 더 많이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을수록, 그래서 어른들의 목소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어린이들은 점점 더 흥미를 잃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어린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을 읽었을 때 어린이들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어린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 두 권을 소개하려고 해.

먼저 이야기하려는 책은 『나무 하나에』(김장성 글, 김선남 그림, 사계절)야.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나무 하나를 보여주고 있어. 복잡한 설명도 없고 글도 아주 간단히 적혀있을 뿐이지.

나무 하나에 구멍이 하나 있고 그 구멍 속에 다람쥐 다섯 마리가 살고 있고, 나무 하나에 둥지가 하나 있고 여덟 마리의 오목눈이 가족이 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식이지.

분명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어린이들에게 그것을 주장하지 않아. 그냥 나무 한 그루에 살고 있는 크고 작은 생물들을 보여줄 뿐이야.

나무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생명들이 하나씩 펼쳐지면서 자연스럽게 한 그루 나무가 품은 생명들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그리고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줘. 그리고 이러한 나무가 수십 수만 그루가 있다면 그 속에서 함께 자라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를 어린이들이 상상할 수 있게 해줘.

그래서 이 책 『나무 하나에』는 짧아도 다른 어떤 책보다 더 많은 것을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하는 책이야.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우리 어린이들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나무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빛이 나는 책이라고 생각해.

두 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우리 딸은 어디 있을까?』(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논장)야. 이 책은 숨어있는 딸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돼. 그런데 숨바꼭질 놀이에서 딸의 겉모습을 이야기해주지는 않아. 단지 ‘우리 딸’이 어떤 사람인지를 하나하나 보여줘.

‘우리 딸’은 새처럼 즐겁다가 물개처럼 슬프기도 하고 거북이처럼 느리다가 캥거루처럼 날쌔기도 해. 그리고 어떨 땐 사자처럼 으르렁거리지만, 또 어떨 땐 아기 양처럼 온순해지기도 해.

이렇게, ‘우리 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헝겊으로 기워서 만든 예쁜 동물 그림이 펼쳐져. 이 헝겊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이 그림책 속 ‘우리 딸’이 누구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해.

그리고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나 역시도 그림책의 ‘우리 딸’처럼 어떨 땐 즐겁고 어떨 땐 슬프기도 하고 어떨 땐 겁이 많고 어떨 땐 용감한 존재라는 것을 하나씩 알게 되지. 나와 같은 점도 다른 점도 있는 ‘우리 딸’은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하지? 궁금하면 이 책을 꼭 읽어봐.

이 책은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그래서 다른 장애를 다룬 책처럼 장애인을 초인적으로 묘사하지도,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도 이야기하지 않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어린이에게 “장애를 가진 친구에게 어떻게 해야 해.”라고 가르치지도 않지.

하지만 이 책은 장애를 다룬 다른 모든 책보다도 더 큰 울림을 주고 있어. 강하게 주장하거나 가르쳐 들려고 하지 않아도 가만히 작은 목소리로 어린이들에게 속삭여주는 이야기가 숨어있어.

이 책이 더욱 좋은 점은 이 책에 사용된 모든 그림이 유럽의 헌 옷 가게에서 구한 천들로 손수 바느질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야. 하나하나 바느질로 만들어진 따뜻한 그림들은 굳이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느끼게 해줘.

아직도 어린이 책은 교훈적이어야 하고 무언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어린이 책 중에는 억지로 어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끼워 넣은 것 같이 불편한 책들도 있어. 먼저 가르쳐 들기 전에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줄 수 있는 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위에서 소개한 두 권의 그림책 『나무 하나에』와 『우리 딸은 어디 있을까?』처럼 말이야.
덧붙임

이기규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