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세월호 참사 1주기가 가까워지고 있지만 진상조사에 나서야 할 특별조사위원회가 시작부터 큰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중요한 기록으로 많은 이들에게 읽힐 필요가 있다.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어 ‘그 날’을 재구성하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세월호 선원과 청해진해운 및 관계자를 대상으로 5개월간 이루어진 재판을 취재하고, 법정에서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세월호 사고를 재구성해낸 책이다. 단순히 재판에서 다뤄진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침몰, 구조, 출항, 선원의 항목으로 나누어 사고 전후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안산에서 6년째 살고 있는 저자는 “세월호 희생자 및 피해자들이 남긴 숙제를 해결하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416세월호참사의 기록을 남기는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세월호를 기록하다> 서두에서 숙제, 즉 진실규명에 나선 사람으로서 가장 먼저 ‘재판’에 주목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법정은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증거와 증언이 모이는 곳”이며 “상대의 주장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공격하고 방어하는 과정에서 진실의 실마리가 드러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의도는 작가의 성실성, 사실을 대하는 논리적이고 성찰적인 태도와 만나 매우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었다.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어 세월호 참사의 진상에 대해 이제껏 가장 근접한 그림을 그려낸 것이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 우리는 ‘풀리지 않는 의혹투성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동안 우리가 밝히지 못한 의혹들에 집중한 나머지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중요한 사실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흩어져 있는 사실들이 그냥 파편으로 남지 않도록, 저자는 관련 기록들을 치밀하게 살피고 공부한다. 그렇게 이 책은 세월호 참사의 그림을 그려 보이는 과정에서 ‘진실’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일깨우고 있다.
“‘진실’의 이미지는 종종 고고히 등불을 들고 걸어가는 성자의 모습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는, 가만히 두어도 언젠가 발견되며 누구든 보기만 하면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선명한 불빛이 아니다. 진실은 주관적인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사회적 관계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진실은 여러 사람이 합리적 이성에 기대어 주장하고 경청하며, 입증하고 반박하며, 대화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만 살짝 두건을 걷고 얼굴을 드러낸다.”
진실이란 쉽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며 구체적인 노력과, 때로는 혼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용기가 필요하다. 평지를 걷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줄 위에 서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것이다. 무엇보다 진실은 민주적인 과정이 보장될 때만이 온전히 도달 가능하다.
재판기록의 ‘한계’가 말하는 우리의 출발점은
저자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AIS신호 조작, 잠수함 충돌설, 선내 CCTV전원차단, ‘오렌지맨’의 정체 등 세간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합리적 설명을 찾아 나간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부분에는 솔직하게 물음표를 쳤다고 밝힌다. 재판 기록을 통해 세월호 사고를 재구성하지만, 한편으로 재판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의 한계 또한 짚고 있다.
첫 번째 한계는 세월호 사고와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참사를 6개월이라는 형사소송법상 제약된 시간 안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폭넓고 심층적인 분석이 보장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민관의 전문적인 역량을 결집해서 재판에서 밝힌 내용을 토대로 그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의 한계이다. 형사소송은 현행법상의 위법행위만 따지기 때문에 “위법하지 않지만 사고가 일어날 전반적 조건을 숙성시켜온” 행위들이 “세월호 재판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법적 책임을 묻는 행위가 자칫 사회적, 정치적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는데 그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Iris Young)의 목소리를 끌어와 권력자들에게 ‘정치적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부정의를 바로잡을 충분한 기회와 자원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여러 이익과 특혜를 누렸기 때문이다.”
세 번째 한계로 저자는 세월호 사고가 법정에서 “정상국가에서 일탈한 사례로 규정된다”는 점을 꼽았다. 이러한 식의 성격 규정은 “참사 이후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통찰을 얻기 힘들게 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어쩌면 이 사고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세월호 사고를 낳은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여긴 바로 그 국가, 그 사회 시스템이란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조금 우회해서 설명하자면, 이는 내가 세간의 의혹처럼 이 참사를 어떤 음모나 기획으로 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상식을 초월하는 이 사고에는 당연히 상식을 초월하는 어떤 거대한 ‘일격’이 있었을 것 같지만, 나는 재판 과정을 통해 참사의 배경에 있는 것은 촘촘하게 결합된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고 무능한 행동들이란 사실을 알았다.”
‘구조적 부정의’로 유지되는 ‘정상국가’를 바꿔라
저자가 법정 기록의 한계로 지적하는 지점들이야말로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 민낯을 드러냈다’는 말의 근본적 의미이며,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가능한 특별법 제정을 외쳤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로 “복잡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한 책임을 진심으로 성찰”할 것을 주문한다. “허위로 점철된 정상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가장 약자가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부정의를 바꾸어야만 한다. 근본적으로 이 사회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책임’은 권력자들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시 한 번 아이리스 영의 말을 끌어와 우리가 함께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일깨운다. “우리가 속한 제도가 부정의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간 혹은 그런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과 연대해 그 제도에 반대해야 할 정치적 책임을 지닌다.”
권력자의 부정의를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고 무능한 행동”들을 바꿔나갈 수 있을지는 정말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구체적 개인들에게 주어진 정치적 책임을 실천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세월호 참사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조치 중 저자가 가장 안타까워한 세 가지로,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강력한 법적 장치에 이어 ‘십대의 권리’를 주목한 저자의 통찰이 주목된다.
덧붙임
박희정 님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 작가기록단으로 인권기록네트워크 '소리'에서 함께 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