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돋움활동가 편지를 쓸 때가 2013년으로 막 넘어갔을 즈음이었고 전 인도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는데, 그새 1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다시 정신없는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네요. 별 감흥 없이 2014년을 맞았는데 봄기운을 느끼는 이제야 세월의 흐름을 실감합니다. 워낙 봄을 좋아하다보니 미세먼지가 많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공기에 섞인 미약한 봄기운을 느껴보려 숨을 크게 쉬고 뱉습니다. 이렇게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여유에 감사하며 살고요, 이런 여유에 감사하며 사는 직장인입니다.ㅎ
여행을 가기 전엔 방송국에서, 지금은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면 직장 안에서 하게 되는 고민이 많이 달라진 걸 느낍니다. 인권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기준에 두고 봤을 때 말이죠. 방송국에서 일을 할 땐 주로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과 현실의 괴리가 힘들었습니다. 가령 비정규직이라는 위치에서 느끼는 불합리한 처우들, 기득권을 챙기는 데만 급급한 몇몇 사람들에 대한 실망, 쉼터가 없어 화장실 내부의 좁은 공간에서 쉬고 있는 청소부들을 보았을 때의 속상함,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노조에 대한 회의 등, 큰 조직이었기에 피해갈 수 없는 문제들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좀 다릅니다. 노동과 인권 등의 문제에 예민한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비효율적이라 느낄 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기본적으로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이전에 방송국이라는 조직에서 느꼈던 고민들에서 자유로워지니 이젠 스스로를 더 돌아보게 됩니다. 어디 핑계(?)댈 게 없으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말이나 글을 더 살피게 되고, 꼭 인권의 기준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이런저런 사정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이, 오히려 외부에 관대해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기준을 낮추고 인권이라는 말과도 멀어지는 게 되어선 안 되겠지만요.
어쨌든 다른 위치에서 새로운 고민을, 이전보다 나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건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분명 나아지고 있는 거라 믿고요. 아 그런데, 지금의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시기가 지나면 제가 있는 조직 안에서 간과하고 있던 인권의 문제들이 보이고 갈등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 잘 보고 잘 판단할 수 있어야겠죠.
요즘은 다음 달에 나올 쌍용자동차 관련 책의 원고를 읽고 있습니다. 쌍차 관련 소식은 눈에 보이고 들리기만 하면 마음 어딘가에 덜커덕 걸립니다, 알게 된 이후부터는요.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 같습니다. 대책도 없이 마음이 불편하니까 거리를 두게 되는 경향도 있는데, 이 글은 쌍차 문제를 보편적인 문제로 이끌어 올립니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 이렇게 이물감 없이 보편성을 획득시켜 주는 글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불편하지 않은 눈물과 연민을 느낀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그러고보니 꼭 홍보를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홍보를 하고 있네요. 좋은 글을 읽으면서도 ‘와 잘 팔리겠다’, ‘음 어떻게 하면 잘 홍보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저를 보며, 피곤해질 때도 많습니다.ㅋ 뭘 보고 읽어도 그것 자체로 받아들이기 점점 어려워지니, 세월이 흘렀다는 실감을 느끼게 되는 또 하나의 증거는 더 많은 이해관계에 얽히게 된다는 점이네요. 그런 상황이 아쉽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 대한 이해가 더 넓고 깊어지는 거라 믿으며,,, 다들 여유로운 봄날 되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