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치료’, 금지된 사이비 의료행위
이 단체들이 지향하는 ‘전환치료’는 학계에서 금지된 인권침해 행위이다. 소위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 reparative therapy)’라고 불리는 사이비 의료행위는 ‘탈동성애’, ‘전환’, ‘교정’ 같은 명명으로 성적지향이 마치 간단하게 변경이 가능한 것으로 호도하거나 혹은 원래부터 잘못된 것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대중에게 주입한다. 의학계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임상치료를 하는 사람들을 사실상 추방하였고 어떠한 주류 정신건강단체도 이러한 치료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치료는 효과도 없을뿐더러 내담자가 이미 경험하였을 수도 있는 자기혐오를 강화시킴으로써, 우울증, 불안, 자기 파괴적 행동을 부추기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자살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사이비 의료행위에 대하여 의료단체가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하거나, 정책, 가이드라인 등을 통하여 경고·주의를 주기도 하며 위반 시 자격증 박탈까지 이르는 징계도 가능하다. 1999년 브라질 심리학 연방 의회(Conselho Federal de Psicologia)는 “심리학자는 동성애적 지향을 치유나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여길 수 없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하기 했다.
한편 이러한 행위는 국제인권기구와 국제보건단체들이 매우 주시하며 우려하는 관행으로 국가나 지방정부가 법으로 금지하는 방식으로 규제하기도 한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이러한 사이비 의료행위가 미성년자 정신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막고자 미성년자에 대하여 전환요법을 실시하는 것을 금하는 법(SB-1172 Sexual orientation change efforts)을 통과시켰다. 청소년에게 의학과 과학에 기반을 두지 않은 요법을 강요하여 우울증과 자살로 몰고 가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의 법이다. 18세 이하 청소년에게 이러한 요법을 실시한 정신의학 종사자들은 자격증을 발부한 기관의 징계 절차에 회부된다.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 지사는 성명을 통하여 “성적지향을 바꾸려는 노력들은 과학적, 의학적 근거가 없으며 이는 이제 사이비 의료행위로 간주될 것”이라고 밝혔다.
UN 고문 특별보고관 후안 멘데즈는 2013년 보고서에서 성적지향을 바꾼다는 소위 ’치료‘는 의학적 정당화를 결여하였으며 건강을 위협한다는 범미주보건기구와 세계보건기구의 입장서를 인용하였다. 2015년 2월 뉴저지 최고법원은 ‘가능하지 않은 행위’를 약속한 것은 소비자보호법 상 사기에 해당하므로 ‘전환치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배상을 할 것을 명하였다.
'선한 얼굴‘을 가장한 차별과 혐오
이렇게 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는 사이비 치료자들은 종교기관의 우산 안에 숨어 있기도 한다. 이 행사의 주관단체들이 보수 기독교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일견 이들은 ‘신앙’과 ‘상담’의 이름으로 온정을 베푸는 듯하다. 심지어 ‘인권’을 표방한다. 하지만 국제인권단체들은 결국 이러한 활동의 실체는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함을 가장한 동성애 혐오라고 보고 있다.
1998년 미국 싱크탱크 정치연구협회(Political Research Associates)는 ‘계산된 온정’ 보고서에서 이러한 ‘상담 활동’은 반동성애 단체들이 강한 반동성애적 레토릭에 대한 반동을 고려해서 다분히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활동 방식이라고 폭로하였다. 우리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의 공청회에서 목격한 난동이 폭력적 반(反)동성애 활동이라면 이 활동은 ‘선한 얼굴’을 가장한 반(反)동성애 활동인 것이다. 이러한 ‘부드러운’ 얼굴을 한 반(反)동성애는 존재하지도 않는 병에 대해서 ‘치료’를 한다는 기망행위를 통하여 동성애가 ‘탈출’되어야 하는 상태임을 주지시키며 성소수자 당사자에게 자기혐오를 가중시킨다.
다시 한 번 숫자를 확인하라. 1998년의 일이다. 사실 이런 사람들의 시대는 국제적으로는 이미 지나갔다. ‘탈출’을 이야기했던 ‘탈동성애’ 국제단체 엑소더스 인터내셔널은 2013년 6월 동성애자들에게 사과하면서 단체 운영을 종료하였다. 이런 ‘탈동성애’ 단체의 운영자들이 나중에 ‘다시 동성애자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코미디도 수두룩하다. 이러한 사이비 단체들이 국회, 국가인권위원회 등 공적 정당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기관의 행사장을 빌리는 것은 당연히도 그들 전략의 일부다.
이번 대관 사태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항변한다. “동 시설에서 시민단체가 개최하는 세미나 및 토론회의 내용은 인권위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히며 “외형적 요건을 갖출 경우 가급적 많은 이용을 보장하려고 노력했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시민사회단체의 시설의 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는 모호한 기준의 내용심사를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탈동성애 인권 포럼’ 이름 자체가 온몸으로 신호를 던지고 있는데 왜 막을 수가 없는가. 이 명명 자체는 동성애를 하나의 성적지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정 혹은 탈출되어야 하는 상태로 상정하고 있으므로 이는 명백히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이다. ‘인권’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절대 쓸 수 없는 표현이다. 제목만 봐도 거부할 명분이 충분한 행사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때로 아시아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듯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곤 한다. 하지만 차별적인 법과 관행, 우호적이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서구에서의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대한 차별단체들의 반동적인 흐름 속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보편적 인권 보장의 차원에서 활기찬 지역적 인권 증진의 흐름들이 있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소수자 인권을 중요한 의제로 가지고 가지 않는 한, 절대 아시아의 ‘모범’ 국가인권위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답길
성소수자 인권은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국가인권위원회 모임인 아시아-퍼시픽 포럼에서는 비교법 보고서, 역량 강화 워크숍 등 공동의 작업을 통하여 좋은 선례를 공유하면서 인권 증진의 길을 모색한다. 각 국가의 인권위원회는 성소수자가 구체적으로 겪는 차별을 시정하는 작업, 올바른 정보를 유통시켜 사회와 대화하는 작업, 독립적 인권기구로서 정부 내 이해도를 높이는 작업 등을 통하여 성소수자 운동과 협력하며 인권 증진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또한 유엔개발기구(UNDP)와 미국 국제개발청(UNAID)이 공동주관하는 “아시아에서 성소수자로 살기 Being LGBT in Asia”라는 사업이 있다. 주로 각 국가 풀뿌리 성소수자 단체들을 지원하고 국가보고서 작성, 활동가들의 역량 강화, 지역 간 대화 등의 연속행사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되는 사업이다. 최근 2015년 2월 25일부터 27일까지 방콕에서 열린 세션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성소수자 인권과 각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이었다. 활동가, 국회의원,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성소수자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을지 논의한 자리였다.
이 중요한 지역 미팅에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홍보협력팀의 담당자가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관 담당은 바로 홍보협력팀이다. 불과 몇 주 전에 국제인권의 장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증진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역량 강화를 하고 돌아온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도대체 교육의 효과도 없는 것인가?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가 ‘ex-gay’ 단체에 대관을 해줬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유엔개발기구(UNDP) 담당자들은 너무나도 놀라워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외에서 천명한 약속을 국내에서 시행하지 않는 위선이 언제까지나 용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국제단체 담당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이러한 소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들에게 들어간다. 이러한 대관을 허용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과연 한국 내 성소수자 인권에 기여하였다고 말할 수 있나.
이미 피해는 번지고 있다. 위 행사 대관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규탄성명에 대해 ‘전환치료’ 단체들은 인권단체들이 ‘탈동성애 인권’을 짓밟는다고 피해자를 자처한다. 앞으로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행사를 했다는 사실을 훈장처럼 자랑할 것이다. ‘탈동성애 인권’이라는 형용모순이 마치 인권법에서 존재하는 개념인양 으쓱댈 것이다.
다시는 이들을 국가인권위원회와 관련된 시설·건물·행사에서 보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이 레토릭의 위험함을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제라도’ 인지하였다면 즉각 적극적 시정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상황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각하는 것처럼 ‘논란’의 수준이 아니다. 많은 곳에서 불법이며 국제인권법에서 해악을 경고하는 행위다.
성적지향 차별사건? 피해자가 피해를 잘 정리해서 까다로운 적법성 요건도 무사히 통과한 사건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국가인권위원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러한 사이비의료 실태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조사를 할 수도 있다.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 학회에 이러한 관행을 감시하고 경고하는 입장 공표를 권고하는 정책 권고를 할 수도 있다.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실제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것이 전업적 차별단체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상징성’을 이용하여 벌인 해악을 조금이라도 시정하는 길이다.
덧붙임
류민희 님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