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구제금융 이후 사회권에 대한 관심은 당시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한 출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정리해고, 가정해체, 노숙자와 결식아동의 증가 등의 사건들을 단지 개인의 불행이나 무능력이 아닌 사회구조 속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실천운동이 필요했습니다.
그 첫 걸음으로 1999년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간답게 살 권리-IMF 이후 사회권 실태 보고서』(사람생각, 1999)를 통해 한국사회의 인권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인권문제를 '사회권'의 시각으로 조명한 첫 시도로서 우리사회에 '사회권' 이란 이슈를 던졌습니다. 이어 사회권의 권리항목을 세밀하게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사회권의 권리항목이 자유권에 비해 개념화되지 못한 점, 따라서 국가나 사인에 의한 인권침해를 제대로 모니터하지 못한 점 등이 사업의 배경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인권이 단지 헌법의 기본권 조항이나 국제인권문서에 나와 있는 '수사'로서의 의미가 아닌 '무기'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회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이 사업을 촉진하게 된 출발이 되었습니다. 또한 자유권이 즉각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반면, 사회권은 상당한 재정적 지출을 동반하여 점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해석이 잘못된 것임을 밝혀내고 싶었습니다.
# 사회권규약에 천착하며
그 첫번째 작업은 1966년 유엔이 채택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규약)에 대한 천착이었습니다. 비록 내용이 추상적이지만 사회권을 이해하는데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1976년부터 발효되기 시작한 사회권규약은 자유권규약에 비해 이행감시기구가 마련되지 못하였고, 권리를 침해당할 경우 청원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종종 구체적인 권리규범으로 인정받지 못해왔습니다. 사회권규약에서 보장하는 인권들이 구체적이고 보편적이며 법적인 권리로 인정되기보다는 추상적이고 도덕적이며 프로그램적 권리로 해석되었습니다. 더우기 사회권은 '점진적인 달성', '가용자원의 최대한도까지' 등 국가의 의무를 모호하게 규정하여 각국 정부들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구실로 악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사회권규약은 유엔 인권기구들과 국제인권단체들, 인권운동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점차 보편적이고 실질적인 권리로 자리매김되고 있습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규약을 해석하기 위한 원칙과 기준들을 일반논평을 통해 제시하고 있으며, 유엔 인권위원회는 사회권규약의 청원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전문가를 두어 검토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인권고등판무관을 필두로 사회권 분야로 관심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사회권규약을 해설하면서 기준으로 삼은 것은 1986년 '사회권규약 이행에 관한 림버그원칙', 1989년부터 발표된 사회권규약 '일반논평', 1997년 '사회권침해에 관한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 등입니다. 림버그원칙은 사회권규약 당사국의 이행의무 성격과 범위, 당사국이 제출하는 보고서와 국제적 협력에 대한 고찰로 표준적인 해석의 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반논평은 사회권규약에서 보장하는 구체적 권리의 범위와 내용을 설명하고 있으며,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은 당사국의 사회권 침해를 설명하기 위해 존중·보호·실현의 의무, 행위 및 결과의 의무, 즉각적인 실현 의무와 반드시 이행해야 할 핵심적인 국가의 의무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사회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하여
'사회권은 법적 권리가 아니다', '사회권 실현에는 돈이 많이 든다', '사회권은 점진적으로 실현된다' 등은 사회권에 대한 대표적 오해들입니다. 사회권에 대한 '오해'가 아닌 '이해'를 원하는 분들은 해설서에 담겨진 근거를 보시면 됩니다.
해설서에는 자유권이 국가의 불간섭에 의해 즉각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반면, 사회권은 국가의 간섭에 의해 - 특히 재정적인 부담을 가지고 - 점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 자유권과 사회권의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에 입각한 통합적 접근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어 대안적 접근법으로서 국가의 이행 의무를 존중, 보호, 실현의 세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직 사회권해설서가 모두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현재 사회권해설서팀은 노동권, 사회보장권, 교육권, 건강권, 식량권, 주거권, 과학권, 문화권 등을 공부하며 각론에 담겨야할 권리항목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회권해설서팀은 사회권 개념이 진보를 지향하도록 해석하고 다양한 실천운동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