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소식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단순한 제호를 처음 만난 때를 기억할 겁니다. 제가 하루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피시(PC)통신 시절 자주 찾던 게시판에 누군가 퍼올린 글 때문이었습니다. 1997년 한총련 지도부의 '비대중적 폭력노선'에 대한 환멸을 이유로 너도나도 탈퇴를 결정할 때 "고립무원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희망과 믿음을 저버리기 위한 핑계를 찾게 마련"이라는 질타와 "권력의 폭력을 꿋꿋이 견디며 기꺼이 감옥에 감으로써 정신의 젊음을 지켜내는 일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지적하던 것이 하루소식이었습니다. 저에게 하루소식은 '광야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로 다가왔습니다.
어쩌다가 사랑방 활동을 시작했고 경험도 고민도 별로 쌓이지 않았는데 지난 1년 하루소식 편집 책임을 맡았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전율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부담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결정도 혼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별일 아닌 일로 동료들을 언짢게 만든 적도 있어 부끄럽습니다.
돌아보면 하루소식은 독자들에게보다 사랑방 안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싶습니다. 매일 기사쓰기는 활동가들이 자칫 자신의 사업과 관심분야에 매몰되어 다양하게 제기되는 인권사안을 보지 못할 때 스스로를 다그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이 자신의 운동을 스스로 설명하고 시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아 방치된 일 가운데 누군가는 해야할 일을 발굴하는 성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른 운동이 지금 고민하고 조금씩이지만 만들어가는 성과는 활동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쪽을 편들 것인가'라는 고민을 날마다 한다는 것을 뜻하더군요. 사건이 새롭고 모호할수록 그에 대해 입장을 정한다는 것은 고통스럽기만 했습니다. 비록 하찮은 내용이더라도 활동가들 자신의 이름으로 남는 글은 글쓴 사람에게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한 문장을 수없이 갈고 다듬고 비슷한 느낌의 단어 가운데 하나를 찾아낼 때의 기쁨만큼이나 독자들에게 내놓을 때의 부담이 더 컸습니다. 인권운동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쉼없이 달려온 지난 12년 6개월의 고통스런 글쓰기는 사랑방의 문제의식을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위 사람들이 보여주신 관심은 자칫 풀어지기 쉬운 긴장을 놓치지 않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잘 써줘서 고맙다"는 인사는 물론이고 "당신들, 인권이 뭔지나 아냐"는 항의전화까지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주류 언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지도가 떨어지는데도 취재 건이 있을 때마다 연락주신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하루소식의 이름을 포기한다는 결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인터넷 매체가 비슷비슷한 뉴스를 발빠르게 쏟아내고 있다보니, 뭐 한가지라도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욕심에 이것저것 뒤져보다가도 힘이 부족함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누가 읽기라도 할까'라는 패배감에 젖기도 했던 것이 부끄럽게도 사실입니다. 고작 1년 전에 팩스발행을 폐지하고 인터넷판 강화로 방향을 정했는데도 심층분석 기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긴 호흡을 가지겠다는 다짐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 스스로에게는, 폐간 결정에 참여한 일이 "무의식적으로…핑계를 찾게 마련"이라는 질책을 받을만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뜻하지 않게 마지막 편집인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고생하신 분들, 관심가져 주신 분들에게 죄송할 뿐입니다. 식상한 말이지만, 지난 1년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감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그 부족함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로 다루지 못했던 사건들이 너무 많아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하루소식 폐간과 함께 바로 새 매체를 선보일 수 없는 점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매체에도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