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3개월 수습기간이 끝나면 올려주겠다고 했다. 일을 구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올려줄 것인지 물어보긴 어려웠다. 평균이라 이야기되는 것이 있으니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지, 막연했던 믿음은 4번째 달 급여 숫자가 박힌 통장을 보면서 깨졌다. 그것이 계기가 된 내 인생의 첫 임금 협상은 누구나 그렇듯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내 돈줄을 쥐고 있는 사장 앞에서 더 줘야 한다는 나의 요구는 내 어려운 조건에 대한 호소로 바뀌었다. 결국 몇 만원 더 인상하긴 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왜 그렇게 떨었던 것인지 한없이 작아졌던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남았다. 얼마는 되어야 한다고 구체적 숫자로 말하긴 어렵지만, 일한만큼을 떠올릴 때 부족하다는 느낌, 그 느낌을 오롯이 나의 개인적 느낌처럼 여기려 하는 사장 앞에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아의 실현이라는 환상은 날아가고,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은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주어진 임금은 유일한 생계수단이 된다. 파이를 키우는 게 먼저라고, 그래야 나눌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는 말을 반복할 뿐, 한 치도 나아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우린 이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2014년 적정 임금인상률을 2.3% 이내로 제시한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3월 18일 공단 노동자들의 저임금 문제를 알리며 40만원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40만원 임금인상은 지난겨울 4개 공단(서울의 디지털산업단지, 부산의 녹산공단, 안산․시흥의 반월시화공단, 대구의 성서공단)에서 임금실태와 임금요구안 조사를 하며 만난 3717명의 공단 노동자의 목소리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저임금 노동자 비율(25.1%)이 가장 높은 한국 사회에서 공단지역은,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42.9%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밀집 지대이다. 산업단지란 이름을 붙이고 검은 연기를 뿜던 굴뚝 대신 크고 높다란 건물들이 들어차면서 공단의 이미지 변모를 꾀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은 달라지지 않았다. 유일한 생계수단인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잔업․휴일 특근을 마다하지 않지만 하루 10시간을 일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법정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으로 자리하는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더 오랜 시간 일하는 수밖에 없다. 임금이 낮을수록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다는 조사결과 막대 그래프가, 여전히 많은 수가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제한 등 최소한의 법망에서조차 벗어나있다는 통계 수치가,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일에 붙들려 살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섣부른 기대임을 확인케 했던 경험들이 말한다.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길 강요되었던 자리에서 이탈해야 하는 때라고.
40만원 인상 요구의 의미
이번 조사에서 공단지역 저임금 노동자들의 월 평균 고정급은 106.3만원, 인상 필요액으로 산출된 41.4만원을 더해도 147.7만원이라는 희망임금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임금이 생계를 보장하는 수단이 전혀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최소한의 삶을 위해 40만원은 인상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소박하다 못해 씁쓸하기까지 하다. 최소한이란 말에는 내일에 대한 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희망임금이 진짜 '희망'이 되려면 최소한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임금 인상 이야기와 함께 늘 딸려 나왔던 각종 숫자들이 있다. 몇 %의 물가상승률은 최소한의 임금 인상 근거가 되었고, 몇 %의 경제성장률은 임금 동결의 이유가 되었다. 사실상 사측 입장이 관철되는 방식으로 결정되는 최저임금을 둘러싼 줄다리기에서 평균임금 50%는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40만원 인상 요구는 몇 %로 담을 수 없는 공단지역 저임금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목소리이다. 인간다운 삶을 말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지만, 적어도 이 정도는 더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신의 노동과 삶이라는 구체적 경험에서 기인했다는 점, 그러하기에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양산하면서, 그렇게 저임금의 굴레를 더 견고하게 만들면서 임금이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경기가 좋지 않다느니, 중소영세기업이 어려워서라느니 언제나 같은 말만을 반복해왔다. 그리고 경총은 그동안 중소영세기업에 대한 수탈을 확대하면서 대기업의 수익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재벌의 나팔수 노릇만을 해왔다. 공단노동자의 요구가 개별 사업장에 머물 수 없는, 결국 저임금 구조를 만들고 확산하는 경총에 임금 인상 요구를 하는 이유다.
조사에 함께 하면서 과연 현실이 될 수 있냐는 회의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이야기, 적어도 이 정도는 임금이 올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3717명의 목소리로 전해진 공단 노동자들의 이야기임을 함께 알았다는 것, 이번 조사가 나 혼자가 아니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로 서로 만나는 자리를 여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한다. 밑바닥으로 내몰리면서 어떻게든 나 홀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밑바닥으로 내모는 저 힘에 함께 맞서는 것, 진짜 '희망'은 거기에서부터 가능함을 기억하자. 40만원이 숫자 이상의 의미로, 설렘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