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가진 것이 죄냐고 묻는다면
‘청렴결백한 관리’를 기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지만 공직자 재산공개 결과가 보여주는 현실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억’하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수‘억’대가 넘는 재산을 소유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 결과, 절반 이상이 강남권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10명 중 3명이 두 채 이상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투기로 번 돈 세금으로 환수한다”는 부동산 대책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들에게는 ‘껌값도 안되는’ 세금을 물리는 것이 골자였다. 그들이 만들어낸 부동산 대책이 왜 ‘집값 안정’에 기여하지 못하는지 너무나 분명해졌다.
부동산 대책이 부동산 소유자의 세금부담능력을 걱정했을 뿐, 공직자들의 말마따나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드러나고 있다. 임대주택을 늘리겠다면서 정작 그 집에 누가 들어가서 살 수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소득 10분위 중 하위 1분위 평균소득이 약 43만원인데 가장 저렴하다는 임대주택들도 보증금을 천만원 넘게 받는다. 5%도 안되는 임대아파트에 소득 하위 10%의 사람들이 못 들어가는 것이 한국의 주택정책이다. 아파트뿐만 아니다. 6억 이상 단독주택의 90% 가량이 서울에 모여있다. 그 집값을 이끌고 있는 것이 바로 강남권이다.
부동산 시세가 반영되지 않아 실제 재산보다 적게 발표되었다는 지적이나 재산형성 과정에서의 투기 의혹까지 해소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중요하다. 재산 취득과 관련된 세금을 충실하게 납부했는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불법이 아니고 투기가 아니면 그만인가.
양극화를 걱정한다고 떠들어대는 고위 공직자들은 소득불평등보다 부동산 자산 소유의 불평등이 더욱 심각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한 고위 공직자들은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거나 “투자 목적으로 샀다”고 무심하게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가진 것이 죄는 아니라고 한다. 떳떳하게 벌었고 세금을 꼬박꼬박 물었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동산은 다르다. 거리로 쪽방으로 지하셋방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주거의 하향이동을 경험한다. 고위 공직자들이 재건축과 개발을 통한 이익을 기대하는 동안 아무런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더욱 열악한 주거로, 도시의 외곽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은 높은 주거비 부담 때문에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정된 땅덩어리에서 ‘땅따먹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흔들리는 삶들이 어디 한둘이랴.
정부는 “이제 집은 재산이 아니”라고 광고한다. 그렇다면 집이 재산이 아님을 먼저 보여주시라. 직접 살지 않는 집, 직접 갈지 않는 땅은 오늘도 바람을 피해 지하도로 찾아드는 노숙인들에게 내어놓고 집을 팔아 생긴 차익은 임대료가 올라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에게 집을 제공하는 데에 내어놓으시라. 가진 것도 죄일 수 있다.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