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팀 활동이야기를 하나의 글로 완성하는 것이 어려워서 문답식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후원인들께서 쉽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 어떻게 시작했나요?
작년, 재작년쯤 한창 반공주의-종북몰이가 기승을 부릴 때, 인권운동으로서는 할 수 있는 만큼(?) 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권운동의 목소리는 참 왜소했고 주류 사회로부터 계속 튕겨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법게시물 삭제명령이 부당하니 검토해 달라는 요청도 법원에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국가권력에게 게시물을 왜 삭제해야 하느냐고 질문했지만, 법원은 성의 없이 ‘국가보안법 7조에 따른 불법게시물이니 삭제하라’고만 합니다. 뭔가 견고한 벽 앞에 딱 멈춰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명백하고 현저한 위험이 없는 표현물들이 그저 북의 주의, 주장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사라져야 할 운명이 서글펐습니다. 서글픈 운명은 불법게시물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원내 정당인 통합진보당 해산 사례도 거칠게 이야기하면 이들의 주의 주장이 북의 주의, 주장과 동일하니 해산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있었습니다. 멀쩡한 정당을 해산시킬 수 있는 이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 사회의 물적 조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균열을 내야 할까요? 그래서 이들의 힘의 원천으로 작동하고 있는 ‘분단’의 문제를 주목하며 파헤쳐 보려고 했습니다.
◇ 그동안 무엇을 했나요?
분단팀을 시작하기 전에, 분단에 관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듯 뭔가를 알고 있다는 전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차라리 분단에 관해서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다고 하는 것이 때로는 어떤 입장을 전제하고 있기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요.
우리가 얼마쯤은 알고 있다는 ‘분단의 역사적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어떤 시선 속에서 혹은 물리적인 국제/국내 관계의 힘 속에서 분단체제가 만들어졌는지?’를 질문하면서 학습과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분단문제가 한국사회, 동아시아 많은 곳에 영향을 미치고는 있지만, 매우 추상적인 인식 틀에 머물렀기에 사실상 ‘분단체제’에 관해서는 실체적 인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분단팀은 ‘분단체제에 관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자료와 책을 학습했습니다.
처음에는 백낙청 교수의 「흔들리는 분단체제」,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을 세미나 하였습니다. 백낙청 교수는 ‘분단체제론’을 통해 분단 문제를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로 볼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즉 사회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전제로서의 체제로 인식해보자는 것이지요. 그의 이러한 접근은 기존에 한국사회를 설명해왔던 민족, 계급모순에 갇히지 않으면서 한반도(인식의 확장까지)가 처한 현실을 일상과 체제의 언어로 해석하고자 한 시도하였습니다.
그다음에 본 책은 『북한의 이해 1, 2』(이종성, 역사비평사),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1』(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휴머니스트)입니다. 『북한의 이해 1, 2』를 선택한 이유는 해방과 분단 이후 북의 국가 형성 과정을 역사적으로 볼 필요가 있고, 이후 국제관계나 남북관계에서 북이 처하게 되는 상황이 내외적인 조건을 긴밀하게 형성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이어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1』을 보았는데 일국 역사를 넘어 한·중·일 3국 근현대사의 구조적 변동과 영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3국 학자들 간의 토론과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만큼 각 장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지 않고, 삼국의 유기적 관계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세미나를 하면서 국가폭력, 반공주의, 공안기구, 종북, 북, 북인권,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관해 계속 더듬이를 움직이려고 노력했습니다.
◇ 세미나를 하면서 분단체제에 관한 인식틀은 생겼나요?
무슨 일이든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면 심심하잖아요. 세미나를 하면서, 한반도 근현대사 공부를 새롭게 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분단문제에 관해 예전에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의 일이구나’ 라고 여기는 것이 중요한 성과이지요.^**^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또 다른 감각’이 생겨났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매주 <인권으로 읽는 세상>을 쓰잖아요. 이를 위해 뉴스들을 모니터 하는데, 북, 동아시아, 평화, 안보, 군사, 외교 등등 이런 분야까지 더듬이가 막 움직이네요. 예전에는 관심 없던 분야였거든요. 분단체제에 관한 인식 틀은 서서히, 조금씩 만들어질 거예요. ㅎㅎ
◇ 지금은 무엇을 하나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분단체제’를 가까이 그러면서도 멀리 볼 수 있는 인식의 틀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이 텍스트가 되어, 지난 20년 동안 인권운동사랑방이 해왔던 활동 중 분단과 연결되어 왔던 투쟁을 재검토하며 한계점은 무엇이었고 어떤 아쉬움이 남았는가를 살피고 있습니다. 현재 검토하고 있는 주제는 ☆장기수 석방, 송환운동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군사기지 확장 반대운동 평택투쟁 ☆북인권·핵실험에 관한 입장 등입니다. 어떤 내용을 검토하였는지 궁금하시죠? 이 과정을 거치면 분단체제에 도전하는 운동을 사랑방의 운동 전략으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분단은 역사적인 경험이고, 현재를 규정짓는 물리적인 토대/뿌리이며, 미래를 결정하는 조건입니다. 분단이 현재의 우리를 ‘결정짓는’ 그 무엇인가를 찾는 과정 속에서 ‘분단체제’ 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생산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욕심을 버리고, 아주 조금씩, 말할 수 있는 쓸 수 있는 것들을 모아 보고 싶네요. 보이지 않던 점들이 연결되는 순간이 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어서 스트레스 없이 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