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옥수수입니다. 2010년 초에 들어온 것 같은데, 벌써 2011년 새해가 밝았군요. 처음에는 야심찬 마음으로 사랑방의 문을 두드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별로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이 지면에도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많이 고민이 되네요. 2011년 새해가 밝아오고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계란 한 판, 이라고도 말하지만 사람의 나이를 계란으로 표현하는 것이 꺼려지니까, 그냥 서른이라고 하겠습니다. 작년에는 결혼을 했고, 재작년에는 직장을 구했고, 그리고 올해에는 아직은 아무 것도 한 것은 없습니다. 목표는 아이를 가지는 것이기는 한데 그거야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인생의 중요한 지점들을 지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왜 이 시기에 ‘인권운동사랑방’이냐. 네 인생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 직장에서 좀 더 인정 받고, 남편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2세를 낳을 계획도 차근히 세워보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그 무엇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면서 왜 시간 들여서 그 곳에 가고, 별로 도움 되는 것도 없으면서 계속 활동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냐. 대학 때, 그렇게 시간이 남아 돌았을 때에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 볼까, 여행을 가 볼까 하면서 자신에게만 시간을 투자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 말이 맞습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제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아직 초임이라서 직장에서도 저에게 불만이 많고, 좀 더 노력하기를 바라는데. 남편은 내가 충실하게 가정을 지키면서 그를 돕기를 원하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 얼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시간을 투자할 이유야 없습니다. 내가 내 생활을 가꾸어가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은 저에게는 사치입니다. 저도 이런 제가 바보 같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대로 활동도 하지 못하면서 또 그만 두겠다고 확실히 말을 하지도 못하고 부끄러운 ‘자원 활동가’로 남아 있는 것이 때로는 비참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만 두지 않을 겁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그 전까지는 힘닿는 데까지 함께 하고 싶습니다. 비록 직장이 멀어서 사랑방에 한 번 가기가 힘들고, 시간도 없고 몸도 약하지만 제 삶의 방향 만큼은 이 곳에 두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저도 무엇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저에게는 이것이 정답 같습니다. 저는 강남의 어느 아파트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곳은 강남이었지만 저는 크게 풍족함은 느끼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 입을 것은 모자라지 않았고 특히 학습에 관계된 것에는 부모님께서 크게 채워 주셨습니다. 과외는 받은 적이 없지만, 모자란 과목을 보충해야 할 것 같아서 학원을 다니겠다고 하면 부모님께서는 언제든지 돈을 내주셨습니다. 경기도로 이사를 가고, 그 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저는 공부 지옥에서 해방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물론 취업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었지만 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선택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세상에는, 학원비는 커녕 교재비에도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그들은 대학 가기가 아무래도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저는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제가 속해 있던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안정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랐던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 세상의 구조적인 모순에 기인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모순’을 조금이라도 깨려고 노력해 왔으며, 그들의 피와 헌신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옳은 것, 바른 것, 사랑하는 것, 믿는 것, 바라는 것, 나누는 것, 행복해람들이 , 희생하는 것. 그것을 향한 깨려에 인간의 열정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금 움직여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있는 영역 안에서 조금만 밖으로 나와 보기로 했습니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언젠가 대학을 다닐 때에, 어느 분의 특강을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명문대 의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헌신하기로 한 결단의 삶에 저희를 포함한 청중들은 박수를 보내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 박수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이 원한 것은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또한 그런 것이면 좋겠다고, 2시간 기도하고 22시간 마음대로 살지 말고, 24시간을 헌신하라고(그 분은 목사님이었고 저희는 기독 학생회 회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얼마 전에, 저는 학교 선배를 만났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제가 하는 작은 활동들을 이야기했더니, 선배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게 옳은 길인지 알면서도 갈등하게 된다고. 어떻게 실천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용기도 나지 않는다고.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옳은 길을 망설여하는 까닭은, 그것이 너무나 쉬운 길인 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제가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다치면 어떻게 하냐. 그게 뭐가 쉬운 길이냐. 내가 지니고 있던 것을 다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저는 아직 제가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설령 포기를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보다 더 힘든 일은 자신의 양심을 지키지 않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신을 속이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은 채 가두어두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까요.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비록 그 분이 삼성의 임원으로 돈은 많이 받았을지 모르겠지만 그 곳에 있으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식 보기가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삼성의 비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말하지 못해서 얼마나 입이 근질거렸을까. 지금은 비록 돈은 그전보다 많이 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저는 제가 좋아서 이 일을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힘이 닿는 데까지 일을 할 생각입니다. 사람은, 남과 더불어 살 때에 근본적인 ‘기쁨’을 느낍니다. 모든 사람이 기쁨을 느끼는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에 제가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