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국가조찬기도회와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의회선교연합 등으로 구성된 ‘한국교계교과서ㆍ동성애동성혼특별대책위원회’는 “교육부장관은 교과서에 기독교 관련 서술이 일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비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동성애를 조장하는 교과서와 서울시 인권 조례를 즉각 수정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1년 후, 이 성명을 발표했던 대책위원회의 공동대표이자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의 서울지역 상임고문이었던 황우여 전 의원이 교육부 장관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 성교육에서 성소수자 관련 용어와 내용을 삭제하고 언급조차 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학교 성교육 표준안’과 교육 지침을 발표했다.
2014년 11월에는 도덕 교과서 <생활과 윤리>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있다면서 교과서에 “난잡한 성관계를 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에이즈와 여러 질병의 위험에 처해있는 동성애자의 사례 등 불행한 삶을 서술하라”고 요구했던 ‘미래목회포럼’ 소속 최이우 목사가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탈동성애 인권포럼’ 같은 행사가 버젓이 열린다. 이들이 주장하는 ‘동성애 전환 치료’ 혹은 종교적 의미의 ‘동성애 치유’는 이미 수많은 국제인권기구들과 국제보건단체들이 반인권적이며 실효성도 없다고 결론을 내린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던 이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정부와 공공기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정책이 되고 있다. 이는 2007년 차별금지법 반대의 중심에 있었던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주요인물들이 뉴라이트의 핵심인사가 되어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후,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져 주요 정부 요직에 보수 개신교계의 인물들이 광범위하게 진출한 결과이다. 지난 몇 년 간 그 영향력과 정치적 효과를 확인한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우후죽순으로 수많은 단체들이 조직되어 이전보다 더욱 공격적인 방식으로 혐오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의 타겟은 비단 동성애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이주민 지원 정책이 ‘대한민국의 자살’이라고 선동하며(1월 19일자 동아일보 전면광고 <이자스민·임수경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에 의한 대한민국의 자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종북 세력들을 집회에 끌어들여 추모 행사를 폭력 시위로 변질시켰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4월 24일, ‘대한민국사랑종교단체협의회’ 기자회견) 이들이 시청 앞에서 나눠주고 있는 팜플렛에는 ‘항문성교를 하지 않는 동성애자는 장애인 취급을 받는다’는 식의 동성애자와 장애인을 모두 비하하는 문구도 등장한다.
한편 최근 시청광장에서부터 광화문까지의 길에서는 ‘소돔시장 박원순’, ‘6/9 변태도시 인증의 날’, ‘종북, 세월호, 부정부패, 동성애 척결’, ‘종북, 통진당 돕는 새정치민주연합도 해산하라’, '민주노총 물러가라’는 등이 적힌 현수막을 연이어 볼 수 있다. 종북, 통진당,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민주노총, 세월호 유가족, 성소수자, 이주민이 모두 이들이 주도하는 혐오선동의 대상인 셈이다. 이쯤 되면 그들이 내세우는 알량한 종교적 명분조차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이들은 혐오선동을 통해 명백한 정치적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혐오선동과 파시즘 정치
이처럼 이들의 혐오선동이 단지 개별적인 혐오가 아닌,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일들을 더욱 걱정스럽게 만든다. 이들의 주장과 정치가 이미 파시즘의 양상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교적 차원의 선민사상을 결부시켜 친미-반공/반북과 애국을 앞세우고, 독재·반민주 정권들의 역사와 함께한 보수 개신교의 역사를 교과서에 서술하라고 요구하며, 대중매체를 비롯한 사회적 검열의 주체로 나선다. 성소수자, HIV/AIDS 감염인, 이주민, 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은 사회주의자이거나 질병을 퍼트리고, 범죄를 일으키며, 성윤리를 파괴하여 사회 혼란을 유발하는 세력으로 몰아간다. 무엇보다 이들은 대중의 불안감과 위기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교는 보수 정치의 든든한 기반을 만들어주는 대중적인 여론 조작의 도구가 된다. 파시즘의 대표적인 특징인 애국·집단주의, 반지성주의,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공격과 적대화, 성차별주의, 대중매체 통제, 안보와 군사주의 강조, 종교를 활용한 여론 선동 등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들의 행동과 정치에 모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보수 우파 단체들과, ‘서북청년단재건위’, ‘대한민국여성연합’, ‘엄마부대봉사단’ 대표인 주옥순, 선민네트워크 김규호 목사를 중심으로 한 보수 개신교 집단, 그리고 이들과 함께 천주교의 서석구 변호사, 불교의 정각 스님 등이 만든 ‘대한민국사랑종교단체협의회’ 등이 이런 행보를 주도하고 있다.
이제 이들의 혐오선동을 단지 소수 급진적인 우파 집단의 과격한 행동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때가 되었다. 70년대의 망령에 사로잡힌 이른바 ‘애국보수’들과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새누리당과 보수 정치권의 여론 부대, 행동 부대가 되어 확실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이들의 네트워크는 기업과 정치권, 종교계에 광범위한 이해관계로 얽혀 우리 사회를 파시즘적인 사회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반지성적인 주장들이 대중의 불안을 점점 극렬하게 조장하며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혐오는 이제 행동이 되고, 정치가 되었다.
혐오의 정치에 맞서는 연대의 정치가 필요한 때
한편, 이들은 이러한 혐오선동을 위해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일간지의 전면광고, 각종 팜플렛, ‘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대’ 등의 블로그, SNS와 인터넷 까페, 메신저 등을 총동원하고, ‘홀리라이프’는 ‘탈동성애자 커뮤니티’와 영상을 활용하며, khTV 등 온라인 방송국도 활용한다. 최근 일베는 세월호 집회에 나와 아프리카 TV로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또한 민관협력 거버넌스와 시민사회 영역을 구석구석 장악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2000년대 후반 이후의 주된 전략이다. 최근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보였던 박원순 시장의 행보, 성북구민 자치예산으로 선정된 성소수자 청소년위기지원센터 사업 예산을 불용시킨 김영배 구청장의 사례 등이 모두 이와 같은 지역 민관협력 거버넌스를 장악하고 있는 보수 개신교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권과 공공영역이 이토록 무기력하고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혐오선동과 그들의 정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혐오선동은 사실 가장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린다. 질병, 장애, 이방인, 북한에 대한 공포, 규범과 질서의 안전망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불안 등. 차이에 대한 낯설고 불안한 느낌은 이러한 공포와 불안들에 맞닿아 있다. 혐오선동은 이 공포와 불안을 이용하여 마치 이 대상들만을 배격하면 특정하게 완벽한 절대적인 집단 공동체가 가능할 것처럼 여론을 조장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되돌아보자. 어쩌면 우리 역시도 이 배타적인 정서를 공유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우리는 이 혐오의 거리를 그동안 어느 정도나 좁혀왔을까? 이들의 혐오선동이 만들어내는 가장 큰 효과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이 혐오의 조건들에 해당하는 경험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진실을 가리고 보지 못하게 하는 것, 그 효과를 통해 기득권 권력을 강화해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혐오의 구호들은 지금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든 결국은 소수 기득권을 제외한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며, 언제든지 ‘나’의 이야기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이 혐오의 정치에 함께 맞서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지난해 성소수자들이 혐오에 맞서 거리에서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는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였다. 이제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광장에서 “연대는 혐오보다 강하다”가 외쳐지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에게는 개별적인 정서를 넘어 실질적인 정치가 되어 가고 있는 혐오선동에 맞설 공동의 목소리,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몇 년 동안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들의 투쟁에서 그리고 지난 1년 세월호 투쟁 등에서 우리는 구체적인 연대의 경험들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오는 5월 16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T)’ 집회에는 그동안 만난 이들이 함께 모여 연대의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이날 모인 목소리들이 앞으로 실질적인 ‘연대의 정치’로 곳곳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임
나영 님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 네트워크 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