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학생 집단행동 예방 대책'에 관한 인권단체 성명서
학생들의 집회·표현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려는
교육당국을 강력 규탄한다
교육당국이 자발적으로 터져 나온 학생들의 인권 보장 요구에 재갈과 족쇄를 채우기 위한 강경대응의 칼날을 빼들었다. 지난 4일 교육부 차관이 오늘 있을 자살학생 추모제와 14일 두발규제반대 행사에 학생 참여를 막기 위해 생활지도 강화, 현장사찰, 온라인 검열을 주문한 데 이어, 6일에는 서울시교육청이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까지 발표했다. 우리는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교육당국이 오히려 공포를 조장하고 학생들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죄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해 심각한 분노를 느낀다.
지난 3월부터 교실에서, 복도에서, 교문 앞에서 가혹한 두발단속이 자행되고 두발자유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이 징계로 내몰리는 일들이 벌어지자, 최소한의 존엄성이라도 보장받기 위한 학생들의 저항이 자발적으로 시작됐다. 두발규제 반대 온라인 서명만 6만5천명을 넘어섰고, 오는 14일에는 두발규제가 어떠한 정당성도 지닐 수 없는, 본질적으로 반인권적․반교육적 행위임을 고발하기 위한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아울러 최근 입시교육의 늪 속에서 고통받아온 학생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이들 죽어간 학생들의 혼을 위로하고 ‘상대평가제에 따른 줄세우기’와 ‘가혹한 입시경쟁’의 중단을 요구하는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오자, 학생들 사이에 ‘모여서 우리의 의견을 외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학생들의 움직임은 한낱 ‘철부지들의 투정’이 아니라 스스로 존엄성과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나선 ‘정당한 외침’인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기는커녕 학생들의 움직임을 ‘집단행동’으로 매도하고 신종 ‘교육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더욱이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집단적 의사표현을 결코 있을 수 없는 위험한 행동으로 매도하고 나선 것은 학교단위의 대규모 징계사태를 부추기는 행위나 다름없다. 때마침 일부 언론에서도 교육부가 중징계 방침을 밝힌 것처럼 확대 보도하면서 행사에 참여하고자 했던 학생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거나 더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징계 우려와 관련해 ‘징계는 학교의 재량사항일 뿐’이라는 말 한마디로 발뺌만 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당국의 이 같은 방침이 학생들에게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할 인권을 근본적으로 짓밟는 ‘인권침해 행위’로 규정한다.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학생들 역시 의사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포함한 인권을 누려야 할 주체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는 국제인권조약과 헌법은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문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바다. 한국정부가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 12조는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는 어린이․청소년에 대하여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15조에서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2003년 이 협약의 이행감시기구인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학생들의 정치활동과 사회참여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우려하면서 “의사결정과정과 학교 내외에서의 정치활동에서의 어린이․청소년의 능동적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법률, 교육부가 만든 지침 및 학교교칙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앞서 2002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학생생활규정(안) 가운데 학생들의 정치활동과 사회단체 가입을 불허하는 내용을 삭제할 것을 교육부에 권고하였다. 이러한 인권기준에 비추어볼 때, 학생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불법’이나 문제행동인 것이 아니라, 행사 참여를 원천 봉쇄하는 교육당국의 방침이야말로 법 위반이자 인권침해행위인 것이다.
게다가 일부 언론과 보수단체에서는 추모제 개최 움직임을 내신등급제 폐지와 본고사 부활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한 계기로 악용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학생들의 저항은 상대평가제에 따라 가중된 입시중압감과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결코 학교간 서열 강화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일부 언론과 보수단체는 학생들의 본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들의 주장을 왜곡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몰상식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학생들의 분노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그들의 의사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은 채 분노를 억지 진압하는 데만 급급한 교육당국의 책임도 한몫하고 있다.
우리는 엄중 경고한다. 오늘과 오는 14일 행사에서 교육당국이 학생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가로막음으로써 빚어지는 불상사에 대한 모든 책임은 교육당국에 있다. 또한 우리는 행사 참여를 빌미로 학생들을 징계하는 학교가 있을 시, 그 부당성을 고발하고 학생들이 인권을 되찾을 수 있는 모든 조처를 강구할 것이다. 나아가 교육당국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두발 규정, 학생 정치활동 금지 규정 등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교칙을 전면 손질함으로써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하고 국제사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도 충실히 따를 것을 촉구한다.
- 교육당국은 집회․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학생 집단행동’ 불허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
- 교육당국은 학생 인권 탄압의 상징인 두발규정과 정치활동 금지 규정을 즉각 교칙에서 삭제하고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교칙을 전면 개정하라.
- 교육당국은 학생들을 교육의 한 주체로 인정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라.
- 학교당국은 학생들의 행사 참여를 원천 봉쇄하려는 강압적 생활지도를 중단하고, 행사 참여를 이유로 학생을 징계하지 말라.
2005년 5월 7일
광주광역시청소년인권센터(광주YMCA), 다산인권센터, 민족민주열사추모단체연대회의, 새사회연대,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교육을위한교사모임,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평화인권연대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