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찍 집에 들어갔다. 물론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긴 하지만.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으려는 순간 밖에서 문을 두드린다. ‘이 밤에 누구지?’ 의아해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어보니 할머니였다. 자기 집 앞에 세워놓은 차 때문에 환기도 덜 되고 답답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무슨 말인지 몰라 밖을 함께 나가 보았다. 차는 분명 주차 표시가 되어 있는 곳에 반듯하게 주차가 되어 있다. 뭐가 문제지 하는 마음으로 쳐다보니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내가 이 아랫방(지하방)에 사는데 저녁에는 상관없는데 낮에도 차가 세워져 있으니 답답해서.. 다른 곳에 세워두면 안 돼? 우리 애들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너무 답답해서 부탁하는 거야.”
우리가 사는 곳은 22년이나 된 낡은 빌라 단지이다. 500세대가 사는 규모가 있는 곳이지만 옛날 건물이다. 그래서인지 각 세대마다 반지하방이 하나씩 딸려 있다. 옛날에는 지하방에 이른바 ‘식모’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일러도, 공동화장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식모가 함께 살지는 않는다. 더러 집주인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월 10만원을 받고 쪽방처럼 세를 놓기도 한다고 한다. 아마 그곳에 어머니 방을 마련해놓고 위에는 자식들이 사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낮에는 집 앞 단지에 화분을 여러 개 놓고 그것들이 자라는걸 보는 낙으로 사시는 처지인데 낮에 주차된 차 때문에 방에 바람도 덜 통하고 낙으로 바라보는 화분도 가리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나 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예, 바로 차를 옮겨놓을게요. 기름값이 비싸 주말에만 차를 이용해요. 죄송해요.”라는 말 뿐이었다. 거기다 대고 ‘주차구역에 댔는데 누가 대든 상관없는 것 아니에요.’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는 나는 잘못한 게 없다. 그럼 그뿐인가. 지하에 사람을 살도록 설계하고 그 앞에 주차구역을 표시한 사회에서 법만 지킨다고 될 일이 아니다. 법은 정말 최소치의 역할만 할 뿐이며, 심지어는 최소치의 역할도 다하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다.
전세금을 못 올려줘서 합법적으로 쫓겨나는 사람들, 합법적인 절차로 개발을 시행해서 거리로 내앉는 돈 없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법적 근거를 가지고 세금을 못낸 이들에게 전기, 가스, 수도를 중단하는 공기업들이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법’의 잣대는 얼마나 허무한가.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얼마나 비정한가를 우리는 알기에 시민들의 법을 뛰어넘는 실천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무함을 넘는 건 역시 인간의 실천이지 않는가!
활동가의 편지