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과 인권의 족쇄, 고용허가제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를 규율하는 제도는 고용허가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으로 이입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는 1993년 11월 외국인산업연수제도를 통해 제도로 편입되었다. ‘연수생’ 혹은 미등록 상태로 주변부 3D 업종의 인력난 해소에 기여하면서도 노동권과 인권 유린이 일상적이었고, 이러한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이슈가 되면서 1995년 이후 고용허가제 도입 논의가 시작되었다.
고용허가제는 소위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던 산업연수생제도가 야기하는 각종 송출비리와 인권 침해 및 미등록 체류의 구조적 양산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03년 8월 16일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정과 함께 도입되었다. 부분적이나마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국가 간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송출과정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제고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시행을 위해 한시적 합법화 이후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집중단속과 강제추방 등 폭력적 행정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극심했다.
2004년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없다는 점이다. 고용주의 일방적인 계약 종료 등을 인정하면서도 사업장 변경의 사유와 횟수를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에 노동권의 침해가 심각하다.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적용은 받지만 실질적인 노동3권의 행사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집단적인 권리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정주화 방지를 목적으로 단기순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밑바닥의 현장을 떠받쳐줄 노동력은 필요했던 정부는, 재고용 및 출국 후 재입국 지침, 성실외국인근로자 재입국 취업 특례 등을 시행하면서 제도 자체의 모순을 봉합해왔다.
최저에서 최악으로, 거듭되는 개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산업현장과 일을 필요로 하는 이주노동자의 요구는 변함이 없다. 덕분에 고용허가제는 독소조항을 품은 채 안착되고 점차 개악되어 왔으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관행을 그대로 내면화한 행정과 법해석이 강화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등이 꾸준히 개선을 촉구하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에 대해서 2011년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4년에는 ‘불법체류’를 우려해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인 출국만기보험을 출국 후에 지급하도록 법률이 개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지난 4월 12일 헌법재판소는 “출국만기보험금의 지급시기를 출국 후 14일 이내로 정한 것은 고용허가를 받아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근로자의 특수한 지위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출국만기보험금을 내국인근로자와 동일한 기준으로 지급하게 되면 사업장을 변경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의 출국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최근 몇 년 간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예노동 사례가 꾸준히 폭로되고 있다. 착취의 근거가 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63조 농업노동 예외조항에 대한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 움직임은 없다. 오히려 지난해 법무부는 농번기의 극심한 구인난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1~3개월 단위로 짧게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입국을 허가하는 ‘외국인 계절노동자’ 제도 도입을 발표했고, 충청북도 괴산과 보은 및 강원도 양구 등에서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법치와 주권의 이름으로 반복되는 단속과 추방
그리고 한편에서는 정부가 정한 ‘노동력의 자격’을 상실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이 계속된다. 지난 3월 28일 법무부는 ‘자진출국 불법체류외국인 입국금지 면제’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보도자료를 통해 법무부는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6개월간 자진 출국하는 미등록 체류자에게는 ‘불법체류에 따른 입국금지’를 한시적으로 전면 면제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5년간 입국금지 및 고용주에 대해서도 형사입건 등 처벌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단속인력을 총 활용하여 ‘어느 해 보다 강력한 단속’을 실시할 계획이며, 수도권 및 영남권 광역 단속팀과 경찰청 등이 참여하는 ‘불법체류외국인 정부합동단속’을 연간 20주 실시하는 한편, 불법입국‧취업 알선 브로커에 대한 기획 조사도 강화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 정책의 잘못으로 미등록 체류자가 증가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선도 없으면서 오로지 당근과 채찍을 통해 미등록체류 숫자만 줄이고 보자는 이러한 방침을 우리는 강력히 규탄한다. 정부는 반인권적 단속방침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0년 이후 무리하고 반인권적인 단속으로 수십 명의 미등록 체류자가 사망한 사례들을 적시하며 법무부가 스스로 만든 ‘단속 지침’을 어기면서 공장과 주거시설 급습, 심야단속, 미란다원칙 미고지, 무분별한 계구사용, 안전대책 부실, 단속차량 내 장시간 감금 등 단속을 빌미로 저질러 온 수많은 인권침해를 규탄했다.
정부가 이토록 당당하게 강행하는 단속‧추방의 근본적인 원인은 누가 뭐래도 고용허가제 자체에 있다. 단기체류와 사업장 변경 제한을 원칙으로 하는 고용허가제는 이미 미등록 체류를 유발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3년간 최대 3회로 제한된 사업장 변경 횟수는 이주노동자를 위축시키고 열악한 근로조건과 인권침해를 용인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한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단속‧추방 정책은 공포와 억압으로 이주노동자를 길들이는 인종주의적 폭력을 정당한 통치행위로 둔갑시키고 있다.
5월 1일, ‘이주노동자메이데이’를 마친 참가자들의 행진 대열은 소소했다. 보신각에서 대학로까지 인도를 따라 걷는 동안, 방송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스탑크랙다운!(Stop Crackdown!)’은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왔다. “강제추방 반대한다!”는 뜻을 담은 ‘스탑크랙다운!’은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대대적인 강제단속이 진행되던 십여 년 전, 명동성당과 성공회성당에서 농성하던 이주노동자들의 외침이 그대로 밴드의 이름이 되고 노래의 제목이 된 구호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불렀던 네팔 출신의 이주노동자 역시 2009년 표적단속으로 강제추방 당했다.
국경은 상품에게도 자본에게도 활짝 열려 있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만은 함부로 넘을 수 없는 공고한 벽이 되었다. ‘주권과 법치’라는 준엄한 권위와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다. 그러나 일상이 되어버린 단속‧추방의 반복이, 사람과 삶을 향한 질문마저 잡아먹도록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두터운 무기력을 떨쳐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나어릴때 님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