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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소란이 아닌 폭력이다

“아가리를 찢어버린다” 조폭 영화 속 대사가 아니다. 1월 10일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학생인권조례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악을 반대하며 학생인권이 두텁게 보장되길 바라는 목소리들은 이러한 욕설과 야유에 묻혔다.

토론회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했던 그 자리, 서울시교육청은 입법예고 절차에 따라 형식적으로 그 자리를 마련했을 뿐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토론은 애초부터 관심 밖이었던 것 같다. 미리 명단이 접수된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게 하고, 토론회 개최 관련 어떠한 공지도 하지 않았던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 개악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폭언과 위협에 시달려도 그저 외면하기 급급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소란'이라 말했다.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마주해야 했던 차별과 폭력의 무게는 그렇게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1월 26일 시행 2주년을 앞두고 서울시민 10만 명의 바람이 담겨 만들어진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너덜너덜해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12월 30일 서울시교육청은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개정의 사유로 상위법령 위반 및 교육감의 인사권(정책결정권) 침해 조항 수정, 학생의 권리에 수반되는 의무와 책임 제고, 교사의 학생 생활지도권 보장, 사회적 갈등 야기 조항 수정, 사회권적 기본권 강화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학생인권과 계속 대립적인 것인 냥 위치 지웠던 교권을 강화하고, 학생인권조례 발의 때부터 삭제하고 싶어 안달나 있던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차별금지사유에서 제외하며, 포괄적이고 자의적 판단에 의해 언제든 학생인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정체하는, 아니 오히려 후퇴하는 내용으로 학생인권조례 개정(改停)이라 밀어붙이니 서울시교육청에서 강조하는 행복교육이란 말이 참 무색하다.

이번 학생인권조례 개정안 토론회 소식을 접하며 겹쳐지는 여러 풍경들이 있다. 2007년으로 거슬러 가보게 된다. 정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던 중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며 성적지향 등의 차별금지사유 7가지를 삭제한 채 입법예고를 했다. 7가지 사유로는 차별해도 된다고 말한 것과 다름없는 누더기 차별금지법은 이미 차별금지법의 의미를 상실한 것과 다름없었다. 동성커플이 등장한 드라마를 보지 말자며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왠말이냐” 했던 이들은 2011년 학생인권조례 발의 소식에도 애가 탔다. 임신 및 출산과 성적지향이 차별금지사유로 들어가면 초등학생 임신을 부추기고 동성애를 조장할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으로 이어졌다. 지난 4월 차별금지법 발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회 홈페이지는 차별금지법 반대 게시물로 연일 도배되었고, 연말 성북 인권조례 제정 과정은 이번 학생인권조례 개정안 토론회와 같은 ‘소란’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는 개정안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을 묵살하기 위한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막말들, 야유와 고함이 난무했다. 각각의 돌출발언으로 인한 ‘소란’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외피를 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기제로 하여 나타나는 차별과 폭력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어떤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공격하며 삭제해버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폭력은 ‘소란’이 아닌 ‘범죄’이다.

<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2009년)>은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목소리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차별과 적대감, 폭력 선동 하에 이루어지는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사람들의 평등한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고 소수자들을 공론의 장에서 밀어내며 혐오를 퍼트리는 움직임은 세력화되어 갈수록 더욱 공격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인권 보호의 책임을 방기하면서 이러한 폭력과 범죄 행위를 침묵하고 외면하는 공공기관은 부디 스스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다시 각인하길 바란다.

지금 혐오가 노골화되고 점점 더 공격화되는 것을 주목하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다 단호하게 그것이 폭력이자 범죄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속 묻히고 밀려나는 목소리들, 우리가 함께 우선적으로, 보다 세밀하게 들어야 할 그 목소리들에 귀 기울여야 한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힘을 틔울 씨앗들을 우리가 함께 일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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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10 토론회 현장의 사건 요약

● 토론회가 시작될 때 국민의례 후, 시간관계상 애국가는 생략하겠다고 하자마자, 극우단체 회원들은 애국가를 부르라고 소리를 지르며 진행을 막음. 그 소동에 애국가를 다시 부른 뒤에도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라,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다시 하라며 일제히 폭언을 퍼부으는 등 전체주의적 행태를 보이며 소동을 피움. 이 소동으로 약 15분간 토론이 지연됨.
● 극우단체 회원들은 토론회 중,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반대하는 학생과 인권전문가로 나온 토론자에게 반말, 욕설, 인신공격, 야유를 퍼붓는 등 참가자들에게 모욕과 차별적․폭력적 언사를 가하며 토론회 진행을 심각하게 방해했음. 그들은 사회자가 토론자가 여러 번에 걸쳐서 조용히 해줄 것을 요구할 만큼 소란을 피웠음.
● 사회자가 자유발언에서 학생 발언을 두 번 모두 같은 소속을 가진, 학생인권조례에 부정적인 입장만 듣고 교사 발언으로 넘어가려고 하자 다른 입장을 가진 청소년들이 항의하였음. 이에 사회자는 앞으로는 서로 다른 의견을 번갈아가며 듣겠다고 함. 그러나 교사 발언에서도 교사가 아닌 부산대 최우원 교수가 주제와 관련 없는 발언을 하는 것도 사회자는 제지하지 않았음. 이후 학부모 발언에서도 학생인권조례에 부정적인 사람이 연달아 발언을 했고, 학생인권조례와 상관없는 좀 전 토론회 시작 때 국민의례 문제로 실랑이를 벌인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을 적극 제지하지 않음. 마지막에는 항의가 받아들여져 학생인권조례에 긍정적인 학생의 발언을 들었으나, 극우단체회원들의 비난과 빨리 끝내라는 사회자의 재촉으로 제대로 발언조차 하지 못함.
● 극우단체 회원들은 시종일관 토론회 진행을 무시하고 모욕적, 차별적, 폭력적 언행을 보이는 등 토론의 기본 자세도 갖추고 있지 않았음. 학생 발언에서는 학생인권조례와 별 관련이 없이 전교조가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가르친다는 주장을 하며 전교조가 없어져야 한다고 발언함. 학부모 발언에서도 두 번째에는 다른 입장의 사람이 발언해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을 무시하고 발언권을 얻어 이야기함. 교사 발언에서는 교사가 아닌 최우원 교수가 “북한인권”, “전교조는 종북” 등 학생인권조례와 무관한 내용의 이야기를 계속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회자가 “자기 자리에서 발언을 해달라.”, “그만 발언하라.”는 등 여러 차례 요청을 하고 참가자들도 “교사가 아니지 않느냐.”라고 항의했으나 최우원 교수는 완전히 무시함.
● 사회자 및 진행자들이 극우단체 회원들을 방치하고, 극우단체 회원들 역시 진행을 무시하여 정상적인 진행이 되지 않자, 분노한 참가자들이 최우원 교수 발언 중에 A4용지, 스케치북, 천 등에 준비해왔거나 즉석에서 쓴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시작했음. 잠시 후 현장진행요원들이 장내 통제를 위해 피켓을 내릴 것을 요청하여 피켓을 내리기 시작했으나, 극우단체 회원들 중 일부는 욕설을 퍼붓고 위협을 가하며 시민들의 피켓을 빼앗아 찢는 등 폭력을 행사하였음. 일부 시민들은 극우단체 회원들의 폭언과 폭력에 눈물을 보임.
● 그 이후에도 시민단체 등의 발언이 이어지긴 했으나, 장내가 소란스러워져서 정상적인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음. 사회자는 원래 순서에 있던 토론자들의 마무리 답변 순서도 없애고 서면으로 의견수렴을 대신하겠다고 하며 황급히 토론회를 마침. 이후 경찰이 출동하여 극우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파괴한 뒤로 격화되던 장내 상황을 진압하려 함. 이 과정에서도 극우단체 회원들은 자료집을 휘두르고 사람들에게 던지는 등 폭력을 행사함.

(출처 :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