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오래 깊게 천천히 바라보기
2년 전부터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인권 현장 활동으로 워낙 에너지를 빼앗긴(?) 상태라서 충전할 수 있는 ‘매개’가 필요했습니다. 운 좋게도 ‘달팽이 사진골방’이란 곳을 만난 것도 작은 계기였습니다. 처음에는 기계치라서 카메라를 다루는 것이 겁도 났어요. 카메라를 배우는 과정은 카메라를 다루는 기술을 습득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내 앞에 있는 피사체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받는 순간, 멘붕 상태가 되었습니다. 내 앞에 있는 피사체가 사람, 사물, 장소이든 내가 그들을 인식하는 방식 그대로 프레임을 구성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그동안 사진을 공부하면서 피사체가 되어준 부모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감정의 너울거림에 참 약한 사람입니다. 좋고 싫은 것도 분명해서 싫은 사람, 물건, 장소에 대해서 눈길 한번 주지 않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제가 선택한 관계에 대해서는 그런 기준이 적용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어떤 일도 모두 제 감정과 의지대로 될 수 없습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관계는 어느 누구도 선택을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제 세상의 전부였고, 사춘기 때는 무지하게 싫었고, 청년기를 지나면서는 바빠서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을 사진으로 담기위해 ‘많이 보면서’ 부모님을 이해하는 저의 감정과 생각에 다양한 여지가 생겼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저는 피사체를 봅니다. ‘나는 피사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제 시선과 감정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이 매개가 되어 제 앞의 피사체를 그 이전과는 다른 인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이 열렸습니다. 저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첫 번째 피사체는 엄마입니다. 딸에게 엄마란 또 다른 자신입니다. 저처럼 엄마와 동일시가 심한 사람에게 엄마를 사진으로 담는 일은 결국 저 자신을 담는 일입니다. 엄마를 얼마간 연민과 짜증으로 대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쩌지 못할 그 어떤 존재로 느꼈습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던 순간은 엄마에게, 저에게, 다른 가족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9개월 동안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약을 짓기 위해 첫 외출을 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휠체어에 탄 엄마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은 휠체어를 밀고 있던 저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카메라로 엄마와 만나는 순간은 제가 엄마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동일시하면서 받아들였던 엄마를 ‘개별화된 인간’으로 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엄마를 누군가의 아내와 어머니가 아닌 사람으로 받아들 수 있었던 과정이었습니다. 십대 중반 이후 30년이 흐른 후 제2의 사춘기를 경험하듯이 엄마로부터 저를 떨어뜨릴 수 있었습니다. 전시회 이후 난 물리적인 독립을 감행했습니다.
두 번째 피사체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저의 피사체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왜 나는 찍어주지 않는 거야.” 살짝 서운한 마음도 담아서 제가 미처 카메라를 들기도 전에 아버지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면 ‘찍사(사진사)’인 저를 불렀습니다. 재작년에 칠순을 넘긴 아버지 세대에게 ‘사진 찍기’란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이벤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엄마를 돌보고, 김치를 담그거나 설거지를 하는 아주 일상의 삶을 카메라로 들이댈 때 돌아온 말, “뭘 그런 걸 찍느냐? 아버지 망신시킬 거냐?”라는 핀잔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뚝딱거렸던 순간이 사진을 매개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사진은 피사체와 대면을 절대 피해갈 수 없습니다. 피사체를 오래 깊이 보면서 마음이 열렸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저는 싫거나 힘든 사람에게 눈길을 잘 주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아버지에게 눈길을 잘 주지 않았습니다. 눈을 마주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보기 힘든, 보기 싫은 아버지를 프레임으로 담기 위해 아버지를 봐야 했고 동선을 읽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향한 많은 감정들과 맞부딪쳤습니다. 툭 마음을 던져보기도 하고 내려 보기도 하고, 안에서 오가는 감정 선을 바라봤습니다.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묵혔던 감정이 사라졌습니다. 엄마가 아팠던 시절, 저는 저만 고생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아버지의 삶도 ‘당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참 고단했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로 피사체를 담기 시작하면서, 즉 표현행위를 하면서 ‘치유’라는 선물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예술이라는 행위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카메라를 들기 전에는 무엇인가 창조하는 일은 예술가의 몫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라도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그 무엇이 있다면, 방식이 노래이든 글이든 영상이든 예술가라고 여깁니다. 창조는 사람의 본능이고, 욕구 그 자체 아닐까요? 혹시 사진이 보고 싶은 분들은 저에게 연락해주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