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를 보는데 DMZ 지역의 지뢰 제거 작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 있는 세계정세에 불안하던 시간도 지나고, 이제 각국 정상회담도 익숙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된 요즘에는 ‘정말 세상이 바뀌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평화로운 한반도’가 찾아오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각국 정상들이 모여 한반도 종전을 선언한다고 해서 곧장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질까요? 거주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작된 분단은 이후 70년 동안 한반도 전체에 스며들어왔습니다. 70년간 쌓인 불신과 갈등이 말 몇 마디로 해소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연속토론회 <문제적 인권, 운동의 문제> 네 번째 토론을 통해, 가슴을 설레게 하는 평화의 바람에 앞서 우리에게 다가온 질문들을 살펴봤습니다.
분단 체제와 분단 폭력
강곤 활동가는 기초발제를 통해 그동안 한국 (인권)운동이 분단과 북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가지지 못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일종의 관습 헌법인 ‘이면헌법’으로써 남한 사회를 지배해온 국가보안법, 끊임없이 “너는 누구 편이냐”는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게 만드는 분단 체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분단 폭력 등. 남한 국가수립 당시의 제주 4.3사건부터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남북 경협사업가까지, 한국 사회에서 분단이 미쳐온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떠올렸습니다.
이어지는 심화발제에서 김성경 님은 분단 체제가 만들어온 배제와 혐오의 분위기를 말씀하셨습니다.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노년 보수 집단의 분단적 인식 체계를 살펴보며, 이들이 분단 체제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분단 체제를 유지/확산시키는 가해자로써의 정치적 주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분단 체제의 작동이 단순히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남한 사회문제와 결합하여 복잡해지는 양상을 확인하며, 이를 넘어서기 위한 인정(recognition)과 ‘윤리적 주체의 정치화’에 대한 제안을 나눴습니다.
탈북인 – 난파된 조난자들
분단 체제로 인한 현존하는 아픔으로, 기초발제의 강곤 활동가와 심화발제의 김화순 님은 탈북인을 이야기했습니다. 분단이라는 재앙을 맞아 난파한 ‘조난자들’, 현재 한국 사회에 3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떠오르지는 않는 존재들에 대한 많은 고민과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서로 편을 가르는 분단 체제의 낡은 인식틀을 벗어나 탈북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한 시도가 중요하다고 확인했으나, 바로 그 낡고 오래된 분단 체제의 습속을 벗어던지기 힘들다는 사실 역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탈북 후 남한에 입국하는 과정에서부터 탈북인은 국가의 검증과 감시를 받습니다. 이후 남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국가는 탈북인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이 과정에서 체제와 국가 권력은 탈북인을 시민사회와 분리시켜 왔습니다. 서로 만나고 알아갈 기회는 사라져 버렸고, 여전히 동정의 대상이나 인생승리의 아이콘으로만 탈북인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탈북인은 남한에서 권리를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평화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
70년 전 한시적이라는 조건을 달고 탄생한 국가보안법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헌법재판관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남북관계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국제관계 등을 고려할 때 국가보안법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남한 정부는 불어오는 평화의 바람을 말하면서도 지역주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주 강정마을에서 국제 관함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사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핵을 보유하는’ 자기 분열적 인식체계 속에서 평화는 그냥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평화보다 먼저 온 질문들을 살피는 작업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뚜렷한 방향이나 목표를 찾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가 같은 질문과 고민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흘러가는 세계정세 속에서 각국 정상들이 한반도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말하고 있는 이 때, 한반도의 모두가 ‘평화롭게 살 권리’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더욱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분단 체제를 해소하고 평화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을 이어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