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에 대한 구속 영장이 두 번이나 기각되었다.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전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까지 구속시킨 검찰의 칼이 우병우 앞에서 멈췄다. 조선일보까지 나선 보수 대개편 시도에서 검찰은 다시 사뿐히 착지했다.
검찰이 '제 식구' 봐주느라 검찰 수뇌부와의 통화 사실 등 주요 혐의를 뺐다는 비판이 높다. 검찰의 이런 행태가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만큼 검찰 개혁은 한국 사회의 오래된 과제였고 그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분명해졌다. 그런데 누구나 동의하는 검찰 개혁이 늘 흐지부지 되고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몇 제도적 방편으로 검찰 개혁을 논하기 전에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검찰이 지키는 것은
우병우는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임명된 것도 그 즈음이다. 두 사람의 운명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엇갈렸다. 정윤회를 비롯한 '문고리 3인방'의 국정 개입과 관련된 청와대 감찰보고서가 문제였다. 청와대는 문건 유출을 '국기 문란'이라는 프레임으로 규정하면서 문제를 왜곡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보고서에 언급된 문제는 외면한 채 문건 유출만을 강도 높게 수사했다. 우병우와 김영한 둘 다 '제 식구'였지만 우병우를 선택했다. 김영한이 사퇴한 민정수석 자리에 우병우가 올라섰다. 그러나 우병우의 권력욕이나 김기춘의 장악력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를 개인화하게 된다. 검찰은 검사 개개인의 집합이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에는 합동수사본부를 비롯해 여러 팀이 구성되었다. 합동수사본부가 선장과 선원을,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이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등을 몰아치며 수사와 기소를 하는 동안 광주지검 해경수사 전담팀은 해경 123정장 긴급체포 외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수사를 마쳤다. 우병우는 해경 본청을 압수수색하던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해경 상황실 전산 서버 압수수색은 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 같은 시기 서울중앙지검은 산케이 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명예훼손죄로 수사 기소하였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현 검찰총장 김수남이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국가의 책임을 지우고 진상 규명에 성역이 있다고 국민을 상대로 협박했다. 검찰은 이미 자신의 정치를 벌이고 있으며 세월호 참사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성공하고 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에서 누구나 동의했듯 문제는 권력자 개인이 아니라 권력 구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정권 중 검찰 개혁을 실질적으로 추진한 유일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갖추기를 바랐다. 검찰은 독립적으로 정권을 흔들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던 강정구 전 동국대학교 교수의 구속 수사 의견에 대해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천정배가 불구속 수사를 지시하자 검찰은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한국 사회에서 검찰은 정권의 눈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길들이기도 한다. 검찰이 수호하는 것은 정권이 아니라 지배 질서다.
검찰이 이룰 정의란
검찰이 지배 질서의 수호자라는 점이 드러나더라도 '정의의 수호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검찰의 기능 때문이다. 검찰은 형사 사법 기능의 핵심 중 하나인 기소권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와 이재용을 구속 기소한 특별검사가 보유했던 것도 그것이다. 그들은 국민의 응원을 받았고 결과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특별검사제도, 고위공직자수사처 도입, 수사권 경찰 이관 등 검찰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여러 방안이 검찰 개혁 과제로 제시된다. 그러나 검찰이 행사하는 기소권이 '국가'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국가 기관이나 재벌 대기업에 대한 봐주기 수사, 정부 비판 세력에 대한 과잉 수사와 기소 문제는 줄곧 지적되어온 검찰의 문제다. '법치'는 권력의 지배를 법의 언어로 관철시키는 것이 된다. 법의 심판은 사법부가 최종적으로 내리지만 무엇이 범죄이고 범죄가 아닌지 정하는 기능은 사실상 검찰이 수행한다. 검찰이 수사도 기소도 하지 않는 것은 범죄가 아니며,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하면 훗날 무죄로 입증되더라도 사회적 낙인은 사라지기 쉽지 않다.
국가 안에서 기소권은 중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재벌, 정치 권력, 보수 언론 등에 장악된 국가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검찰의 중립성은 환상일 뿐이다. 설령 '중립'을 이루더라도 국가가 지정하는 정의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에 기초를 둔 정의는 권리의 주체인 우리 스스로 수호해야 한다.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인권 침해의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국민이 인권의 수호자가 되기를 자임할 때에만 검찰은 자신이 가진 기능을 제공할 것이다.
검찰은 혼자가 아니다
국가가 지정하는 정의를 이루는 데에 희생된 것은 우리의 인권이다. 노동자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인권을 외칠 때 국가는 경제와 안보를 내세우며 억압했다. 일할 권리, 사람답게 먹고 살 권리, 생명권, 평화롭게 살 권리,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인권은 생떼나 사치로 치부되었다. '내부의 적'을 만들 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일용할 양식이 되어준 것이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국정원과 경찰이라는 행위자도 가담해있다.
박근혜 정권 첫 해를 복기해보자. 당선 전부터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으로 시끄러운 시절 국정원이 유우성을 간첩이라 주장하고 검찰은 그를 기소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는 흐지부지하다가 6월 들어 원세훈 김용판 등의 불구속 기소로 일단락된다. 곧이어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대선개입 사건 무마에 대한 비판을 잠재웠고 8월에는 'RO'라는 말을 등장시키며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전격 체포에 들어갔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은 대선 개입사건에 의지를 밝혔던 채동욱 전 검찰청장을 전방위로 압박했고,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등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해를 넘겨 유우성 간첩 조작의 증거가 드러났고 공문서 조작에 대한 책임을 검찰도 져야 했지만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검찰, 경찰, 국정원 세 기관은 '선의의 경쟁'은 할지언정 한국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한마음이다. 국정원과 경찰과 검찰은 서로 손발을 맞춰가며 서로의 짐을 덜어주고 서로의 권한을 빌려주면서 권력을 쌓아왔다. 국정원의 공작은 검찰의 기소로 완성되고 검찰의 체제 수호 의지는 경찰의 물리력으로 실현된다. 경찰의 잘못은 검찰이 덮어주고 검찰의 고민은 국정원이 풀어준다. 한국의 검찰에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 기관에 대한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개혁 구상이 있지 않는다면 일부 권한의 조정은 하나의 권력 안에서 이루어지는 권한의 재분배에 그칠 것이다.
인권을 내주지 말자
대통령을 끌어내린 촛불에서 우리가 단 하나만 기억해야 한다면, 우리의 권리를 잠재울 때 권력은 잠을 깬다는 진실이다. 인권 침해가 용인되는 만큼, 누군가의 권리가 제물로 바쳐질 때 묵인하는 만큼, 누군가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듣지 않는 만큼 국가는 잔인해진다. 박근혜의 파면은 특검이 아니라 국민이 이룬 성과다. 특검이 뭐라 하든 속지 않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가온 대선은 검찰을 비롯한 국가기구 대개혁의 방향과 대안을 토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나 테러방지법과 같은 국가기구의 일용할 양식을 걷어차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의 권리를 기억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에 뿌리 내리고 정의를 선언하는 주권자 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인권을 외면하는 순간, 어떤 제도를 통해서도 국가 권력은 악행할 수 있다. 제도를 작동시키는 힘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제도 너머로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인권의 세상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만큼 힘의 기울기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