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깊이 숙인 이철성 경찰청장의 고개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성찰적 반성과 책임인식이 결여된 사과를 비판한다.
지난 6월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이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깊은 애도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말하고 일반 집회 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수사권 조정과 함께 인권 친화적인 경찰에 대한 주문이 요구되면서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한 경찰의 사과와 책임에 대한 부담은 높아졌다. 하루 앞서 서울대병원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하고 유족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뒤늦은 사과가 연이틀 이어졌지만 ‘진심 어린’ 사과라고 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진심 어린’이란 표현은 했지만 ‘진심’의 마음과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불과 며칠 전인 6월 5일 기자간담회에서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해 즉각적인 의견을 피하면서 "수사결과에 따라 유족에게 사과할 수도 있다"던 이철성 경찰청장이 돌연 사과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경찰청 출입 기자간담회에서 이 청장은 “폭력시위 진압 과정에서 생긴 일이지만 어쨌든 고귀한 생명이 돌아가신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유감”이라고 말했다. 16일에도 이 청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 시위과정에서 유명 달리한”이라고 표현했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폭력시위’ 탓으로 돌린 지난해나 그저 ‘시위과정’이라고 말한 어제나 결국 의미하는 바는 경찰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왜, 무엇을 기대하며 사과를 했는가?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용서를 구할 마음은 있는가? 차벽을 설치하고 공격하듯 쏟아부은 물대포로 집회의 자유를 박탈한 경찰력 행사에 대한 반성은 있는가? 이 청장의 말과 태도에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없었다. 경찰의 수장으로서 당시 경찰력 행사에 대한 책임의식도 없었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도 설명하지도 않았다. 특히 청장으로 있을 때 벌어진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 청구에 대해 스스로 비판하지 않았다. 유족이 겪은 피해와 고통에 공감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직접 찾아가 그 마음을 전하기 위한 ‘애씀’이 있어야 한다. 카메라 앞에서 머리 숙이며 혼자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대면하고 직접 표현하고 믿을 만한 책임에 대해 약속해야 한다. 반성과 책임이 결여된 사과의 말은 2015년 11월 14일의 경찰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을 보여줬을 뿐이다.
이철성 청장은 재발방지 대책으로 살수차 배치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 사과에 알맹이가 없으니 재발방지 대책도 미흡하다. 그동안 물대포의 위험성이 여러 차례 지적되면서 법률에 규정할 것, 직사살수를 금지할 것 등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경찰관직무집행법이 아닌 대통령령에 사용기준을 넣는 수준이었고 직사살수와 혼합살수의 금지도 빠져있다. 위해성장비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의 통제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처벌이 가능한 법률에서의 규율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남기 농민의 사망이 물대포의 직사살수가 원인이기 때문에 재발방지 대책이라면 직사살수 금지를 명문화해야 한다.
이 청장이 말한 ‘일반 집회 현장’이라는 표현도 문제다. 평화적 집회를 보호하는 것이 인권의 원칙이다. 경찰은 그동안 ‘평화적인’ 집회가 아닌 ‘합법’ 집회만을 보호한다고 했다. 이번에 언급한 ‘일반집회’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처럼 신고한 집회를 금지해 불법집회로 만들어 차벽을 세우고 이에 대해 항의하는 행동을 한다면 또다시 물대포를 사용하겠다는 의미인지 밝혀야 한다. 여전히 사용가능한 예외적인 상황을 두고 이에 대해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는 수준이라면 재발방지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발언은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이뤄졌다. 이 청장은 "오늘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을 계기로 과거 잘못과 아픔이 재발되지 않도록 인권 경찰로 거듭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도 드린다"고 했고, 박경서 경찰개혁위원장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사죄를 언급했다. 경찰개혁은 과거의 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같은데 위원회는 과연 이 청장의 사과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였는지 의문이다. 특히 독일의 반성을 본받고자 한다면 정치인들을 비롯해 독일 사회가 끊임없이 반성과 사과를 해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찰개혁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과거의 인권침해에 대한 사실과 공권력 남용이 가능했던 조직구조와 생리를 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고 미래에도 그러한 잘못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만드는 ‘정의의 집행’이 진행되어야 한다. 구속력이 없는 경찰개혁위원회가 그저 들러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가해자로서, 경찰의 수장으로서 이 청장의 자기 비판적인 반성과 책임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2017년 6월 19일
공권력감시대응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