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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임금에 대한 질문

[임금에 대한 질문] 웅성거릴 말들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임금에 대한 권리가 있다①

[편집인 주]

직장인들은 다들 못 그만둬서 회사 다닌다고 합니다. 일이 힘들고 즐겁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대가라고 주어지는 임금조차 생계를 꾸리기에 벅차지만 별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남의 돈 받는 게 원래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직장인, 아니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기 위해 권리와 존엄을 거래하거나 포기하면서 일하는 현실, 임금은 원래 사장이 주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임금관계에 물음을 던져보았습니다. 임금에 대한 우리의 권리, 임금을 인권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합니다. 4회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노동자들이 움직이고 싸울 수 있는 ‘임금담론’이 필요하다

한국의 실질임금상승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0%대에 그쳐있고, 노동소득분배율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며, 중위임금의 2/3 미만인 저임금 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25%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고용형태, 기업규모, 성별에 따른 노동자의 임금 격차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수년 전부터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한 가계소득 증대방안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급기야 작년과 올해에는 정부여당이 먼저 최저임금 대폭 인상, 가계소득 중심 내수부양을 이야기하고, 야당은 ‘소득주도 성장’을 주요정책으로 발표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 역시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임금인상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소득주도 성장론을 인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년과 다를 바 없는 과정을 거치며 2016년 최저임금이 8% 오른 6,030원으로 결정되자 소득주도 성장론은 백일몽처럼 사라졌다. 정부가 생각하는 소득은 임금소득이 아니라 부동산-자산-자본 소득이었고, 이는 주주배당 확대와 부동산규제 완화정책 그리고 노동시장 개악을 통한 임금노동자 쥐어짜기로 귀결됐다. 시장에 돈이 풀리게 하기 위해 금리를 최대한 낮추고, 개인이나 기업이 쥐고 있는 돈은 부동산 투자나 주주배당의 형태로 시장에 풀려 결국 부자들의 돈 잔치가 된 것이다. 설령 정부여당이 임금인상을 통한 경제성장을 의도했다 한들, 그들이 임금인상을 어떻게 관철시킬 수 있을까? 일본 총리처럼 재벌들과 골프를 치면서 읍소하는 방식? 재벌총수 사면카드? 최저임금이라는 정책수단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턱없이 낮은 현재의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1%(2013년 기준)에 달한다. 사장의 왕국인 일터에는 최저임금을 위반할 수 있는 수많은 기술이 넘쳐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가두시위에 나선 대우 거제조선소 노동자들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br />

▲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가두시위에 나선 대우 거제조선소 노동자들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심각한 저임금 현실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착한 정부도, 촘촘한 정책도 아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기록적인 임금인상률을 쟁취했던 때는 87년 이후, 군사독재정부를 계승한 정부의 온갖 반노동 악법이 횡행할 때였다. 기업규모, 지역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요구를 집단적으로 제기하고 걷잡을 수 없이 관철시켜나가자, 정부와 자본은 이러한 움직임에 개입하고 관리하기 위한 일련의 제도화 과정에 착수했다. 정부는 매년 임금인상률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임금협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기업별로 임금단체협상이 정례화되어갔고, 변변한 임금체계조차 없던 기업들은 호봉-연공제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회 전체적으로 임단협을 경험하게 되면서 ‘적정 수준의 임금’이라는 문제가 사회적 초점이 되기 시작했다.

2015년, 임금단체협상은 민주노총 소속 대기업 노조들의 집단이기주의라고 공격받을 정도로 소수의 노동자들만 누리는 제도가 되었다.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임금협상이라기보다는 그 취지에 걸맞게 사회복지제도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임금을 둘러싸고 자본의 권력에 맞서 싸울 세력의 존재 여부다. 임금주도성장, 연대임금정책, 노사정 대타협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노동개혁 정책이 정책의 의도와 성격을 떠나 한국에서 별다른 흐름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서구에서 이를 가능케 했던 노-자간 투쟁과 타협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만들어낸 임금 투쟁의 담론과 제도는 심각한 저임금의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다.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할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임단협은 남의 나라 이야기이고,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싸울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아니, 섣부르게 투쟁의 주체를 상정하지 말자. 마치 적절한 임금 정책, 제도만 주어지면 투쟁에 나설 준비가 된 노동자들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말자. 87년 노동자들도 그들이 처한 자본-노동 관계 속에서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의 현실을 재해석하고 이를 권리의 훼손으로 자각하는 집단적 경험을 통해서 투쟁에 나서게 된다. 과거 노동자 투쟁의 역사는 이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임금은 사장이 알아서 주는 것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실, 고용형태-기업규모-학력-성별-직무에 따른 임금 차별과 저임금이 정당하게 생각되는 상황에 물음표를 붙이고 동료와 함께 이야기하고 곳곳에서 웅성거림을 만들어낼 임금담론, 임금정책이 아닌 임금담론이다.

(*) 2014년 3월 기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중위임금은 190만 원으로 나타나 저임금은 127만 원 미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