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안산의 반월, 시화공단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타는 통근버스를 이른 아침에 따라다녀 봤어요. 아침 6시 30분까지 상록수역에 가야해서 제가 살고 있는 노량진에서 첫 전철을 탔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첫 차를 기다리더군요. 새벽녘의 상쾌한 기분은 잠시뿐이고, 자리에 앉고 얼마 안돼서 졸음이 쏟아졌어요. 그러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어요. 행색이 초라한 아저씨가 노약자석에 누워있는데 맞은편 남자가 공공장소에서 누워있지 말라고 한 소리 했던 거죠. 그 말을 들은 아저씨는 막일하느라 허리가 아파서 잠시 누워있었다고, 자기는 노숙자가 아니라고 소리를 높였고, 말이 오가면서 싸움이 된 거죠. 잠을 깬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는 노숙인처럼 보이는 인간이 행패를 부렸다는 것만 기억에 남지는 않을까,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반대 활동을 하는 제 마음은 답답해졌어요. 편견도 일말의 진실을 품고 있으니 말이죠.
골목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다양한 통근버스들~
앗, 다른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아무튼 그날 안산에서 통근버스를 따라다닌 건,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어디로 가면 많이 만날 수 있는지 파악하려는 거였어요. 결과는 신통치 않았어요. 안산 시내 곳곳을 전세버스, 콤보 버스, 승합차 이 세 종류의 통근차량이 누비고 있었습니다. 골목 곳곳을 지나다니면서, 1~2명, 3~5명씩 태우더군요. 여러 회사의 차들이 모여서 수십 명씩 태우는 곳이 있을 줄 알았거든요. 허겁지겁 빵을 베어 물면서 차에 올라타는 사람들, 머리를 미처 말리지 못한 아줌마들도 보이고, 통근버스 뿐만 아니라 대학교 통학버스들도 많더군요. 안산역 앞 중앙분리대에 무단횡단금지라는 중국어, 영어, 한국어가 큼지막하게 함께 쓰여 있고, 지하보도 앞에서는 중국인 남녀가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 가니 이렇게나 다른 광경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싶어서 쪼~금 답답해지기도 하고 그랬어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전략조직화 활동에 함께 하기로
작년 20주년 워크숍부터 시작된 오랜 논의를 통해, 사랑방이 앞으로 지향할 세 가지 활동 방향을 정하고, 안산과 마포에서 그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사랑방 20주년이라는 큰 행사도 있는 만큼 중심활동팀이 그 첫 단추를 꿰는 작업을 시작하는 거구요. 활동방향 세 가지는 1)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관계, 연결, 연대망 만들어가기, 2) 규범이 아닌 저항의 언어로서 인권 만들어가기, 3) 인권운동 영역을 넘어 세상을 바꾸려는 여러 운동, 에너지와 함께 하기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이런 고민들을 함께 풀어낼 수 있는 활동으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전략조직화’ 활동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일환인 ‘안산시흥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활동에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안산에 가서 통근버스도 따라다녀 본거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은 제조업 분야의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는 공단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임금과 불안정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되어 있어서, 노조와 같은 안정적인 노동자 조직을 만들어 사업주에 맞서거나 노동-생활조건의 향상을 도모하기도 매우 힘든 상황인거죠. 그런데 이게 매우 특수한 공단지역만의 상황이 아닌, 전체 노동자의 80% 이상이 일하는 100인 미만 사업장의 일반적인 풍경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돈이 없는 대다수는 노동력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게 자연법칙과도 같이 관철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대다수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중소영세사업장 전략조직화’가 사랑방이 앞으로 지향할 운동 방향을 시도해보고 부딪혀볼 만한 활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인권’을
그건 노동운동의 역할이 아니냐고요? 물론 노동운동이 해야 할 일인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을 직장, 교육, 의료, 주거로 나눠서 생각하고 계획하는 게 가능할까요? 우리처럼 복지가 부실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삶의 모든 조건과 환경들을 개인 또는 가족이 책임지고 부담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거래하고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닐까요? 예전처럼 좋은 직장이 평생 보장되는 것도 아닌 저임금 불안정 노동 시대에는 사람들도 통근거리, 임금, 복리후생 등의 조건을 치밀하게 계산해 언제든 좋은 직장이 나면 옮기려 하잖아요? 각각의 권리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기 보다는 내가 아이를 직접 돌보는 게 나을 지, 학원이라도 보내려면 직장에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상황들은 우리에게 삶의 권리들을 노동권, 주거권, 교육권과 같이 나누기보다는 ‘사람답게 살 권리’, ‘인권’을 더 고민하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일터에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노동권 영역이나 노동조합이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활동가들의 생각일 수 있듯이 말입니다.
중소영세사업장을 일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양한 삶의 문제들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해결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 관계들을 만드는 활동들 그리고 그로부터 출발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권을 만들어가는 활동들이 사랑방이 뛰어들려는 활동이 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될 여러 운동단체들과 연대 경험들을 만들어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이구요. 앗, 마포 이야기를 미처 하지 못했네요.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 달에 전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