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이야기]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하며 주변을 돌아보다
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안식년이던 5월부터 시작한 조사연구가 <직장 내 괴롭힘>이다. KT가 올해 8300명을 명예퇴직시키고 퇴직에 거부한 사람들을 CFT(Cross Function Team)라는 곳으로 모아둬서 그 사람들에게 일을 안주거나 불필요한 업무를 보게 했다. 거기에 속한 노동자들은 그곳을 다양한 기능을 하는 팀이 아니라 ‘KT 아우슈비츠 내지 잡부모임’이라고 자조할 정도다. 그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명예퇴직을 시키기 위해 한 사람을 돌아가면서 하루 종일 면담을 하기도 했다. 괴롭혀서 나가라는 것이다. 모욕을 줘서 나가게 만들려는 것이다. 이런 일을 기업이 버젓이 하고 있다는 것, 하나의 경영전략으로서 하고 있다는 점이 KT에서는 심각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돌연사나 자살자들이 많고 죽음의 기업이라고 불리는 거다.
올해 만든 CFT에는 20년, 30년을 근무한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전봇대가 기울었는지 보는 일을, 그것도 몇 시간이면 끝날 일을 주거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교육이라고 한다. 실제 설문조사결과 대부분 하루 4시간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얼핏 생각하면 일을 주지 않는 게 왜 괴롭힘이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일을 주지 않음으로써 회사에서 필요없는 사람이라는 모욕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런 정도의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니까.
실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적 관행적 장치가 있는 나라에서도 일을 주지 않는 것을 괴롭힘으로 보고 있다. 우리와 비슷하게 아직 법이 마련되지 않은 일본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자들이 생기자 2011년에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 ‘직장 내 따돌림 괴롭힘 문제에 관한 원탁회의’에서 정의한 직장 내 괴롭힘(파워해러스먼트)이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직무상의 지위나 인간관계 등의 ‘직장 내 우위’를 배경으로 ‘업무의 적정한 범위를 넘어’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혹은 직장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괴롭힘 유형 분류는 ① 신체적 공격(폭행, 상해), ② 정신적 공격(협박, 명예훼손, 모욕 심한 폭언이나 성희롱), ③ 인간관계의 분리(격리, 동료와의 분리, 무시), ④ 과도한 요구 (업무 상 명백히 불필요하거나 수행 불가능한 업무의 지시), ⑤ 과소 요구 (업무 상 합리성 없이 능력과 경험과 동떨어진 낮은 업무를 명하거나 일을 주지 않는 것), ⑥ 개인에 대한 침해(사적인 일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로 나누었다. 이렇듯 실행불가능하게 업무를 과도하게 많이 주는 것도 괴롭힘이지만 일을 주지 않거나 평소 하던 일과 동떨어진 일을 주는 것도 괴롭힘이다. 실제 KT에서 교환일을 하던 50대 여성에게 전신주를 타는 일을 시키기도 했고 직원들에게 대상자들과 얘기를 나누지 못하도록 해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괴롭힘이 이번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03년에는 상품전담판매팀이라는 것으로, 2005년에는 CP라는 퇴출프로그램으로 괴롭혔다. CP는 경영학 용어로 ‘C-Player’의 약자라고 한다. 회사에 기여하는 가치가 노동자에 지급되는 비용보다 많은 노동자를 A-Player, 같으면 B-Player 이며, 비용보다 창출하는 가치가 적은 노동자들은 C-Player라고 한다. KT는 CP들을 퇴출 대상으로 규정고 퇴출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행했다. 본사에서 이를 기획했다는 사람의 양심선언으로 본사가 작성한 기획임이 밝혀졌고, 본사가 작성한 CP 명단도 폭로되기도 했다. 이렇게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경영전략으로서 의도적으로 사람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실제 내가 만난 조사한 노동자들은 괴롭혔던 사실이 한참 지났지만 그 당시의 모욕감에 아직도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도 있다.
이런 괴롭힘이 더 문제적인 것은 회사가 의도적으로 했기에 회사 내에서 괴롭힘에 대해 구제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규율하는 나라에서는 괴롭힘을 한 가해자들을 징계나 피해자로부터 격리를 기업에서 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불가능한 것이다. 일부러 상급자를 시켜서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건데 가해자를 징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런 괴롭힘이 금융권으로도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조파괴로 많이 악명을 날린 창조컨설팅에서 자문을 받은 대신증권에서 노동자퇴출을 위한 괴롭힘을 벌이고 있다. 대신증권은 성과가 낮은 노동자에게 산에 올라가서 인증샷을 찍어오라는 업무와 상관없는 지시로 노동자를 괴롭혔다.
이번에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연구하며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꼭 퇴출-구조조정이 아니라도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라는 생각을 했다. 직장처럼 위계관계가 분명한 곳에서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특정 노동자에게 업무관련 정보를 주거나 업무에서 배제시키거나 험담을 하거나 항상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낮게 평가하는 식으로 괴롭힌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이거나 과정으로 해당 노동자를 따돌리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특히 서비스직에서는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이 많으나 알려지지 않았고,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있는 한국의 노동현실에서 고용형태의 차이에 의한 괴롭힘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나아가 이번 KT 실태조사결과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