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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정치가 혐오폭력에 명분을 더해주고 있다

[인권으로 읽는 세상] 혐오정치로 멈춰선 인권조례

퀴어퍼레이드가 다가왔다. 얼마 전 생애 첫 커밍아웃을 한 친구는 퀴어퍼레이드를 손꼽아 기다렸다. '평등한 사랑'을 함께 외칠 시간을 기대한다는 말 속에 설렘이 전해진다. 그러나 걱정스런 마음도 동시에 든다. 반동성애 세력들의 방해와 폭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퀴어퍼레이드를 못하게 하려고 막아서던 반동성애 세력들은 몇 년 사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로 세력화된 그들이 이젠 '인권'자가 들어간 각종 조례들을 연달아 불발시키고 있다. 

인권조례들이 무너지고 있다 

2013년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했던 최원식, 김한길 의원은 반동성애 세력의 반발에 이를 바로 자진 철회했다. 이후 여러 법 제․개정이 반동성애 세력의 공격 속에 난항을 겪어왔다. 인권교육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2014년 유승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권교육지원법은 동성애 확산법이라는 반발에 철회됐다. 기업의 인권 보호를 촉진한다는 취지의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은 친동성애 기업지원법이라는 반발에 철회됐다. '정상 가족'에 속하지 않는 여러 가족형태를 반영하는 취지의 아동복지법과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은 동성가족 인정법이라는 반발에 철회됐다. 저마다 제․개정 취지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을 관통하며 철회를 압박하는 저들의 이유는 바로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추진되어온 인권조례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미 제정된 조례의 경우 그 취지를 훼손하는 개악 시도가 이어지고, 아예 폐기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15년 과천과 대전에서 추진한 성평등기본조례의 경우, 성소수자 보호에 관한 조항이 삭제되고 명칭이 양성평등기본조례로 바뀌었다. 2012년 제정된 충남인권조례와 이를 토대로 2014년 공표된 충남도민인권선언을 폐기하려는 행보 또한 이어지고 있다. 인천, 순천, 대구에서는 동성애와 관련 없는 청소년 노동인권조례도 반동성애 세력에 의해 줄줄이 무산되었다. 반동성애 세력들은 영역을 불문하고 '인권'과 '평등'이란 말이 기입된 모든 법제도를 공격하고 있다.

있으나 없으나 식의 정부와 지자체 

인권의 제도화를 흔들고 무너뜨리려는 반동성애 세력에 정부와 지자체는 어떻게 응답해왔는가. 앞서 언급했듯 2013년 국회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 2건은 모두 자진 철회되었다. 2014년 서울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진 서울시민인권헌장의 공표를 서울시는 반동성애 세력의 반발을 이유로 거부했다. 얼마 전 부결된 대구시 청소년 노동인권조례의 경우, 공동발의했던 시의원이 이를 철회하면서 "정권 유지를 위해 청소년까지 이용"한다며 반동성애 세력의 억지주장을 동조하기도 했다. 이렇게 반동성애 세력에 정부와 지자체는 자진 철회로써 굴복하거나 침묵으로써 개악에 공조해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따라붙는 핑계가 있다. 반대여론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동성애 세력에 확신을 전하려는 듯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의 이러한 태도가 인권 관련 제도 하나가 좌초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오직 동성애 조장이라는 억지 주장으로 인권의 제도화 과정을 흔들고 무너뜨릴 수 있음을 반동성애 세력에 반복적으로 확인시켜주면서 이를 사회적으로 승인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호응은 반동성애 세력의 행보에 힘을 실어줘 왔다. 시행 2주년을 앞두고 2014년 서울 학생 인권조례를 개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토론회에서 조례의 취지를 훼손하는 개정안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이 제시되자 이를 묵살하려는 반동성애 세력의 폭언과 위협이 난무했다. 그날 토론회를 주최했던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를 돌출 발언에 따른 '소란'이었다고 정리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토론은 혐오에 의해 출발선에 서지도 못한 채 끝이 났다. 혐오를 동인으로 하는 발화나 행위도 의견수렴 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반동성애 세력에 정치적 승리를 가져다줬다. 이는 반동성애 세력의 혐오폭력의 강도가 더해지는 명분이 되었다. 

지자체들이 앞 다퉈 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려고 할 때 인권의 제도화가 그저 치적 쌓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제기했었다.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인 이유로 반동성애 세력에 호응하면서 인권조례가 불발되었다는 소식들을 접하며 여전히 정부와 지자체에 인권은 수식일 뿐임을 확인하게 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직무유기와 무책임으로 숱한 인권조례의 불발과 후퇴 행보가 이어질 것이 예상된다.

혐오정치에 맞서 인권을 지키기 위해 

"청소년 노동자들이 웁니다." 청소년 노동 인권조례를 부결한 것에 대한 항의의 외침이었다. 청소년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구제하기 위해 교육과 상담이라는 최소한의 장치를 규정하는 조례를 심의하는 과정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 모욕적 처우 등 '밑바닥 노동'이라 칭해지는 청소년 노동의 현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청소년 노동의 실태가 어떠한지,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논의는 되지 않고, '반기업 정서를 심어준다, 기본질서 붕괴를 가져온다, 외부세력이 개입해있다'는 조례 반대를 위한 억지주장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청소년 노동 인권조례의 부결은 청소년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예한다는 것이기도 했다. 2012년 서울 학생 인권조례 주민발의를 성사했을 때 기쁨에 벅차올랐던 청소년 인권활동가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학생 인권조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질문할 권리, 생각하고 판단할 권리를 갖는 것"이라 했다. 조례 하나가 만들어지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었다. '육성'되어온 대상인 학생·청소년이 권리의 주체로 전환되는 것이었다. 조례를 타고 변화의 바람이 불기에 학교는 여전히 굳건했지만, 조례 이후 생성될 전환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인권조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지만, 인권조례가 단지 제도 하나가 새로 만들어지는데 그치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인권조례가 치적용 결과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 인권조례를 만드는 과정 그 자체가 인권을 실현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유예된 10년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10년이었다. 그 10년을 딛고 있는 지금, 인권조례를 계기로 삼으려는 반동성애 세력과 이에 호응하는 정치권의 공조로 혐오정치의 장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아무 말이나 다 듣고 반영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반동성애 세력들이 누군가의 질문과 표현, 참여를 가로막고 있을 때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역할은 바로 인권의 출발선을 확인하고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는 책임도 뒤따른다. 

곳곳으로 확장되고 있는 혐오 정치에 맞서 인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몫도 기억하자. 반동성애 세력에 맞서는 단호한 연대를 해나가야 한다. 배제되고 유예하며 인권의 실현을 가로막아온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이번 퀴어퍼레이드에 함께 모여 외치자.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