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2012년 사이 인권오름에서 매주 다양한 필자들이 들려준 <인권이야기>에 함께 들어갈 삽화를 그리며 사랑방과 인연을 맺고 이어오고 있는 윤성필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인권이야기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마땅히 찾지 못해 난감할 때가 많았는데, ‘심쿵’하게 하는 삽화로 필자들이 들려주는 인권이야기가 더 깊숙이 들어왔던 기억이 나네요. 이후 웹툰과 종이책으로 나온 <야옹이와 흰둥이>를 보면서 따뜻하고도 섬세한 이야기가 전해주는 울림이 있었는데, 인터뷰를 하며 부족한 것을 알고 채우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낯설었던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하는데 있어 자신의 만화도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는 윤성필 님, 그 바람을 응원하며 따뜻하고 섬세한 이야기로 곧 다시 만나길 기대합니다.
◇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윤필이라는 필명으로 만화 그리는 윤성필입니다. 예전에도 사랑방이란 단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사랑방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활동하는 은채님을 통해 인권이야기 삽화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네요. 작년 세월호 2주기를 앞두고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스토리펀딩 연재의 한 꼭지를 같이 작업하게 되면서 정기후원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전에도 간헐적으로 후원하기 했는데요, 단체들이 후원금을 제대로 잘 쓰는지 불신을 가질 수도 있는데 사랑방에는 그런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작년에 재정 문제를 알리는 메일을 받고 놀랐는데, 문제가 있어도 드러내는 건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사실 얘기를 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는 건데 진솔하게 드러내고,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에 계속 성찰하겠다는 다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더 믿음이 가더라고요.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나 오류는 언제나 생길 수 있는 건데 잘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범적이다 멋있다 생각했어요.
◇ 예전에 인권이야기 삽화 작업하면서 어떤 기대나 어려움이 있었을지 궁금해요.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난감하셨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인권에 대해 관심은 많았지만 정작 깊이 있게 많이 알지는 못해서 처음 삽화 작업 해보지 않겠냐는 이야기 들었을 땐 우선 공부가 되겠다 싶었어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했다는데,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내가 참 무식하구나, 무지하구나. 알아야 해.’ 새기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공부하는 기회로 생각하고 삽화를 그리게 된 건데 그리다보면 아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모르거나 알아도 자세하게는 몰랐던 것들이더라고요. 그래서 독자 입장에서 그렸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정리한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접할 독자들에게 도입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고나 할까요. 계속 그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내가 과연 이 내용을 다 알고 있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설프게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100% 소화해서 표현하지 못한 것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도 계속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싶어서 아쉬운 마음도 컸지만 정리하게 된 거였죠.
◇ 다양한 주제의 인권이야기뿐만 아니라 당시 사랑방 사회권팀에서 기획 연재했던 <청소노동과 청소노동자의 삶>의 삽화 작업도 해주셨는데,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초반 삽화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청소노동자 기사 삽화를 그리게 되었거든요. 기사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평소 제가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과 맞닿아있어 특히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비정규노동 중에서도 여성이냐 남성이냐 성별에 따라 나누어진다는 얘기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어요. 체험학습의 장으로 이야기되는 동물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인권이야기도 있었는데 낯설기도 하고 새롭기도 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소수의 이슈라고 해야 할까요 접하기 힘든 내용들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영화나 만화 같이 다양한 문화에서 다루기도 하고 보편적인 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예전에 그렸던 그림들이 생각이 나요. 그러고 보면 바로 확인하긴 어렵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보편적인 것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현상을 접하게 되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렇게 누구나 생각하게 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면 그런 게 인권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이 아닐까요.
◇ 삽화 그릴 때도 그렇고, 이곳 와우산 사무실로 이사 오고 집들이에도 놀러오셨는데, 사랑방 혹은 사랑방 활동가들을 떠올릴 때 드는 생각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해요.
유기체 같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집단이나 조직, 모임 이런 게 있으면 체계 같은 게 있어서 딱딱 움직이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사랑방은 각각의 활동은 각자가 움직여서 하고 있는 것일텐데, 하나의 생명체 같이 생각되네요. 자기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면서 이것이 동시에 전체를 움직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내부적으로 보면 각각 나누고 맡아서 하니 잘 돌아가지 않는 것도 물론 있겠죠. 누구는 공동비품을 지나치게 쓰는 것 같다 부터 해서. ㅎㅎ 그래도 운영이 잘 되는 곳들은 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요. 따로 또 함께. 20주년 이후 방향을 잡고 활동하고 있다 들었는데, 각자 분산되어 할 것들이 있지만, 또 함께 힘을 모으는 게 필요하잖아요. 그렇게 꾸준히 묵묵히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 <흰둥이>부터 윤필 님 만화를 몇 가지 봤는데, 섬세한 시선, 따뜻한 마음과 함께 냉혹한 세상이 보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작업할 때 주로 갖는 고민이나 바람이 있다면?
작업을 통해 수익이나 부가적으로 얻는 게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선순위를 둔다면 제 만화를 접하는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단 하나라도 생각할 꺼리를 얻어갈 수 있다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며 합니다. 만화다 보니 메시지에만 치중할 수 없고 재미를 같이 고려할 수밖에 없거든요. 메시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메시지와 재미를 균형 있게 가져갈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합니다. 메시지가 좋은 영화나 어떤 문화를 접해도 그 감동이 오래 가지는 않더라고요. 몇 분 지나지 않아 사그라지니까요. 그래도 단 몇 분이라도 그런 마음이 유지가 된다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그런 역할을 저도 작은 밀알처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바라죠.
◇ 작업할 때 이야기를 어떻게 풀지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은데, 그러면서도 드는 생각이 내가 뭘 아나, 난 이렇게 살아본 적도 없는데 그래서 부끄럽기도 하고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작업할 때는 제가 하고 싶은 것, 재밌을 것 같은 것, 고민하고 알고 싶은 것도 고려하지만,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같이 생각하게 돼요. 잘할 수 있는 건 대체로 경험에서 비롯되는 거 같고요. 살아가면서 얻는 경험들이 모두 똑같이 남지 않잖아요. 누군가에겐 스쳐가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내재하기도 하고. 같이 일을 하고 같은 경험을 해도 바라보는 시선은 다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시선을 생각해보면서 표현하는 게 작업할 때 도움이 되더라고요. 연재를 시작하면 마감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작업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틈틈이 계속 생각하려고 해요. 놀다가, 멍 때리며 게임하다가, 책 보다가, 운전하다가 이렇게 상황 가리지 않고 계속 생각하려고 하죠. 막힐 때는 도서관에 자주 놀러가요. 몰랐던 분야도 많고, 제목만 봐도 재밌는 게 많거든요. 어떤 내용을 접할 때 영상을 통해서는 주로 감정만 남고, 내용의 구조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더라고요. 텍스트로 된 것들을 보는 게 저는 좋더라고요. 그래서 주간지나 잡지 같은 것도 자주 보고요.
◇ 언제나 많은 이슈들이 있었지만 퇴진촛불로 뜨거웠던 겨울을 보냈고, 3주기를 앞두고 세월호도 인양되었는데, 많은 문제들, 마음이 툭 내려앉는 소식들을 접하는 요즘 좀 더 관심을 갖거나 고민하는 게 있으신가요?
촛불과 탄핵 정국, 세월호는 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두 계속 안고 가야 하는 일인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여성인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분화된 성별 역할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아요. 이것만 해결이 되어도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사라질 것 같거든요. 어릴 때 위인전을 재밌게 봤었는데, 보면서 왜 위인 중에 여자는 없나 궁금했어요. 난 남자니까 남자위인 좋아한다 치면 여자친구들은 누굴 좋아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 하고. 여자들은 크면 결혼하고 애 낳고 이런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얘기들 들으면서 문제가 있다 싶었는데, 이걸 표현할 언어가 제게 없었던 것 같아요. 생각을 깊게 하지도 못했고, 그럼 머리 아프니까 신경을 쓰지 말아야지 그랬는데, 작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발화되면서 다시 고민을 하게 되고 궁금해졌어요. 남성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데서 다루는 사건 에피소드 중 하나로 치부될 수도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어요. 결혼해서 같이 사는 친구가 이런 문제에 관심도 많고 잘 알아서 책들을 권해줬는데, 본다본다 하고 보지 않았던 것을 열심히 봤던 것 같아요. 정희진 씨 책도 많이 봤고요. 알게 되면 몰랐을 때와는 작더라도 분명 달라지는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조금씩 알게 되면서 이전에 제가 참 뭣도 모르고 살았구나 부끄러웠어요. 평소에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시선만 조금 돌렸어도 알 수 있었던 건데 관심이 없었던 거구나 반성했어요. 같이 사는 친구의 말도 예전엔 잘 이해를 못했던 것 같아요. 말이 통해야지 대화가 되는 건데 말이에요. 요즘은 대화가 좀 더 수월해진 것 같고요.
◇ 끝으로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한마디 해주세요.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꾸준하게 언제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리를 지켜주면서 계속 나아가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이야기 쑥스러워 잘 못하는데, 언제나 들러도 스스럼없는, 이름 그대로 ‘사랑방’이 되어주면 좋겠어요. 작년에 함께 했던 세월호 작업이 제가 이제껏 했던 것 중 가장 어렵긴 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길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