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이 더디 와서인지 꽃들도 늦게 피었다. 동백을 보겠다고 3월초에 내려간 선운사는 때를 못 맞춘 탓도 있겠지만 붉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시침을 뗐다. 3월이면 서울에서도 오며가며 보이던 개나리꽃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남들은 목련이 피었네, 진달래를 봤네 하는데 내 눈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꽃이 늦게 핀다고 혼자서 불평만 늘어놓던 어느 날, 집에서 나오는 길에 꽃잎을 하나둘 떨어뜨리고 있는 목련을 봤다. 길가의 나무들은 여전히 앙상한 채로 잎도 틔우지 않고 있었는데 그 너머 언덕에는 이미 한참 전에 핀 꽃들이 늘어서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때를 알고 어련히 자신을 피우는 꽃들을 괜히 조급한 마음에 혼자 못보고 있던 나.
사랑방 상임활동가를 지원하기까지, 지원하고 인터뷰를 하기까지, 줄곧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기도 했고 나에게는 조금 무거운 결정이기도 했는데 무게를 분산할 만큼의 여유를 가져보지 못했다. 시간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상임활동가가 되어 사랑방의 다른 활동가들과 진지한 고민들을 나누고 유쾌한 웃음들을 나누고 싶다는 욕심을 좇아 한참 달려나가다 보면, 그동안 해왔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고민과 욕심이 '나 잡아봐라'며 달려나가고, 그랬다. 어수선했다.
며칠 후면 사랑방으로 '출근'한다. 이제, 꽃들이 보인다. 온통 노랗게 피어버린 개나리꽃들 사이에서 아직 파란 순을 내비치는 어린 꽃도 보이고 같은 노란색이지만 투박한 맛에 정이 더 가는 산수유나무의 꽃들도 간혹 보인다. 철없는 내 마음도 보이고 치기에 횡설수설하다가 막걸리 한사발에 빙긋이 웃기도 했던 내 목소리도 들린다.
‘첫 출근’을 하는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여전히 설렐까. 인권운동사랑방의 매력은 때로는 무거운 부담이 되기도 한다. 잘할 수 있을까. 잘한다는 건 어떤 걸까. 하하. 제대로 ‘액땜’을 해서 왠지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사랑방의 상임활동가 마당에 처음으로 글을 쓰다가 날리고 자원활동팀 게시판에 글을 쓰다가 날리고 심지어 이 글도 쓰다가 날렸다. 더 날릴 것도 없어 보이니 슬슬 쌓이기 시작할 것 같다.
그저 지금 욕심은 늘 배우는 마음 잃지 말자는 것이다. 지나온 것들을 쉽게 놓치지 말되 너무 붙들리지도 말자는 나직한 다짐과 함께.
많이들 도와주시고 지켜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