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새로운 봄을 기대하며

벌써 입춘이 지났네요. 그래서일까요? 방송에서 날씨가 추워진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햇살에서도 봄 냄새를 맡고 합니다. 그러다가도 박근혜게이트 소식이나 특검 소식을 들으면 제 마음이 다시 햇빛 없는 어둠으로 쓰윽 밀려납니다. 그러면서 광장에 모인 우리는 지금 어디에 와있을까 가늠해봅니다.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쳤는데 그 힘은 지금 어디까지 갔나? 탄핵을 되겠지, 탄핵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 말입니다. 더구나 태극기를 휘날리며 서울시청광장에서 집회하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친정부세력들의 집회가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는 거 같아 더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릅니다. 일단 ‘박근혜는 안 된다’, 공식적인 국가집행구조를 무시하며 비선에 의해 움직인 박근혜-최순실 세력이 민주주의를 훼손한 그들에 대한 분노에 머물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누적된 고통이 원인이라는 걸 어렴풋이 시민들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여전히 박근혜는 최순실에게 놀아난 것일 뿐이라는 박사모 등의 논리가 일부 사람들에게 먹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박근혜- 최순실로만 한정해서 탄핵 이후에도 우리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좀 허망할 것 같은 생각이 더 듭니다.

그래서 문득 우리에게 봄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봄은 겨울에 움츠러든 생명의 씨앗들이 활짝 피는 계절입니다. 우리에게 움츠러든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움츠러들지 않고 기지개를 켜는 일은 어떻게 시작되면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가장 큰 것은 삶의 팍팍해진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던 화살이라고 봅니다. 내가 못나서, 내가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서, 내 가족들이 가난해서, 내 능력이 모자라서 등등의 것으로 자신을 탓하며 구조보다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던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봄을 맞이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두 번째는 움츠러든 마음에 찾아든 패배감에서 벗어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박근혜게이트 소식을 듣고 탄핵감이 될 것이라 엄두도 못 냈던 제도정치권과 달리 우리 시민들을 줄곧 광장에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쳤고 그 결과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과 특검의 구성까지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힘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까지 참 오랜 시간을 우리는 싸워왔던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시민이 노동자들인데도 우리는 시민과 노동자를 구분하는 말에 익숙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투쟁하는 노동자’로 한정하거나 시민들의 노동자성을 망각하는 것으로 이어지곤 하지요. 그럼에도 익숙한 용법으로 시민과 노동자들이라고 씁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과 그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줄곧 외쳐왔기에 여기에 이른 게 아닐까요?노동자들이 친기업정책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피폐해져 거리로 나와 정부에 맞서 싸웠기에 여기에 이른 게 아닐까요? 재벌이 최순실에게 돈을 바치면서 얻었던 대가가 바로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 노동권 박탈, 노동조건 악화이니까요.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친기업정책, 친재벌정책은 안 된다고, 소수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은 국가가 취해야 할 입장이 아니라고 말해왔으니까요. 평등을 위해 싸웠던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봄을 기대하며 2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봄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고 있는 시간입니다. 안식주 기간 동안 운동도 하고 생각도 정리하는 차분한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운동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봄이라고 여기는 것과 내가 꺼려왔던 것, 다시 말해 겨울이라고 여기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뒤돌아보며 ‘나의 운동’을 되짚어보려고 합니다. 나를 아는 것이 ‘성찰과 변화’의 시작일 테니까요. 그게 내 속으로만 침적하는 움츠러듦에서 벗어나 밖의 햇살과 공기를 받아들이는 것, 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그건 겨울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봄은 겨울이 있기에 오는 것이니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운동을 하며 복닥거렸던 제 마음과 활동들을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걸음이 됐으면 싶네요. 그렇게 전 3월을 기다려봅니다. 그러면 작년보다는 좀 더 따스한 햇살의 봄을 맞이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들과 함께 따뜻한 봄을 맞이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