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의 싸움, 그것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려는 듯 하루에도 수차례 엄청난 소음을 내며 헬기로 공사 자재가 날라진다. 그 모습을 보며 “경찰서장님, 우릴 막지 말고 저 헬리콥터를 막아주세요.” 울부짖으며 큰 절을 하던 한 할매는 몇 번을 실신했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는 오뚜기야!” 그러고는 벌떡 일어난 그 할매의 무릎은 푸른 멍이 가득했다. 그때 나도 숨이 콱 막혔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겠구나.’ 문득 스쳐간 생각이 그랬다.
2012년 1월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자결 소식으로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알게 되었다. 2005년부터 싸웠다는데 그때서야 알았다. 그리고 지난 겨울 대한문 ‘함께 살자 농성촌’에서 밀양 할매들을 처음 만났다. “늙은 우리도 이렇게 싸우는데 젊은 너희들은 더 잘 싸울끼다.”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던 할매들은 함께 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위안이었고 힘이었다. 잠깐에 불과하지만, 위안과 힘을 되갚을 수는 없지만 할매들의 옆에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5월 밀양에 갔다. 그 찰라 같던 시간도 할매들에겐 위로였나 보다. 토닥토닥 안아주며 고맙다 말하던 할매들의 눈물.
추석 전 조만간 다시 공사가 재개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뭐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뭘까 싶었다. 그리고 10월 1일 호소문을 발표한 후에 공사를 재개하겠다는 약속을 한전은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9월 30일 장비를 투입하고 새벽에는 경찰 병력과 함께 한전 직원들을 투입했다. 밤낮없이 시도하는 공사 강행을 막기 위해 세운 조촐한 농성장을 철거하겠다며 10월 2일 밀양 시청 직원들이 대거 들이닥쳤다. 짜고 치는 고스톱 마냥 정부와 한전, 경찰이 벌이는 합동작전으로 지금 밀양은 준계엄 상태이다. 3000여 명의 경찰이 마을 곳곳을 점령하였다. 한 평생을 살아온 삶터이건만 밀양 주민들은 차단당하는 길목을 한전 직원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드나든다. “왜 우리만 막냐”고 물어도 답이 없다. 공무집행 하는 것이니 복면을 벗으라고, 소속과 신분을 밝히라고 요구해도 모르쇠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채증카메라가 공중 위를 날아다닌다. 항의할 상황을 일부러 만들고서는 항의하면 연행해버리거나 체포하겠다 협박한다. 항의하는 주민들은 방패로 둘러싸서 가둔다. “고착해” “끌어내” “채증해” “체포해” 불법이 난무하는 밀양에서 20일 넘게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를 주민들은 견뎌내고 있다.
인권을 부르는 현장에 가는 것, 그 몫을 하자고 모인 이들이 밀양으로 향했다.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하며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 상황이 중단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이러한 상황을 알리고자 분투하고 있다. 초법적으로 몰아치는 공권력의 광풍이 사그라들길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의 친구들이 되어 할매들의 곁을 지키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또 촛불을 들고 공사 반대를 선언하며 저마다의 자리에서 마음을 보태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밀양을 외롭지 않게 하는 위안이 되고 힘이 되면 좋겠다.
밀양에서 강정이 보여 마음이 아프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 역시 많은 사람들과 현장들이 겹쳐졌다. 공사 말고 농사! 한전 말고 밭전! 농부로서의 삶, 평화롭던 일상을 되찾기 위해 오늘도 밀양 할매들은 길을 나선다. 고된 그 길은 불의에 맞서는 길이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을 중단케 하는, 사람의 자리를 지키는, 우리가 함께 나서야 할 길이다. 부디 겨울이 길지 않길. 따뜻한 햇살이 빼곡이 들어찬 밀양에서 일상을 되찾은 할매들을 만나고 싶다.
* 밀양 인권침해 보고서는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그간의 감시활동을 토대로 10월 28일 밀양 인권침해 중간보고회를 진행한다. my765kvout.tistory.com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