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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의 인권이야기] 인권을 지킬 권리, 인권을 잊힐 권리

몇 년 전 병원에서 간호사 갱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뒤 간호사 탈의장면을 촬영하여 인터넷에 유포시킨 사건이 있었다. 해당 병원은 발칵 뒤집혔고, 노동조합에서는 병원에 피해자들에게 치료와 휴식을 마련하고, 범인을 찾아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노동조합은 더 이상 사건을 진행하지 못했다. 해당 간호사가 전화를 걸어 ‘이 사건이 언급될수록 사람들이 그 영상을 더 찾아볼 것 같다. 출근하면서 마주치는 직원들이 무섭다. 이 일을 언급조차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한 것이다. 피해자의 의사가 그러했기에 노동조합에서도 더는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밝혀진 것은 해당 병동 수간호사가 직접 노동조합으로 전화를 건 핸드폰을 간호사에게 전해주며 ‘노동조합에 문제 삼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도록 지시했고, 이후 병원에서 알아서 하겠다며 위임장을 받아갔다. 병원은 관할 경찰서에 이 사건을 신고했지만 끝내 범인을 찾지 못했고 그 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된 ‘몰카 경력이 있는 의사’는 다른 몰카로 인해 처벌을 받았다는 기사로 만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가 정작 자신들의 가해자로서 어떤 조사도,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것에 분통터져 했지만 여전히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2016년 38 여성의 날 한국여성대회 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몰카와 도촬을 이용한 성폭력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피켓과 플랑, 미니깃발 들고 행진했다. (출처-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

▲ 2016년 38 여성의 날 한국여성대회 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몰카와 도촬을 이용한 성폭력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피켓과 플랑, 미니깃발 들고 행진했다. (출처-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


폭언, 폭행은 아주 가시적이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가 쉽다. 하지만 성희롱, 성폭행. ‘성’이라는 글자가 앞에 붙으면 사람들은 다른 생각들을 갖게 된다. 폭행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얼굴이 맞을만하게 생겼는지, 또는 몸매가 맞을 몸매인지 관심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때렸는지, 가해자 신상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성폭행 피해자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들이 존재한다. 그럴 만 한 복장, 화장, 등등. 그리고 성폭행 사건의 이름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신상으로 붙여진다.

우리 사회가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본인들이 노출되는 것을 먼저 걱정하고, 잊히기를 더욱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발의 위험, 피해자들의 상처 등의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잊혀서 해결된 것이 없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을 접했을 땐 참으로 여러 가지 고민들이 맴돌았다.

노동조합은 당사자의 요구를 무시한 채, 병원에 범인으로 추정되는 의사의 처벌을 요구해야 했을까. 몰카 피해자들의 심적 안정을 위한 치료와 휴가를 끝까지 요구해야 했을까. 피해자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또한 사람들에게 잊힌 것이 만족스러울까. 노동조합의 어떠한 행동이 인권을 지키는 행동이었을까.

따지고 보면, 이렇게 모두를 고민에 빠트린 몰카 범인이 제일 문제다. 만약 그 ‘몰카 의사’가 이 사건의 범인이었다면, 법과 병원의 규정이라는 제도권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타당한 처벌을 해야 할 것이며,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몰카 의사’는 아직까지 범인으로 ‘추정’ 될 뿐인 상태이며, 심지어 수백 건의 몰카로 인한 처벌에서도 약혼자가 선처를 호소하여 감형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한 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피의자의 인권은 어디까지 인걸까, ‘젠더 문제의 처벌’은 일반적인 폭언과 폭력에 비해 더 중한 잣대로 해야 하는 걸까.
덧붙임

영구 님은 대학병원 하루살이 간호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