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 영등포 쪽방촌에 다녀왔습니다. 홈리스 지원시설을 방문해서 경찰이 불심검문을 적법절차에 따라 하고 있는지 실태도 파악하고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알렸습니다. 오랜만에 가보는 영등포 쪽방촌은 서울시가 시행한 환경미화 덕분에 다소 말끔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방값을 인상하지 않는 조건으로 쪽방주인들과 협의하여 환경미화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누구나 잘 보일 수 있는 전봇대나 벽에다 포스터를 붙이면서 주민들과 경찰의 불심검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는 불심검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신 분들도 있었고, 인권단체의 불심검문 거부 캠페인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1997년부터 불심검문 거부운동을 해왔습니다.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생들의 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사용되던 불심검문이 이제는 주로 특정 시민을 대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시민은 바로 홈리스입니다. 홈리스를 지원하는 교회가 구제금을 주는 대가로 홈리스의 주민번호를 수집해서 경찰에게 넘기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항의하고자 홈리스 행동, 인권운동사랑방은 10월 30일 경찰청 앞에서 항의기자회견을 했고 용산경찰서에 항의서한을 보냈습니다. 쪽방촌 주변에 종교, 사회복지시설들은 홈리스에게 편의시설과 급식 등을 제공하기 위해 밀집해 있습니다. 이번에 영등포 쪽방촌에 위치한 시설들을 방문하면서 경찰이 홈리스 개인정보를 넘기라는 시설에 제안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어요. 경찰이 임의로 수집하는 홈리스 주민번호는 범죄여부를 조회하는 데 사용되지요. 이것은 경찰실적으로 연결됩니다.
9월 4일 김00 님은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교회에 구제금을 받으러 갔답니다. 교회는 중복수령을 금지한다면서 주민번호를 쓰게 했고, 그 자리에 있던 사복 경찰관이 단말기휴대용 조회기로 주민번호를 조회했답니다. 김00 님은 그런 행태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 가짜로 주민번호를 썼고 당연히 조회가 안되었겠지요. 사복경찰의 요구로 출동한 정복경찰 2인은 김00 님을 검문하였고, 김00님은 신분증을 내 보이며 검문에 응했습니다. 조회 결과 김00에게는 아무 혐의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경찰은 자기들끼리 주민증을 돌려보며 바로 김00님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김00님은 쌓였던 분노를 표하며 항의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찰들과의 실랑이가 오갔습니다. 김00 님은 경찰로부터 상해를 입어 병원에서 한 달 치료를 받았습니다. 검찰은 경찰 말만 믿고 김00 님을 공무집행방해로 기소하여 선고유예를 결정하였습니다. 게다가 경찰은 김00 님에게 경찰에 맞았다고 하면 치료받지 못한다, 혼자 넘어져 다친 것이라고 하면 행려병자로 치료받게 해 주겠다며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답니다. 결국 김00 님은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됐고, 다음날에야 우연히 만난 홈리스행동 활동가를 통해 노숙인 의료지원을 받고 입원 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과 한 달 간의 입원 치료 끝에 현재 그는 퇴원했지만 아직 몸이 불편해서 평소하던 건설일용직을 나가지 못합니다.
△ 홈리스 김00 님이 겪은 이야기를 김삿갓 님이 만화로 표현해 주었습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불심검문을 거부했는데도 끝까지 경찰이 주민번호를 대라고 하면서 어떻게 하느냐고. 그럴 때, 거부하는 것은 당당한 시민의 권리라고 원론적인 이야기 말고 다른 답변을 기대하고 있음이 슬며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사실 정답이란 없습니다. 누가 대신 판단할 수 있는 몫이 아닌 순간입니다. 오롯하게 경찰 앞에 선 내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경찰에게 둘러싸여 가던 길을 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몇시간동안 감금되느냐, 김00처럼 상해를 입을 수도 있고 거기에 더해 공무집행방해죄라는 죄목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생업까지 조정해가면서 승산이 확실하지 않는 길고 긴 재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사회에서 공권력에 저항을 선택하는 순간은 이후 다가올 다양한 불이익, 예를 들어 신체적 손상과 경제적인 지출, 시간소모 등 모두 감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김00 님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고 고맙기도 하고 정당한 법집행을 했다고 거짓말하는 경찰을 어떻게 해야 하나 화나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저 역시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감시활동을 하다 발목 부상으로 오랜 시간 치료를 받고 있는 터라 김00 님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김00 님은 이 사건을 밝히지 않을 작정이었답니다. 괜히 젊은 경찰 앞날 막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했답니다. 그에 비해 용산경찰서는 참 염치가 없습니다. 상해를 입힌 김00 님에 게 사과한마디 없이 정당한 법집행이었다는 뻔뻔한 답변 달랑 하나 보냈습니다. 영등포 쪽방촌에 캠페인을 하고 나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잘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을 하면 좋겠다고 시설에서 일하는 분이 제안해주었습니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잘 대응하는 뾰족한 방법이란 게 딱히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우리가 왜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나누고 함께 저항을 도모한다면 김00 님이 덜 외로울 것 같습니다. 김00 님의 저항이 있었기에 또한 감내해야만 하는 힘겨움이 있기에, 불심검문 거부권이 경찰관직무집행법이라는 법조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경찰을 감시할 수 있는 힘으로 발휘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