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으니 지나간 한 해를 새삼 돌이켜 보게 됩니다. 지난 해 9월쯤 이었던가요. 자원활동가 신청서를 보내고 처음으로 사랑방을 찾았던 날, 이런저런 소개를 듣고 난 후 바로 용산국민법정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얼굴도 익히기 전이라 매우 낯설었고, 회의 중 나오는 발언들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이 허다했습니다. 분위기도 어찌나 진지하던지 ‘인권운동초보’인 저로서는 끼어들지도 못할 것 생각마저 들었지요. 게다가 기소일은 당장 다음 달로 잡혀있다고 합니다. 처음 왔다고 발을 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멀뚱멀뚱 앉아 있다보니 얼떨결에 글을 하나 쓰기로 약속하였습니다. 며칠 후에는 뉴스레터의 편집까지 맡게 되었지요.
그런데 며칠 지나고 보니 어느새 뉴스레터를 익숙하게 편집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회의에도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이상에는 꼬박꼬박 참여했구요. 그 동안 정신없기도 했지만 허울 좋은 활동가가 아닌, 실제로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사랑방 모두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10월 18일 날, 드디어 용산 법정을 개최했습니다. 오전에 다른 활동가분들과 함께 자리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맴돌았지요. ‘드디어 시작하는구나.’ 하는 기대 반,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걱정 반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정이 시작되자,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꽉 들어찬 사람들에, 수많은 취재진, 실제 법정을 연상시키는 신문 과정, 인터넷 생중계까지! 생각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던 동기 녀석도 인터넷 중계를 보다 ‘꽉 찬 거 보니 안심이 된다.’며 기뻐해 주더군요.
그 용산 법정이 열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 유가족들이 빈소에서 일어났습니다. 정부 측과 합의가 이루어졌다는군요. 벌써부터 그 세부 내용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지만, 우선은 그들에게 비참한 현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습니다. 근 1년 동안 편히 잠들지도 못했던 고인들은 비로소 진정한 영면을 위한 보금자리를 찾아가겠지요.
인권 관련 소식만 살펴봐도 다사다난했던 2009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새해입니다. 경인년이라지요? 요새 심심찮게 보이는 호랑이 그림들에 범띠인 저는 마냥 즐겁습니다. 대한민국의 호랑이 띠가 한 둘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기를 기대해보고, 괜히 한 번 더 새해계획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설레임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전해져, 보람찬 한 해를 위한 활력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권운동사랑방이 어둠 속에서 헤매는 그들을 밝혀줄 한 줄기 불빛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