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11년 상반기에 영화제팀과 반차별팀에서 활동했던 현주라고 합니다. 지금은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팀 기획단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인권영화제를 통해 사랑방에 드나들게 되면서, 반차별팀에서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차별 당사자들의 생애사 인터뷰를 하고, 그 속에서 차별 사례들을 살펴본다는 문구에 마음이 동했습니다. 직접 그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지요. 그렇게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에 지원을 했고, 팀원들을 만나 회의를 하고, 섭외를 하고, 인터뷰 사전교육을 받을 때 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이들의 이야기에 어느새 푹 빠져들었습니다. 맞장구치고, 눈물짓고, 웃는 와중 교육 받으며 했던 다짐들은 의식의 저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녹취를 풀면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었어… 이러면 안됐어…’라며 머리를 쥐어뜯었으나 그렇다고 다시 인터뷰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열 개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나니, ‘복합차별 당사자의 차별사례를 생애주기에 기반하여 살펴보고 보고서를 작성하자’던 야심 찬 계획은 참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우리가 풀어놓은 그들의 삶 속에는 눈물이나 아픔, 괴로움, 분노만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합 차별 사례 보고서를 내기 위해 이야기들 속에서 ‘차별사례’만 끄집어내어 그들이 입은 손해를 입증하는 일은, 어쩌면 이 사람들의 삶을 또 한 번 멋대로 재단해버리는 결과만 내보일 것 같았습니다. 이 보고서를 통해, 이 사람들의 사례들이 ‘차별’이라고 ‘인정’받고, 인권위 진정이 된다고 해서, 그이들의 삶이 만족스러워질 것이라는 확신 또한 들지 않았습니다.
이 고민은, 어쩌면 ‘차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생겨났을지도 모릅니다. 흔히 차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금전적 손실을 주로 떠올리지만, 한 사람의 인격이 삭제되는 순간과 그로 인해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을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이 생의 어느 순간에서는 차별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그 정체성으로 인해 살아가면서 감격스럽거나 가슴 벅차고 먹먹했던 순간 또한 존재하기에, 그리고 그 순간들이 이야기들에서 나타났기에, 더욱 더 보고서라는 형식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별사례 보고서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괴로운 데에 반해, 우리가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읽는 시간은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는 점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점이 이 이야기들이 가진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차별당사자들의 삶은 슬픔, 분노, 박탈, 냉대, 멸시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는 점을 이 이야기들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같은 치료를 받는 중고등학생 아이들을 보면, 모르더라도 붙들고 “걱정하지 마. 너는 예뻐. 너는 건강해. 너는 그냥 다를 뿐이야.” 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구절이나, ‘평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그 시간이 지금의 날 만들었다.’는 구절은 이 책이기에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나 이채로운 이야기들이 더 많은 공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를 통해, 너와 내가 결코 단절된 존재가 아님을, 우리의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 않고, 그러기에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수신확인>이라는 응답을 보내며,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