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겨울 용문행 중앙선을 타고 있었습니다. 중앙선이 한강 상류를 지나고 있을 무렵,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당시 나는 『또 하나의 냉전』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단지 책을 읽고 있었을 뿐 울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손으로 눈물을 훔쳐도 흐르는 눈물 때문에 당혹스러웠습니다. 도대체 내 가슴이 기억하는 슬픔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하나의 냉전』의 저자 권헌익 씨는 냉전이라는 세계 체제가 유럽에서 미소간 군사적인 긴장을 통해 ‘평화’를 만들어낸 반면,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잔인한 내전과 정치폭력’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인도차이나 반도와 한반도는 전쟁으로 인한 상흔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눈물을 흘린 대목은 이렇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 집안의 형은 군인으로 사망하여 북베트남 정부의 사망증서를 받았고 동생은 학생신분으로 역시 전쟁터에서 사망하여 남베트남 정부의 사망증서를 받았습니다.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되어(북 베트남의 승리) 형은 국가에 의해 공식적인 추모와 애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반면, 동생은 비공식적인 죽음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여년이 흐른 1996년 집안의 최고령 어르신은 이 두 전사자를 함께 제단에 모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형제의 어머니는 침실 깊숙이 숨겨두었던 둘째 아들의 사진을 제단으로 옮기면서 친지들과 살아남은 자식들, 그들의 자녀들을 잔치에 초대하였습니다. 이젠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간단한 의례를 마치고 손자녀들에게 두 형제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이야기해 줍니다. 그 장면에서 그만 눈물이 흘렀습니다. 국가라는 제도 속에서는 정치와 이념이 양극화되었지만 가족 안에서는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차별 없이 함께 추모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족들이 당당하게 슬퍼할 수 있기까지 무려 20년이 흘렀습니다.
냉전이라는 강력한 군사적 긴장이 한반도 이남에서는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는 구조로 작동해오고 있습니다.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문으로 죽었고 최루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의문의 사고로 죽기도 했고, 대낮에 거리에서 경찰에게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공식적인 내전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사회적 긴장과 대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사건도, 이름도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이름도 없이, 기억됨 없이 죽어갔습니다. 어떤 사건의 경우 유족들은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습니다. 부검은 진실규명이 아닌 국가폭력을 보이지 않도록 집행되었습니다. 진실을 밝힐 수조차 없는 시절에 애도는 사치였습니다. 애도조차 죄가 되는 시절을 숨죽이며 울지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 시절을 넘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후퇴하기도 하고 변주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9월 25일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였습니다. 이후 벌어진 검경의 부검영장 신청과 법원의 조건영장발부 상황에서 9월 25일부터 많은 사람들은 서울대 병원 장례식을 지키며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경찰, 검찰, 법원, 주치의, 여당 모두 공모라도 한 것처럼 가족으로 하여금 진실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경찰은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고, 법원은 조건부 영장을 발부함으로써 또다시 경찰에게 백남기 농민을 넘기려 합니다. 심지어 주치의는 병사로 사인을 작성함으로써 물대포로 인한 사망을 희석시키려 합니다. 주치의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아서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였다는 궤변을 늘어놓는가하면, 이를 빌미로 우익단체들은 백남기 농민 가족을 고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슬퍼할 시간도 빼앗긴 채 힘겨운 시간들을 견디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명명백백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장면을 목격하였음에도 국가는 온갖 권력을 동원하여 철저히 은폐와 조작, 부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처음 했던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거짓을 감추기 위해 다른 거짓말이 필요하고 또 다른 거짓말을 계속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살수차운용지침에 따라 물대포를 사용하였다는 거짓말.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것을 몰랐다는 거짓말. 거짓을 감추기 위해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그 시간을 전후하여 경찰이 작성한 집회상황 보고(경찰이 시간대별로 집회 상황을 기록하여 남기는 문서)를 폐기하고, 부검영장이 나올 상황을 염두하고 서울대병원에 경찰력을 투입하며, 백남기 농민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병원으로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검찰은 범죄혐의와 피의자를 특정하지 않은 압수수색영장을 서울대병원에 가 집행하면서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내려는 조작을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근 한달 동안 벌어진 상황을 견디면서 진실을 드러내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음을 느낍니다.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단순한 사실의 규명이 아닌 이를 둘러싼 국가폭력의 구조를 밝혀내는 일입니다. 결국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원인을 우리가 우리 힘을 갖고 국가폭력의 실체를 사회적으로 밝혀내야 하겠지요. 이재승 선생님(건국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총체적인 진실은 무수한 증거들의 정밀한 조합과 배후에 작동하는 정치적 동기에 대한 통찰과 반성적인 인권감각으로 구성된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의 의미가 요즘 깊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